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인사를 나누기엔 조금 이르다 싶은 12월 중순에 H오빠한테 연락이 왔다.
- 초희야 잘 지내? 올해 뭐했더라 생각하면서 하려고 했는데 못 했던 걸 생각해봤는데, 올해엔 너 만나려고 했는데 연락조차 못했더라고. 내년 새해 인사하면서 말하면 형식적일 것 같아서 바로 연락해.
H오빠는 내가 22살 때 대외활동으로 알게 된 사람인데, 내가 대외활동을 끝내고 그 회사에서 인턴까지 해서 6개월 동안 꽤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사이었다. 게다가 H오빠가 다니던 대학교가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대학교여서 가끔씩 시간이 맞을 때 같이 반주를 하곤 했는데 둘이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둘 다 정신이 없어 만날 약속이 쉽게 잡아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잘 지내지? 올해엔 만나자~라는 말만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다.
사실 평소의 나였으면 연말, 새해 연락을 받으면 안부 주고받으며 생존 여부 확인하고 말았을 거다. 상대방이 소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우린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사이지! 연초는 바쁘니까 좀 시간 지나면 연락해봐야겠다'라는 생각으로 큰 액션(?)을 취하진 않곤 했다. 그런데 이번은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진짜로 언젠가 언젠가라고 하다가 정말 영원히 못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연말에 전 직장 팀장님을 만났는데 한창 관계, 사회생활 얘기를 하다가 팀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 저도 원래 언젠간 만나면 되지, 만날 사람은 다 만나게 되지, 라는 생각에 연락도 잘 안 받고 카톡 답장도 귀찮아서 안 하는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만날 사람은 어차피 다 만난다고 생각은 해요. 근데 조금 달라진 건 어차피 만날 사람이라도 둘 중 한 명이 움직여야 만날 수 있다 라는 거?"
또 어제 만난 친구는 이런 얘기를 꺼냈다.
- 걔는 내가 잘 지내고 있지?라고 연락하면 응 잘 지내. 하고 끝이다? 하.. 우리 정말 친한데 나는 그런 연락 스타일에 종종 너무 서운해. 그냥 그 친구는 그런 스타일이더라고. 그걸 아니까 이해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어.
- 맞아. 그런 스타일이 나쁜 건 아닌데, 상대방 입장에선 그게 원래 그 사람이 그런 스타일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소중하지 않아서 그렇게 대하는 건지를 잘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표현하는 게 중요한가 봐.
이 말을 듣고 아, 싶었던 것 같다. 맞아, 어차피 만날 사람 다 만나도 만나려면 연락을 하고 만날 날을 잡아야 만나는 건데! 나는 왜 이렇게 우유부단했나.
그래서 H오빠의 이번 연락이 고마웠고, 반가운 마음에 바로 그 주로 만날 약속을 정했다. 결국 둘 다 휴가 전이라 야근이 폭풍 들이닥치는 바람에 약속은 파토나고 말았지만 하핳. 하지만 이번에는 꼬옥 보자라는 말을 나눠서 그런지, 이번 주에 다시 약속을 잡았으니 이번에는 꼭 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