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같은 1년을 보내고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몇 시간 뒤면 마흔이었다. 마흔을 코 앞에 두고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나는 어떤 감정에 사로잡혀있었다. 흔히 말하는 우울증이었지만 우울감보다는 더 묵직한 무언가가 나를 짓눌렀다. 당시 나에게 인생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행이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 계획을 세운다. 사소한 일은 빠르게 결정을 내리기도 하지만, 큰일일수록 오랜 시간 고심하고 선택지에 따른 손익과 기회비용을 신중히 따진다. 그러나 나는 INFP 답게 죽음도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의미도 재미도 없으면서 어렵기만한 인생이라는 게임을 꾸역꾸역 해나가다가 "에잇"하고 종료버튼을 누르는 마음으로 처방받았던 약들을 모두 삼켜버렸다. 그래도 행복하게 죽고 싶어서 물 대신 맥주로 약을 넘겼다. 한낮이었다.
의식을 되찾는 데는 하루 정도 걸렸다고 하는데 내 기억이 온전히 돌아온 건 며칠이 더 걸렸다. 응급실, 위세척, 중환자실을 거쳐 집에 돌아온 것 같다. 조각난 기억들이 몇 개 있는데 콧줄을 단 내가 신기해서 셀카를 찍었고 목이 말랐지만 물을 마시면 안 된다고 했으며 중환자실의 다른 환자들은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내가 기저귀를 차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부터 막무가내로 집에 보내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고 한밤중 퇴원에 성공했다. 1월이 된 세상은 활기가 넘쳤다.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내 인생은 여전히 슬프고 괴롭고 화나고 막막하다. 그렇지만 맛있는 걸 먹을 때 즐겁고(중요) 좋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행복하고(매우 중요) 사랑하는 딸들을 안을 수 있을 때 기쁘다(제일 중요)
내가 죽음에 성공했다면 남겨진 자들은 나를 원망하며 수군거렸을지도 모른다. 어린 딸들은 어떻게 살라고 무책임하게 떠났느냐고. 해명하자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저승사자가 내 눈과 귀를 가리고 죽음을 향해 끌고 가는 것 같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퇴원하고 한동안은 좌절감이 심했다. 하다 하다 자살마저 실패한 내가 참 한심했다. 그러다 친구의 말 한마디가 나를 일으켰다. "산꼭대기를 보고 올라가기 시작하면 막막할 수밖에. 발밑을 보고 그저 한 걸음씩 가 봐. 한 번에 하루씩만 살아내 보자."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짊어지고 있을 때는 평생 그 짐을 안고 가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인생은 알 수 없다. 갑자기 귀인이 나타나서 짐을 나눠 들어줄 수도 있고 도둑이 나타나서 짐을 훔쳐가줄 수도 있다. 휘청이다 강물에 빠졌는데 내가 지고 있던 소금이 물에 다 녹아버릴 수도 있고 혹은 내 짐이 솜이라서 물을 먹어 더 무거워질 수도 있다. 그러니 단정 짓지 말자. 이 불행이 영원하리라 생각하지 말자.
2025년은 나에게 보너스판 같은 한 해였다. 1년 전 내가 죽었다면 얻지 못했을 기회 같은 것. "1년만 더 살아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살았더니 나름 재미있는 한 해였다. 다가올 2026년도, 2027년도 그렇게 한 번에 한 해씩만 살아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