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육아잡담록
1.
최근, 저녁 시간에 아이들이랑 많이 놀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있다. 일주일 내내 주말을 벼르었다. 벼른 만큼 함께 레고를 만들고, 책도 보고, 잡담하고, 배 위에 올려놓고 만화도 보고 그랬다. 우리 가족의 경우, 딱히 외부 일정이 없어도 집 안에서 잘 노는 편이라 충실하고 행복한 시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함께 레고를 조립하던 중이다. 집거미가 나타난다.
2.
정밀한 명칭은 집유령거미라는 녀석인데 어디서 왔는진 모르지만 하루와 하나에게 보여주고 싶어 손 위에서 거미가 움직이는 걸 보여주고 실을 이용해 매달리는 모습도 보여준다.
거미를 구경하다가 잠깐 다른 곳으로 우다다다 갔다 온 하나(3살)가 다시 ‘그미! 그미!’라고 외친다. 또 보고 싶었나 보다.
‘어… 아빠가 거미 죽였어’
라고 하자, 하나(3살)가 실망해 힝…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자 함께 레고를 만들고 있던 하루(5살)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묻는다.
‘아빠는 사람도 죽여?’
3.
뻘하게 터져 한참 웃었다. 질문에 담긴 단어의 심각성과는 달리, 순수한 호기심 일직선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1) 아빠는 집거미를 죽였다
2)그럼 아빠는 사람도 죽일 수 있을까
라는 1과 2의 과정 사이에 장애물이 없다.
대부분 아이가 그렇듯, 하루도 납득이 안 가면 계속 묻는 편인지라 정밀하게 설명했는데, 일단 아빠가 기억력이 좋진 않은 편이지만(...) 그런 적이 없고(스스로를 못 믿지만 이 정도 사이즈의 일은 기억이 나지 않을 리 없지 않을까 합니다), 자신이나 가족이 큰 위협에 처하지 않는 이상, 죽이면 안 된다고 했다.
더욱이 사람이란, 대부분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가 있으니 별 거 아닌 일로 사람을 죽이면 안 될 일이고, 결과적으로 사람을 죽이면 대략 15년 정도 가족을 보지 못하고 홀로 좁은 방에서 살면서 목욕도 자주 못하는 데다(하루는 같이 목욕하는 걸 좋아합니다),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남이 만든 종이에 적혀 있는 것 중에서 허락을 받아야 그나마 먹을 수 있으며 대부분 혼자 지내야 한다고 단.단.히. 말해주었다.
방금 거미를 죽인 입장에서 설득력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굳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살아있는 걸 죽이는 건 많은 고민이 필요한 일이라, 꼭 먹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하는 일 외에는(하루는 아빠가 어릴 때 개구리를 무지하게 많이 잡아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구구절절한 감이 없지 않다…!) 안 된다고 했다.
하루는 설명이 끝나자마자, 또 한없이 순수한 얼굴에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며 질문한다.
‘그럼 사람은 어떻게 죽여?’
4.
아이들은 때때로 선입견이 느으으으으무 없어서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은 질문을 한다.
1) 아빠는 집거미를 죽였다
2) 그럼 아빠는 사람도 죽일까
3) 아빠는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럼 사람은 어떻게 죽이는 걸까
라는, 자칫 이상한 사고 과정이지만 아이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순수한 호기심이라 과연 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다만 과거를 복기해 봐도 경험이 없는 데다(기억력이 그다지 좋진 않지만, 어쨌든), 나는 경험 없이 함부로 말하는 타입이 아니다…!
물론 학문적인 차원에서라도 이런 걸 말해줬다간 유치원에서 애들을 불러 모아 이상한 지식을 전파할 게 뻔하다. 그럼 난 유치원에 불려 가 선생님에게 혼난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선생님에게 혼이란 혼은 다 났는데(생각해 보니 교수님께도) 또 혼나긴 싫다…! 그렇게 혼내면 나처럼 학교를 안 간다…! 그건 더 안 된다…!
해서, 대충 안 된다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사람은 생각보다 어이없게 죽을 수 있어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고도 말해주었다.
5.
이후에 ‘도둑도 죽이면 안 돼?’ 등의 질문이 이어졌는데 도둑이 나쁘긴 해도 그 정도로 죽여버리면 인구감소가 너무 빠르게 이루어지기도 하거니와 여튼 대충 안 된다고 했다. 하루는 아빠 말을 잘 듣는 편이라 그럼 도둑이 오면 죽이진 않고 요래조래(!?!) 하겠다고 한참을 상상해 조잘조잘 대는데, 대충 그 선에서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도둑이 99% 확률로 하루보다 강할 것 같지만(5살이 가지는 피지컬의 한계는 여간해선 테크닉으로 극복하기 힘들겠지요), 딱히 그렇게까지 조목조목 자신감을 떨어트리고 싶진 않아서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평온하게 레고를 조립했다.
6.
윤리와 상식이 부족한 아이를 키우는 만큼 이제부터라도 윤리와 상식을 갖춘 어른이 되어야겠다.
나이 먹고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식이 부모를 키운다는 건 이런 거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