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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희 May 24. 2020

식물 살인마가 되고 싶진 않았어

난 식물을 좋아하는 걸? 식물은 날 좋아하진 않지만..

새로 이사 온 자취방을 어떻게 꾸밀까 고민하던 중 예쁜 집엔 꼭 식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확실히 식물이 있는 집은 예뻤다. 은은한 토분에 초록초록한 잎들이 싱그러웠다. 부엌에 두어도 예쁘고 거실장 위에 두어도 예쁘고 베란다에 두어도 예쁘고 햇빛을 받으면 더 예뻤다. 그래, 예쁜 집을 만들려면 화분이 필요하지. 화분을 키워야겠다 결심했다.

이별 1.
첫 식물은 집들이 선물로 받은 스투키였다. 조그만 자취방이지만 굳이 굳이 집들이를 했고 친구들은 고맙게도 꽤 큰 스투키 식물을 선물해주었다. 스투키는 공기 정화 기능도 있고 물을 잘 안 주어도 잘 자라서 자취 식물로 딱이라고. 굳이 관심을 주지 않아도 기르기 쉬운, 난이도 초급의 식물이었다. 위로 곧게 자란 스투키는 꽤나 예뻤고, 나는 스투키를 백일도 못 가 죽였다. (친구들은 어쩜 제일 키우기 쉬운 식물을 사주었는데 그렇게 빨리 죽이냐며 ㅋㅋㅋㅋ 이때부터 살식마 별명이 붙었던 것 같다)

스투키는 위로 빳빳하게 자란 상태로 노오랗게 물이 들더니 파삭파삭하게 말라버렸다. 왜 죽은 걸까. 나름 애정을 갖고 물도 잘 주고, 바라보고, 말도 걸어줬는데. 식물은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하니 나는 왜 스투키가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첫번째 이별


이별 2.
그 해 봄, 직장 동료에게 아주 귀여운 다육이를 선물 받았다. 비커에 들어있는 다육이 여섯 개가 우리 집에 곱게 포장되어 왔다. 너무 귀여워서 현관에도 두어봤다가, 책상 위에도 두어봤다가, 선반에도 두어봤다가 이곳저곳 자리를 옮겨주며 키웠다. 햇빛이 부족할까 봐 출근할 때면 창가에 두어주고 밤이면 추울까 봐 안으로 들이기도 했다. 물 주는 날을 까먹을까 봐 알림을 맞춰두고 물을 주곤 했다. 근데 또 하나둘씩 죽더니 결국 여섯 다육이가 모두 죽어버렸다...(눈물)

이별 3.
문제는 내가 내 식물만 죽이는 게 아니란 것이다. 그날을 컨텐츠 촬영을 앞둔 날이었다. 촬영 소품으로 이것저것 챙기는데 화분도 있으면 좋겠다 싶어 동료가 기르는 화분을 빌려갔다. 소품들이 너무 많아 집에 다 못 가져가고, 무거운 짐들은 차 안에 두었다. 동료의 화분도 차에 두었다. 다음날 차를 타보니 식물이 죽어있었다. 날이 너어무 추운 게 화근이었다. 밤이 되니 기온이 뚝 떨어졌고 식물은 동사했다.. 왜 그땐 식물도 추위를 탄타는 걸 몰랐을까..

이별 4.
새 사무실로 이사를 왔다. 새 책상이 반가워 식물을 들였다. 잎사귀가 예쁜 유칼립투스였다. 토분이랑 너무 잘 어울리는 내 식물. 이번엔 진짜 잘 키워보려고 정말 애를 썼다. 내 책상에 두면 햇빛을 못 쬘까 해서 아침엔 동쪽 창문에, 저녁엔 서쪽 창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금요일마다 물도 흠뻑 줬다. 혹시 목이 마르지 않을까 해서 틈틈이 흙을 손가락으로 쑤셔보며 흙이 말랐는지 촉촉한지 확인해보았다. 그런데 유칼립투스는 내 맘과도 다르게 자꾸 하루가 다르게 바삭해졌다. 잎이 뚝뚝 떨어지더니 결국 앙상한 가지만 남아버렸다. 말라버린 유칼립투스.. 아쉬운 마음에 아직도 정리하지 못하고 창가에 놓아주었다.

죽이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이별 5.
유칼립투스가 가고 나서 두 번째 사무실 식물로 테이블 여자를 키우고 있다. 내 책상 한 구석에 자리 잡은 테이블야자는 잎사귀를 쭉쭉 뻗어가며 잘 자라고 있었다. 이번 식물은 천장까지 닿을 때까지 잘 키워보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실제로 잘 자랐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는.


코로나 때문에 무조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테이블야자에게 물을 줄 수가 없었다. 사무실에 2주일 넘게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니 테이블 야자가 갈색으로 변했고 푹푹 꺾여있었다. 아.. 급한 마음에 영양제를 넣어줬지만 결국 얼마 못 가 바삭해지고 말았다..


잘가....
친구의 뼈때리는 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쯤 되면 포기할 법 하지만 나는 그래도 식물이 좋다. (식물도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면 참 좋겠지만..) 최근에는 수확의 기쁨을 누려보고 싶어 딸기, 토마토, 고추 같은 걸 심어볼까 생각 중이다. 열매가 생기는 걸 보면 너무 뿌듯하고 행복할 것 같다. 점심시간에 팀원들한테 같이  키우자고 제안해봤는데 다들 영 나를 말리고 싶은 눈치였지만 끝내 응원해줬다. 조만간 방울토마토 모종을 사서 키워볼 생각이다. 우리 팀이 16명이니까 방울토마토 16개는 만들어야지! 나는 다음 집에 이사 가면 내 키보다 큰 아레카야자를 살 것이다. 천장까지 닿을 법한, 키가 큰 아레카야자와 단정한 여인초 하나를 사야지. 그리고 주방에는 귀여운 미니 화분을 둘 거다.라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또 얼마나 죽이려고 그래..라고 말하겠지만 아무도 막을 수 없어. 식물을 향한 내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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