텝스 시험 봤습니다.
'으어어 예? 뭐라는 건지...'
'아아아아... 아직 다 못 풀었는데'
로 시작했던 텝스 첫 수업시간을 지나, 어느덧 학원을 다닌 지 2개월이 되었다. 라떼도 그러했지만 보통 어학원에서는 단기속성반이 가장 인기가 많아서 학원 내 다른 수강생들은 주 4회 몇 시간씩 수업을 듣고 빠른 시간에 성적을 올리는 데 집중하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직장에서 민원전화도 받아야 하고, 팀장님이 시키는 일도 해야 하며, 행사가 있으면 언제 어디든 쫓아 나가야 하는 이 시대의 말단 공무원이므로 평일에 풀타임으로 학원 수업을 수강할 수는 없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주 2회 저녁반이 2개월 커리큘럼으로 개설되어 있었고, 나는 그 수업을 선택해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과제를 하며 수업 내용을 따라갔다. 다행히 12년 넘게 했던 영어공부와 10년쯤 전에 했던 개빡센(…) 공무원 영어시험(라떼는 영어시험에서 정말 한두 개 차이로 바로 불합격이었음)을 준비해 봤던 경험 덕분에 새록새록 문법 내용이 생각이 났으며, 영단어집의 단어들도 아주 생소하지는 않았다. 나는 학창 시절 영단어집 한 권도 제대로 외우지 않았던 게으른 학생이었는데, 라떼 공무원 시험에서 어휘 문제 하나를 틀리는 것은 곧 불합격이었기에 피눈물을 흘리며 영단어집을 통째로 외웠던 경험이 있다. 덕분에 차츰 텝스 시험문제에 적응해 나갔고, 나는 한 번이라도 최선을 다해 시험공부를 해 본 경험을 가진 것에 감사했다.
회사에는 이제부터 글로벌인재가 되겠다며 우스갯소리처럼 선언을 하고, 각종 저녁회식 자리들을 슬슬 줄이며 빠지기 시작했다. 이것 덕분에 더 쉽게 퇴근 후의 일상을 회사로부터 분리할 수 있었다. 텝스 문제들이 아주 쉬운 것들이 아니었고,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뿐이었으므로 학원에 가지 않는 날에도 매일 꾸준히 빠른 속도로 독해를 하는 연습이나, 생소한 표현들이 들려오는 청해 시험 문제들을 푸는 연습을 해야 했기 때문에 퇴근 후에는 자연스럽게 약간의 도전의식을 가지고 영어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전업 직장인(?)으로서 일을 제쳐두고 오랜 기간을 공부에 할애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며, 몸 상태도 따라주지 못해서(허리 아프고 어깨 아프고 목 아프고…) 최대한 단기간에 원하는 점수를 얻기로 다짐했다. 그래서 매일 2시간 이상 공부하는 데에 투자할 수 있도록 저녁시간을 조정했다.
올해 3월엔 텝스 시험이 3번이나 치러지는데, 내가 3월 초 시험 접수를 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선생님이 나머지 시험들은 모두 응시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해 주었다. 학원에서 실제 시험에 대비해서 시간을 정해놓고 파트들을 푸는 연습을 할 수 있는 모의고사를 두 번 치르고, 오늘 드디어 십몇 년만에 영어 시험을 치렀다. 토익 시험을 우당탕탕 치렀던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이후 오랜만의 어학시험이었고, 나의 첫 텝스 시험이었다. OMR에 개인정보를 마킹하는 것마저 너무 오랜만인 시험을 치르자니, 두근두근한 기분이 들었다. 취업을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건만, 고작 자기 계발을 위해 하는 것이었음에도 이왕 하는 거 잘 보고 싶다는 욕심이 나도 모르게 들었나 보다. 일부 청해 문제는 여전히 뭐라는지 모르겠고, 일부 독해 문제는 읽다가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서 대충 찍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동안 내가 겪은 텝스가 대부분 이러했으므로(ㅋㅋㅋ…) 당황하지 않고 곧 평정심을 찾았다. 어찌어찌 시간 내 마킹까지 무사히 마치고 답안지와 시험지를 제출하고 나서 드는 생각은 ‘뒷목이 너무 아프다’였다. 100분이 넘는 시험시간 동안 집중하느라 고개를 너무 숙여서 굳어버린 뒷목과 어깨를 주무르며, 문득 세월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시험 결과는 4월에 나온다고 한다.
아직 이번 달 남은 수업들이 있고, 다음 주에도 시험이 예정되어 있는 데다 시험 성적이 나온 것은 아니어서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올해 갑자기 텝스 공부를 하기로 계획을 세웠을 때 예상했던 것은 아니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자기 계발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의 감사함과 기쁨을 알게 되는 요즘이다. 어쨌든 어딘가 믿을 구석(직장)이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것은 일상에 적당한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새삼 나의 믿을 구석이 되어준 회사와, 저녁회식을 빠져도 한 번도 눈치를 주지 않았던 팀장님에게 감사하며 원하는 텝스 성적을 얻으면 다음에는 무엇을 해볼지 궁리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