부부싸움 필수품, 마법의 고민 해결책

신통방통하다고요

by 김채원

원래도 예민한 나는 요즘 더 예민하다. 신체적으로 예민할 시기이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예민할 시기이기도 하다. 2월 말까지 써야 할 원고가 있는데 20% 밖에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좋아하는 아침 하늘을 볼 여유도 없다. 잠에서 깨자마자 홀린 듯이 컴퓨터 앞으로 직진해 전원버튼부터 누르고 컴퓨터가 켜지는 동안 눈을 비벼 눈곱을 떼어내고 눈을 뜬다.


원고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남편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다. 2월엔 내내 바빠 아이들 돌보는 일과 집안일에 신경 쓰지 못할 것 같으니 많이 도와달라고. 남편은 그 정도는 충분히 도와줄 수 있다며 듬직하게 말했다. 문제는 남편과 내가 생각하는 도와주는 정도가 조금 달랐다는 것 정도.


지난주까지는 남편이 매일 출근한 데다 아이는 아파서 어린이집에 못 간 날이 많았다. 원고는 거의 쓰지 못했고 마음은 초조했다. 그나마 이번주는 남편이 출근을 안 하고, 아이들도 매일 등원을 할 수 있으니 이번 주에 최대한 집중해서 많이 써야 했다. 지난주에 못 쓴 것까지 생각하면 정말 하루 종일 글만 써야 했다. 다행히 어쩐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어제 아침, 아이들 떠드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글을 쓰고 있었다. 어느 순간 글은 막히고 소음은 길어지니 슬슬 거슬렸다. 시계를 보니 9시 30분. 남편도 아이들도 천하태평이었다. 아이들이야 그렇다 치고 조금도 급할 게 없어 보이는 남편을 보니 화가 났다.

"오빠, 9시 30분이야. 애들이 나가야 내가 집중을 하지. 등원 준비 좀 서둘러줘."

돌아온 남편의 대답이 기가 막혔다.

"어제는 내가 등원시켰으니까 오늘은 여보가 등원시켜."


1분 1초가 아까우니 등원 준비를 서둘러주라는 나의 요구에 어제와 오늘의 공평함을 요구하는 남편의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미리 양해를 구했음

-지난주까지 글을 거의 쓰지 못했다는 사실을 남편도 알고 있음

-남편은 오늘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음

-등원이 평소보다 늦어짐

-등원 준비를 서둘러 달라고 이야기함


이 사건의 핵심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봤다. '어제는 내가 등원시켰으니까 오늘은 니가 등원시켜라.'로 귀결될만한 단서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남편이 나의 사정을 헤아릴 능력이나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가정하에 상황을 다시 설명했다. 어제와 오늘의 공평함 보다는 내 사정을 더 헤아려 주라고. 남편의 표정을 보니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마음이 부족한 것 같았다. 애써 눌렀던 서운함이 터져 나왔다. 다시 나의 서운함을 설명했다. 갈등이 있을 때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남편은 입을 닫았다.


마음이 복잡하면 물건을 정리하는 버릇이 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내 마음을 정리하는 대신 대청소를 하거나 책상 정리를 하다 보면 힘들었던 마음을 조금 잊을 수 있다. 책상을 정리하다가 작년에 선물 받은 "마법의 고민 해결책"을 발견했다. 복잡한 고민이나 질문을 생각한 다음에 책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나온 문장이 고민을 해결해 주는 책이다. 신기하게도 꽤 잘 맞는다.


호그와트가 떠오르는 표지에, 생각보다 까다로운 사용법



남편에게 고민을 말하고 책을 펼쳐보라고 했다. "나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라는 문장이 나왔다. 남편은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건가. 마음에 안 드는 이 문장을 빨리 잊으려고 남편에게서 고민해결책을 뺏어 들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펼친 페이지에는 "시간 낭비다."라는 문장이 나왔다. 나는 남편이랑 같이 사는 게 시간 낭비라고 해석했고, 남편은 이렇게 싸우는 게 시간 낭비라고 해석했다. 뭐가 됐든 시간 낭비인 건 확실했다. 고작 서운함이나 느끼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다시 집중해서 글을 썼다. 마음속으로 남편에게 경고의 말을 날렸다.


'이번엔 고민해결책이 너를 살린 거다. 앞으로 조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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