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육아잡담록: 제한된 공간에서 느낀
1.
목욕을 사랑한다. 고등학교 때 학교를 안 가고 사회의 기름막처럼 부유하는 비행청소년이 있다면 나는 달목욕을 끊고 학교를 안 가는 목욕청소년이었으니 뿌리가 깊다 할 수 있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반드시 욕조에 몸을 담가야 한다. 특히 저녁엔 1시간은 몸을 담가야 한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한동안 이것이 스트레스였으나 나답게 해결책을 찾았다. 욕조에 1시간 동안 함께 있으면 된다!
가능할 때부터, 2년째다.
2.
오늘은 둘째인 하나와 25분 정도(현재 9개월), 첫째인 하루와 70분 정도(현재 3년 5개월), 욕조에 함께 있었다.
하루의 경우, 다행히 1시간을 놀고 나서도 나가기 싫다고 할 정도로 물놀이를 좋아하는데 문득 이 녀석과 1시간 동안 쉼 없이 대화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이 녀석은 자기가 좀 전에 상상으로 붙인 이름이나 말을 되묻는, 아주 성가신 습관이 있다.
예를 들어 가지고 있는 자동차 엔진을 가리키며(물론 조그만 장난감에 엔진 따위가 있을 리 없지만), ‘이탈리아에선 이걸 징고라고 불러!’라고 하는데(물론 이탈리아에선 그렇게 부르진 않지만 지 세계 속 이탈리아에선 그렇게 부르나 보다), 좀 놀다가 ‘이거 하루가 뭐라고 했어?’ 라 되묻는다. 넨장, 기억력 테스트도 아닌데 이걸 두 번 이상 틀리면 좀 짜증 내므로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러다 갑자기 구체적인 지식을 요하는데, 예를 들어 오늘은 ‘사람은 어떻게 생겨?’라는 질문을 했다(드디어!). 성인남녀가 사랑을 한다, 그냥 사랑하는 게 아니라 무지무지 사랑해야 한다,라고 답했는데 나름, 애썼다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인간이 언제쯤 저 질문을 하나 항상 궁금했는데 하루의 경우, 태어난 지 1257일이란 개인적 궁금증을 해결했습니다)
3.
여러 질문에 열심히 대답하는 나를 보고 있는 또 다른 나를 어느새 자각, 어라!, 했다. 흔히 아빠가 적극적으로 육아를 함께하는 아이는 똑똑하다고 한다(엄마는 싫든 좋든 생물학적으로 초기 유아와 함께 할 수밖에 없으니). 이 말을 좀 더 정밀히 하면 굳이 아빠가 아니더라도 이 아이를 가까이에서, 남김없이 사랑하는 이가 한 명 늘어날수록 더 똑똑해질 가능성이 있다, 가 아닌가.
여기서 '똑똑하다'의 의미는 당연히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가 아닌(한국의 교육제도를 전면 부정하는 발언을 하고 싶었습니다! 공교육을 무시한 제가 할 말은 아닙니다만...) 내 식으로 단순화시키면 풍부한 앎을 넘어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문제 해결 능력이 탁월하다, 정도로 말할 수 있다.
4.
예를 들어 아빠가 무지 바빠 오직 엄마만 아이를 케어하고 사랑의 충분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아이가 접하는 세상의 울타리는, 적어도 집안에서는 엄마로 한정된다.
헌데 그런 이가 한 명, 두 명, 세 명, 그러니까 전폭적인 사랑을 주는, 더 정밀히 하면 이 녀석이 뭔가를 물으면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있는 힘껏 들어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놀아주는 사람이 한 명 늘어날 때마다 이 아이의 땅은 그만큼 넓어지고 더 다양한 가치관, 세계관과 만나게 된다.
즉, 사랑을 전제 하에, 엄마(같은 사람)이 늘어나고 아빠(같은 사람)이 늘어날수록 유전자와 별개로 이 녀석의 가능영역이 늘어나고, 적어도 이 녀석의 가능영역이 어디 있는지 찾아낼 확률도 높다.
흔히, 그 가능영역을 빨리 찾아내 폭발하는 녀석을 우리는 똑똑한 녀석이라 부르기도 한다.
5.
좁은 욕조에서 장난감이 거의 없이 1시간 동안 놀려면 꽤나 상상하고 꽤나 얘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사이에 서로의 생각과 방식, 가치관을 끊임없이 전염시킨다.
만약 이 아이에게 나 외에 이리 사랑하고 항시 가까이에 존재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내 아이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더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자신의 가능성을 빨리 찾아내며, 문제 해결 능력이, 응당, 더 뛰어나질 거라 생각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의 다양한 문제이자 다양한 문제 해결 방식이기 때문이다.
6.
‘가까운 거리에서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그 아이는 똑똑해질 확률이 높다’
오은영 박사가 아닌 나의 가설이지만 두 아이와 함께하는 육아인의 실전도 무시할 수 없는 법, 문득 이런 생각을 한 김에 적어봤다.
이쯤 되니 함께 산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도 나고 가까운 곳에 항시 볼 수 있었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생각도 난다.
글타고 내가 뭐 촘스키가 된 것도 아니고 내 자식도 딱히 영특해 보이진 않지만 냉장고에 아이스크림도 많고 매일 목욕도 하니 이쯤이면 고마 됐다.
룰루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