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초희 Jan 12. 2020

식욕이 없는 나에게 ‘당신과 밥을 먹는 순간’의 의미

밥 먹기 싫어요. 근데 너는 만나고 싶어요.

나는 식욕이 없다. 그러니까 딱히 먹고 싶은 음식도 없고, 많이 먹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나에게 밥이란 그냥 때 되면 으레 껏 먹어야 하는 것. 삶을 연명하기 위한 수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에겐 음식을 고르고 수저로 음식을 입에 옮겨 넣고, 씹고, 식도로 넘기고, 소화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


회사 점심으로는 배가 부르지 않은 샐러드를 먹거나 가볍게 과일주스 한잔으로 점심을 때운다. 거르는 날도 종종 있다. 주말이면 내 무식욕이 극에 달하는데 대충 늦잠을 자서 11시쯤 일어나면 오후 6시쯤이 되어서야 꾸역꾸역 배고픔을 해결하러 밥 먹을 곳을 찾아 나서곤 한다. 아니면 저녁 약속으로 그날의 한 끼를 해결하고. 밤늦게 지인짜 배고프면 먹방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한다. 혹은 견과류 통을 꺼내서 견과류 몇 알을 야금야금 씹어먹는 게 야식을 해결하는 내 방법이다.

요걸로 두 끼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한테 이런 내 식습관을 설명하면 보통 엄청 신기해하면서 이런 질문을 한다. “그럼 초희야 너는 막 땡기는 음식이 없어? 매콤한 떡볶이, 바삭바삭한 치킨 닭다리, 꼬소한 곱창 같은 거 막 땡기지 않아?” 물론 나도 이런 것들 다~ 좋아한다. 여자들의 소울 푸드인 떡볶이도 좋아하고 같이 김말이 튀김은 꼭 시켜야 하고 마늘 팡팡 넣은 알리오 올리오 좋아하고 곱창 닭발 국밥 등 아재 음식도 잘 먹고 돼지고기 팍팍 넣은 김치찌개도 좋아하고 간장게장도 정말 잘 먹는다. 근데 다른 사람과의 차이가 있다면, 맛있는  굳이 매끼마다 먹을 필요가 있을까? 일주일에   정도만 맛있는  먹어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란 ?


사실 누가 나한테 초희야 뭐 먹고 싶어?라고 하면 정말 어렵다. 나는 대부분 먹고 싶은 게 없다. 당장 생각나는 음식도 없고 뭐 끌리는 것도 없어서 음음.. 을 반복하다가 그냥 무난하게 치킨? 고기? 같은 답을 던진다. 아니면 최근에 발견한 맛집에 가자고 제안해보거나.


남들은 배부르면 기분이 좋다고 하는데 나는 배부름이 불쾌하다. 속이 더부룩하고 기분이 안 좋아진다. 소화가 잘 안 되어서 트림이라도 하고 싶은데 트림을 잘 못하는 편이라 (마음만 먹으면 꺼억꺼억 트림을 잘하는 사람들 참 부럽다) 몇 번의 헛구역질을 삼키며 괴로워하다가 결국 토를 한다. 차라리 먹은 걸 다 토해내면 속이 가벼워져서 편하다. 그게 습관이 되어서 생각보다 많이 먹었다 싶은 날엔 그냥 토해버린다. (이번 건강 검진에 위경련 주의가 뜬 건 당연한 결과였겠지..)


요즘 간편식이 발달되어서 편의점만 가도 쉽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건강한 먹을거리가 꽤 많다. 쪽쪽 빨아먹으면 되는 모닝죽 팩, 고구마 하나, 바나나, 과일컵 등등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할 거리가 지금도 많지만 만약 포만감을 주는 알약이 개발된다면 더 좋겠다. 나는 기꺼이 먹는 즐거움 따위(?) 포기하고 그 약을 먹겠다. 먹는 행위를 너무너무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제품은 참 많은데 나 같은 인간을 위한 약은 없는 걸까.


같이 먹는 치킨은 두 배로 맛있지

이런 나에게도 맛있는  먹고 싶을 때가 있는데 바로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싶을 때다. 보통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밥이든 커피든 무언갈 먹는 자리를 만들고,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음식이 맛있을수록 대화는 다 즐거워지기 마련이니까. 대화가 즐거우면 나는 열심히 입에 음식을 넣는다.


생각해보면 맛있는 음식을 던지는 것만큼 사람을 만나기 가장 쉬운 방법도 없다. 퇴근하고 동료와 회포를 풀고 싶을 때 우리 퇴근하고 치맥 할까?라는 말만큼 깔끔한 게 없고, 친구가 보고 싶을 땐 우리 떡볶이 먹을래?라고 던지면 무조건 오케이다. 여럿을 모으고 싶을 땐 성수동에 분위기 좋은 술집이 생겼어 여기 가자- 하면 그만이고.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에게 밥을 먹자는  나는 너랑 얘기를 나누고 싶어란 의미이고, 내가 되게 맛있게  먹고 있단  지금  대화가 즐겁다는 뜻이다. 회사 동료들이랑 잡담을 나누며 밥 먹는 자리가 좋고, 오랜만에 만난 언니와 카페에서 안부를 주고받으며 차 한 잔 마시는 시간이 좋다. 친한 친구들과 별 시덥잖은 이야기에 꺄르르 웃으며 마시는 술 한잔도 참 좋다. 딸 왔다고 아침부터 귀한 시간을 내어 손수 만든 엄마의 음식은 말할 것도 없이 맛있다.


요즘 들어 ‘맛있는’ 밥을 먹은 순간이 꽤 많았다. 감사한 일이다. 내 한 끼 식사에 의미를 주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는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