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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희 Jun 16. 2019

좋아하는 동네 카페가 없어진다는 것은

그곳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동네 아지트. 그런 곳이 나한테도 있었다. 샤로수길 초입에 있었던 Happiness sancha라는 카페다. 한 때 매주 일요일 밤은 그곳에서 일주일을 마무리했고, 너무 좋아서 친구들한테 소문내고 다녔던, 내가 애정했던 동네 카페.


처음 알게 된 순간도 참 우연하고 신비(?)스러웠다. 샤로수길에서 남자 친구와 밥을 먹고 차 한 잔 할만한 카페가 없나 두리번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별생각 없이 "나 오늘은 이 길로 가기 싫어. 새로운 길로 갈래." 하고 남자 친구 팔을 이끌었다. 샤로수길 메인 거리를 벗어나니 마땅한 카페가 영 없었는데, 작은 입간판이 있었다. 아? 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건물 모퉁이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따뜻한 노란빛이 흘러나오는 그곳에 홀린 듯이 내려가는데, 좁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니까 예상하지 못했던 지하 공간에 근사한 카페가 있었다.

사진 출처 : @happiness__sancha 인스타

나는 보자마자 여기다, 싶었다. 가운데 큰 테이블이 있고, 원목 테이블들이 사이드에 널찍널찍하게 자리 잡았다. 서울 땅값이 땅값인지라 테이블을 다닥다닥 붙여둔 카페들을 보면 이해가 가면서도 답답하기 마련인데, "오빠, 여기 가운데 테이블 하나 더 두어도 되겠다."라고 말할 정도로 공간을 여유 있게 쓴 점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 주문한 음료를 아직도 기억한다. 한창 밀크티에 꽂혀있을 때라, 밀크티를 주문했다. 예쁜 찻잔에 밀크티를 담아 가게 사장님이 손수 내어주었다. 뭔가 손님이 된 것 같은 느낌! 인스타에 자랑한답시고 한참 사진을 찍다가 밀크티를 한 입 먹었는데 따듯하고 부드럽고 향이 좋아서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 카페의 포인트는 한쪽 구석을 자리 잡은 오디오다. 내 몸집만 하게 큰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죄다 너무 좋았다. 사장님이 좋아하는 아티스트, 앨범, 노래를 고르고 골라 트는 음악이어서 그런지, 내가 멜론에서 아무렇게나 트는 재즈음악과는 너무 다르더라. 하나하나 제목들을 훔쳐오고 싶었다. (놀랍게도 사장님은 재즈음악도 좋아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장르는 락과 메탈이라고 했다)

나는 이곳에서 마스다 미리라는 일본 작가의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책을 읽었다. 별로 신경 써서 그린 것 같지 않은 그림체에 특별한 서사없이 소소한 내용을 담은 만화책인데, 정작 내 마음이 요동쳐서 한 참을 곱씹다가 왔다.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런데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 뭐하는데?"
"난 분명 지금이랑 달라지길 원하는데, 왜 또 변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거지."
"모르겠어, 오늘은 목욕이나 하자."
 - 마스다 미리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중에서-

어쩜 이렇게 내가 하는 생각과 비슷할까. 그다음 시리즈가 또 읽고 싶어서 그 카페에 가고, 또 갔던 것 같다.


동네에 좋아하는 공간이 생긴다는 건 무척 행복한 일이다.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방법 하나가 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만약 마음이 불안정하면 그냥 이곳에 오면 되니까. 그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편안 해질 테니까.

그 카페를 추천해서 실패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런 곳에 이런 공간이 있냐며 깜짝 놀라는 친구, 6인용 테이블이 마음에 든다는 친구, 마스다 미리 책을 읽고 뭔가 고민의 답을 찾았다는 친구도 있었다. 덩달아 happiness sancha의 팬이 되어 사장님의 플레이리스트를 묻고 또 묻는 친구도 있었다.


그 카페는 내가 안 지 1년 하고도 3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그 자리는에 고스란히 또 다른 카페가 자리 잡았는데, 사장님이 공간 인테리어까지 그대로 넘겼는지 테이블도, 카운터도, 인테리어 소품들도 그대로였다. 정말 모든 게 그대로인데 묘하게 어색하고 낯선 공기가 흘렀다. 이 공간에 나올법한 음악이 나오질 않았고, 이 공간에서 마시던 티가 없었다. 나는 다시는 그 길목과 그 카페에 가지 않는다.

해피니스 산차의 마지막 글

난 아직도 그만큼 좋아하는 동네 카페를 찾지 못했다. 특별히 좋아하는 동네 카페 없이 이 곳, 저곳 떠돌아다니는 신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가볼 걸 싶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사장님,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신가요? 제가 그 공간을 참으로 좋아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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