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걷는가

걷기 아마추어입니다

by 김채원

요즘 가장 좋아하는 일은 아침 산책이다. 마침 딱 걷기 좋은 날이 이어지고 있다. 날이 풀리고 봄이 와서가 아니라 날이 풀리고 있고 봄이 오고 있어서다. 봄이 오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기 위해 육아휴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겨울빛 은색을 띠던 나뭇가지의 끝이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 지푸라기처럼 말라비틀어진 풀로 가득했던 땅이 작지만 또렷한 초록색 생명으로 채워지는 모습을 보는 것, 햇살 너머 어딘가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는 것, 차갑고 단단했던 땅이 보드랍게 풀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 이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니 나는 봄만큼이나 행복한 사람이다.


모든 게 피어나는 계절에 벌써 지고 있는 목련나무 한 그루를 보며 아쉬워하던 그때, 아저씨 한 분이 내 옆을 빠르게 달려 지나갔다. 아저씨는 이어폰도 없이 휴대전화로 방송을 크게 틀어놓고 들으며 달리고 계셨다. 잠깐이었지만 방송에서 '주식'인지 '부동산'인지 같은 말을 했던 것 같다. 경제 방송을 들으시는 것 같았다. 멀어지는 아저씨의 뒷모습이 유난히 바빠 보였다. 아저씨는 온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또 그렇게 느리지도 않았다. 어딘가 어색해서 계속 보다 보니 두 발이 번갈아 땅에 닿는 일은 빠르게 이루어졌지만 보폭이 짧았다.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행복해 보이지도 않았다. 걷고 싶어서 걷는 사람이 아니라 걸어야 해서 걷는 사람 같았다. 아저씨는 왜 걷는 걸까.


잠깐, 나는 왜 걷는 걸까. 왜 걷는지도 모르면서 지난주에만 8시간 36분을 걸었다. 하루에 1시간을 넘게 걸은 거다. 그때부터 집에 오는 동안 집중해서 생각했다. '왜 나는 걷는가?'


며칠 전 읽었던 책 <심리 읽어드립니다>는 알 수 없이 분노하고 화가 나면 나가서 걸으라고 했다. 걸으면 발바닥이 자극을 받으면서 뇌의 편도체가 약화되고 해마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란다. 지난주에 내가 화를 좀 덜 낸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걷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답을 찾지 못하자 '왜 나는 먹는가?', ' 왜 나는 자는가?', '왜 나는 일을 하는가?', '왜 나는 청소를 하는가?' 같은 질문들이 계속 떠올랐고 결국에는 '왜 나는 사는가?'까지 왔다. 가장 어려울 것 같은 심오한 질문 앞에서 드디어 나는 답을 찾았다. 왜 살긴 왜 살아 태어났으니까 살지.


나는 그냥 걷는다. 걷고 싶어서 걷는다. 걷는 게 좋아서 걷는다. 어떤 일을 사랑하는 사람을 아마추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나는 걷기 아마추어다. 매일 걸으면서 드는 생각과 느낌을 브런치북으로 만들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