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공무원 조직이란 오래 묵은 숲과 같았고, 거기에서 일하는 나는 이제 갓 심은 묘목 같았다. 아니다, 나무라면 차라리 낫지, 어느 날 날아든 홀씨 같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회사가 싫은 이유는 늘어만 갔다. 어딜 가나 따라오는 민원도 싫고, 단순하기만 한 업무도 싫고, 깊은 마음의 유대를 나누지 못하는 회사 인간관계에도 환멸을 느꼈다. 일분일초라도 회사가 있는 하늘 아래에 있기 싫어서 어떻게든 휴가를 쓰고 어떻게든 칼출근과 칼퇴근만을 반복한 적도 있었다. 그것이 입사하고 1년에서 2년 정도 사이에 있었던 일이었다. 처음 맡았던 과태료 민원 상담 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를 맡게 되었지만 회사가 싫은 이유는 정말 가지가지였고 수시로 늘어났다. 그즈음에도 나는 여전히 상담을 받으러 다니고 있었는데, 그때 선생님이 나에게 ‘이 회사를 다녀서 좋은 점’을 생각해 보자고 했다. 선생님은 혼자서 생각하기 어려우면 주변에 같이 일하는 직원에게 물어서 알아오라고 했다.
참내, 이 회사를 다녀서 좋은 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기껏 과태료 민원 상담 업무를 꾸역꾸역 버텨내고 나니 나에게 주어졌던 건 불법주차의 끝이었던 견인 민원 업무였고, 이후 첫 부서를 떠나 발령이 났던 주민센터는 하고많은 주민센터 중에서도 민원의 절대량이 많았던 곳이었다. 무슨 이런 시련이 있다는 말인가. 이대로라면 민원 전문 공무원이 되는 것은 아닐까. 으아아 나는 민원인이 싫어요!
커리어가 망해간다고 어렴풋이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대기인 수 10명 정도가 떠 있는 책상 위에서 대기하는 민원인들의 따가운 눈총과 함께 밀려드는 민원을 처리하고 있자니 나는 발급민원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중에는 10초당 주민등록초본 10장씩을 발급하는 것이 가능했다. '내가 발급기인가 발급기가 나인가' 혹은 '고도로 발달한 발급기는 공무원과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자니 이건 이것대로 고역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회사를 다녀서 좋은 점'은 떠올려지지 않았지만, 다음 상담 일정에 맞추어 상담 선생님이 내 준 숙제의 답은 만들어 가야 했으므로 당시에 같이 근무하던 직원들에게 물었다. 혹시 당신에게 이 회사를 다녀서 좋은 점이 있는지.
"글쎄, 점심시간에 기분 좋은 산책을 할 수 있다는 점." "별건 아닌데, 회사 창문으로 경복궁이 보인다는 점." "명동이 가깝잖아. 롯데백화점~" "퇴근하고 친구 만나서 그럴싸한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가게가 있다는 점."
그럼 그렇지. 진짜 별 것도 아니었다. 나보다 오래 일한 직원들에게는 있을 거라 기대했던 조직의 희망찬 미래와 같은 드라마틱한 답은 없었다. 월급이나 업무에 만족한다거나, 일하는 분위기가 좋다거나, 승진이나 보상이 좋다거나 하는 얘기도 역시나 없었다. 민원은 어디에나 있었으므로 그놈의 민원이 없어서 좋다는 직원도 없었다. 다른 이들이 고민 끝에 말하는 것들은 주로 조직 분위기나 업무 같은 회사 내부적인 것은 아니었고, 오로지 회사가 위치한 지리적 특성에 의한 것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답변에서 내가 보지 못하는 대단한 장점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건 도리어 나만 이상하게 일하는 게 힘든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방증하기도 했다. 처음엔 정말 별게 아니라서 실망했다가도, 나도 내가 일하는 동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별것 아니라 생각했던 지리적 특성에서 오는 장점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어떻게 삶의 질을 좌우하게 되는지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조금 더 나중의 일이었다.
거지 같은 민원에 시달리면서 조금씩 퇴색되었지만, 나는 처음부터 이 동네를 좋아했기 때문에 첫 발령 당시 희망 근무지에 적어 넣었다. 서울에 있는 5대 궁궐 중 4개 궁을 품고 있는 곳. 나머지 하나도 걸어서 15분이면 닿을 수 있었다. 시대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역사를 품고 있는 기이하면서도 안정적인 풍경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내가 어릴 때부터 떠올려왔던 서울의 모습 그 자체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무엇을 사든지, 무엇을 하든지 편리했다. 구청 근처에는 스타벅스가 7개가 있고, 올리브영은 3개나 있었다. 그리고 대형 서점들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었다. 어떤 날은 퇴근하고 나서 좋아하는 우동집에 가기 위해서 출근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퇴근 후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교보문고에 가기도 했다. 어떤 날은 점심시간에 삼청동으로 산책을 나갔다. 어떤 날은 조계사의 국화 축제를 구경하다 천 원에 3개 하는 국화빵을 사 먹었다. 그리고 어떤 날은 상담을 받으러 갔다가 예쁜 동네를 발견하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소설 속에 나오는 ‘원남동’과 같은 동네의 이름이 생소한 듯 익숙하게 읽혔고, 그건 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살고 싶지 않아 베란다나 옥상에서 떨어지려고 할 때 막아 주는 것은 쇠창살이 아니라 민들레 꽃이라는 것도 틀림없습니다."(박완서, <옥상의 민들레꽃>)
국어 시간에 배웠던 소설 속에 나오는 소년이 소리쳤다. 궁전아파트의 자살을 막아주는 건 사실은 옥상 위에 피어있는 민들레 꽃이라고. 회사 생활을 버텨낼 수 있게 하는 동력은 어떤 대단한 기대나 희망찬 미래가 아니라 사실은 아주 사소한 것들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나의 어떤 날들을 모아 <어느 날 종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지내다 보니 지리적인 요건뿐만 아니라 이 회사를 다녀서 좋은 내부적인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직원 심리상담을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이용하면서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원동력을 얻기에 이르렀고 이외에도 삶의 질을 높여주는 사내 복지가 꽤 탄탄했다. 일하면서 정말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함께 일하면서 햇살 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내 복지를 열심히 이용한 후기는 추후 한 챕터를 할애해보려고 한다.)
이 회사에 다녀서 좋은 점을 찾는 것은, 당장 눈앞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딱 떨어지는 정답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소하게나마 좋은 점들을 하나 둘 발견하다 보면 문득문득 흐려지고 잊힌 처음의 마음을 들춰볼 수도 있고, 또 다른 좋은 점을 발견할 수 있는 마음가짐의 시동을 걸 수도 있었다. 그리고 서울의 한복판에서 각각의 이야기를 가진 동네를 품은 곳에서 일한다는 것은 나의 직장 생활 자세에 대한 궁극적인 처방으로 이어졌다. 나는 당시만 해도 없었던 나의 퇴근 후 일상을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