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인공, 매화

by 김채원

요즘 우리 동네 산책로에는 산수유와 매화가 만발했다. 산수유꽃의 파스텔톤 노란빛은 주변 나무들의 초록잎, 맑고 파란 하늘과 잘 어울린다. 연노랑 물감을 솜털로 찍어놓은 것처럼 보송보송하다. 산수유 앞에서는 자주 멈추게 된다. 멀리서 봤을 때와 가까이 들여다봤을 때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산수유나무 전체를 보는 걸 더 좋아한다. 꽃 하나하나보다 꽃들이 모여 이루어내는 분위기가 훨씬 내 마음에 든다.


이상하게 매화 앞에서는 큰 감흥이 없다. 무의식적으로 매화가 벚꽃의 하위버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매화와 벚꽃은 형제처럼 닮았다. 내가 그 둘을 구별하는 기준은 개화시기다. 일찍 피면 매화, 늦게 피면 벚꽃. 만약 매화 한송이와 벚꽃 한송이를 내 눈앞에 동시에 갖다 놓고 가려내라고 하면, 가려낼 수는 있을 것 같다. 더 예쁘면 벚꽃, 덜 예쁘면 매화.(매화야 미안해) 생각난 김에 매화와 벚꽃의 차이를 검색해 봤다.


매화는 나무에 바짝 붙어 피고 벚꽃은 나뭇가지에서 뻗어 나온 줄기에서 꽃이 핀다고 한다. 그래서 더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나 보다. 매화는 꽃잎이 둥근 반면 벚꽃은 꽃잎에 홈이 있다고 한다. 차이를 알고 사진을 들여다봐도 역시나 내 눈에는 벚꽃이 더 예쁘다. (매화야 진짜 미안) 그리고 매화는 향기가 있는데 벚꽃은 향기가 없다고 한다. 여기서 매화한테 마지막으로 한번 더 미안했다. 매일 매화 옆을 지나면서도 향기가 있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향기를 느낄 만큼 가까이 가보지 않았다는 뜻 아닐까.


옆 동네 광양에서는 이번 주말까지 매화축제가 진행된다. 광양은 워낙 매실이 유명해서 3월은 매화 축제, 6월은 매실 수확으로 바쁘다. 그런데 나는 순천에 8년을 살면서 한 번도 매화 축제에 가보질 않았다. 겨우 매화나 보자고 사람들 북적이는 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벚꽃이 피면 일기예보부터 확인한다. 혹시라도 비가 내려 꽃잎이 다 떨어질까 불안해서다. 그리고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심지어 코로나 시기에도 벚꽃을 보러 낮에 한 번, 그리고 밤에 또 한 번 벚꽃 명소에 다녀오곤 했다.


며칠 전에는 내 키의 2 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매화나무에 꽃이 딱 한 송이만 펴있는 걸 봤다. 이 세상이 안전한지 알아보려고 용감하게 총대를 멘 정찰병 같은 느낌이었다. 다음날부터 다른 꽃들도 앞다투어 피기 시작한걸 보고 정찰병이 오케이 사인을 내렸구나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매화가 나한테 주목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벚꽃과 닮았기 때문인 것 같다. 매화가 다른 어떤 꽃과도 닮지 않았다면 나는 매화를 더 자세히 들여다봤을 거고 향기도 맡았을 거다. 다행인 건 매화가 벚꽃보다 조금 일찍 핀다는 거다. 아직 벚꽃은 피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오늘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매화다. 매화가 자신의 전성기를 마음껏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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