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방향으로 걸을 것인가
시계방향과 시계반대방향 사이에서 고민
산책로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생태회랑로라는 이름의 산책로가 있는데 동네를 크게 감싸고 있어서 어느 방향으로 가든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산책로에 들어서서 왼쪽으로 가면 동네를 시계반대방향으로 한 바퀴 돌게 되고 오른쪽으로 가면 동네를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게 되는 것이다. 결국 똑같은 한 바퀴지만 어느 쪽으로 도는지에 따라 기분은 다르다.
예를 들어 왼쪽으로 가게 되면 산수유와 매화를 보고 한참을 걸어가다가 개나리와 목련을 보고 흙길을 걷는다면, 오른쪽으로 가게 되면 흙길을 걷고 목련과 개나리를 보고 한참을 걸어가다가 매화와 산수유를 보게 된다. 이건 절대로 같은 한 바퀴가 아니다.
기분에 따라서 왼쪽으로도 가보고 오른쪽으로도 가보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 마침내 오른쪽으로 다니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니까 우리 동네를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기로 한 거다. 가장 큰 이유는 오르막길 때문이었다. 6km가 넘는 산책로 전체가 완전히 평지일 수는 없는 노릇. 가다 보면 오르막길도 나오고 내리막길도 나온다. 결국 올라간 만큼 내려가고 내려간 만큼 올라갈 테니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은 채로 집에 다시 돌아오겠지만 이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산책로에 들어서서 왼쪽으로 가다 보면 10분쯤 지나서 오르막길을 만나게 된다. 이 오르막길은 경사가 가파른데 오르막길이 끝나고 다시 내리막길이 될 때에는 경사가 완만하다. 그러니까 만약 내가 산책로에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갔다면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르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오게 되는 거다. 가파른 오르막길과 완만한 오르막길 중에 어디를 오르고 싶냐고 물으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완만한 오르막길을 선택할 것이다. 나 역시 완만한 오르막길을 선택했다.
몇 년 전 동네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 산책로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산책로를 시계방향으로 돈다고 했더니 친구 한 명이 이의를 제기했다. 올림픽에서도 달리기, 쇼트트랙 등 트랙을 도는 경기는 모두 시계반대방향으로 돌고 심지어 야구 경기에서도 주자가 시계반대방향으로 도니까 산책로에서도 시계반대방향으로 도는 게 맞는 거라고 했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지만 나는 시계방향으로 도는 나만의 이유가 확실했으므로 당황하지 않고 나의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내 주장은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단 내가 지금까지 계속 가파른 오르막길이라고 주장한 그 길을 친구들은 오르막길로 쳐주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그 구간은 정말로 가파른 오르막길이긴 하다. 문제는 그 길이가 10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경사에 주목했고 친구들은 길이에 주목했다. 고작 10m의 짧은 구간도 오르막길로 쳐주는 나의 세심함을 친구들은 마음껏 비웃었다. 살짝 머쓱했다.
운동 한번 해보겠다고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나가서는 10m의 오르막길도 피하려고 애를 쓰는 내 모습에서 인간미가 느껴졌다. 해야 하는데 하기 싫은 일을 대할 때, 하긴 할 건데 내키지 않은 일을 대할 때 나는 종종 이런 모습이 되곤 한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일찍 끝내려고, 조금이라도 덜 힘드려고 머리를 열심히 굴려보는데 결과적으로는 30초 정도 일찍 끝냈다거나 10m 정도 덜 걸었다거나 하는, 미세한 이익만 얻을 뿐이다. 이제는 잔머리 굴릴 시간에 조금이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낫다는 걸 알 때도 된 것 같은데 나는 참 쓸데없이 한결같은 인간이다.
그런데 왜 트랙은 시계반대방향으로 돌게 된 걸까? 궁금한 건 못 참으니까 검색을 했다. 예전에는 딱히 정해진 방향이 없어서 대회마다 도는 방향이 달랐다고 한다. 그런데 여러 번 경기에 참가해 본 선수들이 시계반대방향으로 도는 게 편하고, 시계반대방향으로 돌 때 기록도 잘 나온다고 주장해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기로 했다고 한다. 왜 시계반대방향으로 도는 게 편하고 좋을까? 이에 대해서도 여러 주장들이 있는데, 오른손잡이에게는 시계반대방향으로 도는 게 편하다고도 하고, 지구 자전 방향도 시계반대방향이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심장이 몸의 중심에서 살짝 왼쪽에 치우쳐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찌 되었건 시계반대방향으로 도는 게 10m의 오르막길을 피하는 것보다 이익이 많은 것 같아 그날 이후로 나는 산책로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하는 고민 따위는 하지 않게 됐다. 무조건 왼쪽으로 갔으니까.
왼쪽으로 가다 보니 뜻밖의 이익도 얻을 수 있었다. 동네를 한 바퀴 돌다 보면 바람이 유난히 많이 부는 구간이 있고 하루 종일 응달인 구간도 있다. 만약 내가 오른쪽으로 가면 출발한 지 10분 안에 하루 종일 응달인 구간을 만난다. 그 구간에 들어서면 마치 냉장고 문을 연 것처럼 한기가 훅 밀려온다. 겨울에는 자주 길이 얼어 있어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왼쪽으로 가면 출발한 지 50분 만에야 겨우 응달 구간에 들어선다. 50분을 걸어 몸이 잔뜩 데워진 상태로 응달 구간에 들어서면 찜질방에 있다가 막 나온 사람처럼 상쾌하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 50분을 걸어온 것 같은 개운함이 느껴진다.
내가 산책로에서 시계반대방향으로 도는 것처럼 누구나 여러 가지 습관이 있다. 누구는 샤워를 할 때 머리부터 감는가 하면, 누구는 몸부터 씻는다. 누구는 옷을 갈아입을 때 상의부터 갈아입는가 하면, 누구는 양말부터 신는다. 이런 일에는 보통 정답이 없지만 사람들은 익숙한 방법을 고수한다. 한 번쯤은 일부러 내 습관을 깨 보길 바란다. 머리부터 감던 사람이 몸부터 씻으면 뜻밖의 이익을 얻을지도 모른다. 꼭 이익을 얻지 않더라도 평소와 다른 행동을 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신선한 어색함이 기분을 좋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