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묵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오래된 숲에서 묘목으로 살아남기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한 번이라도 30년을 다녀보았느냐.’
상담을 통해서 가장 많이 훈련했던 것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이었다. 내가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이제 막 회사 생활을 시작한 나와는 다르게, 숱한 세월을 겪은 경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그들에게는 지금의 그들을 만든 30년의 시간이 있다는 것, 그래서 그들이 나에게 행하는 것들이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신규였던 나에게는 가혹한 현실이지만, 신규 직원이 있다고 해서 업무량이나 민원의 양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고, 봐줘 가면서 민원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회사는 신규가 들어오든지 말든지 그저 평소와 같이 흘러갈 뿐이었고 나는 그 가운데 한 명의 몫을 해내야만 했다. 게다가 그들이 보는 나는 '하는 것을 보니 기능이 꽤 쓸만한 직원'일 수 있었다. 일례로 (상담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선거일 민원답변 사건의 경우 ‘젊은 직원이니 기능은 꽤 하는 것 같은데, 이것 정도는 맡겨도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었다. 실제로 시켜 보니 군말 없이 민원에 답변했고, 민원인은 더 이상의 민원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렇게 좋을 수가! 이렇게 편할 수가! 그렇지 않은가? 시켜서 답변한 직원이 불합리하게 느끼는지 아닌지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불합리하게 느끼는지를 말해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연차가 쌓인 지금의 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아도 나 또한 문득 회사에서 업무를 하며 만난 직원을 대할 때 '이 정도는 당연히 알겠지?' 또는 ‘이 정도는 하겠지?’ 하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다.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업무 하나하나를 해내기 바쁜 와중에 함께 일하는 상대의 근무 경력까지 세세하게 신경 쓸 수는 없고, 그러다 보면 신규 직원과 일을 하게 될 때도 그가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뉴비’라는 사실을 곧잘 잊고는 한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더니, 지금의 내가 딱 그 꼴이다. 고작 10년도 채 되지 않은 나도 회사 생활에 조금 익숙해졌다고 이렇게 일하고 있는데, 내가 신규 때 만났던 30년씩의 경력을 가진 팀원들은 오죽했겠는가. 그들은 그들끼리 함께 근무해 온 세월이 있었던 데다가, 30년이라는 관성의 힘으로 너무 당연하게 나에게 업무를 넘기고 있었다. 아니, 그건 넘기는 것이 아니었고 그저 그들이 일해 온 방식이었다. 그런 조직에 어느 날 굴러 떨어진 뉴비였던 나는 그들이 일해 온 방식에 적응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그들을 상대로 피해의식을 가진 채 지나치게 쫄아 있었다.
상담 선생님은 나는 회사 사람들을 상대로 너무 낯을 가리고 있는데, 그들은 너무 쉽게 나의 벽을 허물고 있으며, 벽을 허물어 오는 그들을 향해서 나는 아무 반응도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반응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낯을 가리고 벽을 치기 때문이었다. 악순환이었다. 이 고리를 끊어 내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했다. 그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야 했다. 다만 평생을 일해야 하는 조직이었으므로 112나 119에 사건사고를 신고하듯이 불쑥 문제만을 제기하는 것은 좋지 못한 방법이었고, 섬세하게 관계의 친밀도를 쌓으면서 넉살 좋고 위트 있게 나의 생각을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세대도 다르고 경력도 다른 팀원과의 관계에서 벽을 허물고 나아가 그들에게 반응하며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도 영문을 모르는데 나 혼자 썩어 들어갈 뿐이었다. 나는 나의 팀원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쓰디쓴 한약을 먹듯 꾸준히 삼켰다.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되 내 방식으로 서서히 관계 속으로 손을 내밀기로 했다. 부모님 뻘의 직원들과 하루아침에 친해지는 것은 물론 불가능했다. 일단 대화의 주제부터가 달랐다. 그들의 주요 가십거리는 주로 자녀 문제나 시댁 문제 등이었으므로 자녀도 시댁도 없는 내가 대화에 술술 섞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세대나 경력을 떠나 당장 다가온 팀원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 친구나 가족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과 같이 팀원의 생일 케이크를 샀다. 케이크를 사서 전달할 때까지도 혹시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지만, 결과적으로 6개월이 넘게 함께 근무하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분이 활짝 웃는 광경을 처음 보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내 방식대로 팀원들과 섞이려고 노력했고, 케이크를 계기로 관계가 점차 긍정적으로 변화해 갔다. 하루 8시간씩 근무하는 직장에서 함께 근무한 시간들이 조금씩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어렵고 어색한 것은 조금씩 사라졌다. 우리 조직에는 ‘안면행정’이라는 말이 있다. 좁다면 좁은 조직이므로 얼굴을 알고 조금이라도 친밀도가 쌓이면 서로 함부로 할 수 없어 결국 일하기가 편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조금씩 팀원들에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요령을 갖게 되었고, 그들이 나에게 업무를 넘기는 경우도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그놈의 서기관 마인드
“시험을 다시 보는 건 어때요?”
처음에는 선생님이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으로 여겼지만, 80%는 진심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내가 ‘서기관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 서기관 마인드가 무엇인고 하면, 서기관쯤 되는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할 책임의식이나 기준을 나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에게 들이댄다는 것이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부연설명을 하자면, 서기관이란 4급 공무원의 직급명으로 국가기관이나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는 보통 과장(사기업의 부장 정도),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는 통상 국장(사기업의 상무 정도)을 맡고 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신규 직원이 임원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무원이 되면 엄청난 일을 할 줄로만 알았던 나의 기준은 너무 높았고, 그런 내 기준에 맞는 좋은 공무원이란 전문성과 책임감을 두루 갖춘 인재였는데, 현실에서 그것은 환상의 유니콘 같은 존재였다.
서기관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도 ‘서기관 마인드를 버리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차라리 시험을 다시 보는 게 어떠냐’고 했을 뿐. 서기관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히 나에게 좋은 점으로 작용했다. 예를 들어 서기관 마인드는 업무 관련 법을 숙지하는 데에는 꽤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공무원은 법을 집행하기 때문에 시험 등을 통해 선발하고 임용하는 것이지만, 막상 신규 직원에게 맡길 수 있는 업무는 단순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나의 경우에도 과태료 처분 절차를 집행하는 나름 막중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지만, 실제 업무는 일괄적이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고안한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라 고작 마우스를 몇 번 딸깍거리는 것이 끝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가 만들었는지 모른 채로 대대손손 내려오는 손때 묻은 몇 장짜리 A4용지에 간단하게만 적힌 업무 프로그램 안내서만 보는 것은 내 기준의 '좋은 공무원'이 아니었다. 어떤 기준으로 단속하는지, 실제로 과태료 처분은 어떤 근거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내 업무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임을 다한 결과, 공부했던 것을 통해 주어진 민원에 우왕좌왕하지 않고 신속하고 정확하며 구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처음 주차 민원 업무를 하면서 도로교통법과 질서위반행위규제법 같은 것들을 뽑아놓고, 민원인들이 자주 문의하는 부분은 형광펜으로 표시해 바로 찾아볼 수 있게 사무실 파티션에 자석으로 붙여놓던 것을 시작으로, 나는 이후 어느 부서를 가든지 업무 관련 법을 파티션에 전시(?)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나의 작은 전시장은 왠지 모르게 든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나친 서기관 마인드는 때로 책임의식을 넘어 지나친 주인의식을 갖게 만들어 업무 스트레스를 가중하곤 했다. ‘이 일은 내 일’이라는 지나친 주인의식은 이상한 고집을 부리게 만들었고,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답답했다. 일하는 데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데, 서기관 마인드에 갇힌 나는 고작 주무관 주제에 국장의 역할을 하려고 들었다. 내가 일하는 조직은 이 땅에 ‘국가’가 생기면서부터 역사를 함께했다. 구청이라는 것이 생긴 시절부터 치더라도 대략 80년의 세월을 거쳐 묵직하게 흘러가고 있는 조직이다. 여기서 오래 일하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말대로 정말 시험을 다시 봐서 서기관이 되거나, 아니면 서기관 마인드의 정도를 조정하는 것이 꼭 필요했다. 거대하고 울창한 숲에서 나는 이제 갓 싹을 틔운 묘목 같은 존재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깨달아야 했다. 묵직하게 굴러가고 있는 조직에서 개인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고, 따라서 업무에 대해 지나친 주인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요즘 MZ세대는 해낸 일에 대해 인정받는 것을 통해 회사에 애정을 느낀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는 MZ의 일원으로서, 성취동기와 인정욕구까지 강한 나에게는 좀처럼 어려운 일이었지만, 지금까지 근무하면서 늘 내려놓기를 연습해 왔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범주를 만들어 지나친 책임감을 통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조금씩 서기관 마인드를 조정해 나가는 과정을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