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라이즈드(4)

idolized(4) -end

by 김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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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번대 나오실게요.”

어두컴컴한 통로에 선 매니저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나의 번호표를 확인했다. 나는 삼각대 위에 놓인 캠코더의 녹화 시작 버튼을 눌러 녹화가 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앞선 팬들을 따라 한발 한발 무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대 바로 아래 계단에 서니 오늘 사인회 첫 순서를 맡은 멤버인 효원이의 목소리가 도란도란 들려왔다. 어렴풋이 비추는 조명 아래에서 준우에게 줄 선물을 담은 몽블랑 쇼핑백을 손목에 건 채로 몇 번이고 가사지를 펼쳐보았다. 한 시간 전쯤의 내 눈에 가장 예뻤던 준우의 화보가 있는 페이지에 사인받을 나의 이름 두 글자를 적은 포스트잇이 정성스레 붙어 있는 것을 보며, 이곳에 온 오늘 하루와 곧 무대에 오를 순간이 모두 꿈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했다.

썩은 표정의 고나리로 이미 팬들 사이에서 유명한 여자 매니저가 나에게 무대 위로 올라오라는 사인을 보냈다. 나는 준우에게 줄 선물을 조심스레 아래쪽에 감추고 효원이의 앞에 앉았다가 그다음 순서인 지호의 앞을 거치며 제법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눴다. 효원이와는 자체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지호와는 이번 앨범 수록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엘리브 팬으로서의 애정을 드러냈다.

“이동하실게요.”

지호에게 이번 앨범의 최애 파트를 물어보던 중, 무대 위 매니저가 여지없이 고나리 멘트를 날렸다. 나는 사인을 마무리한 지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주섬주섬 옆자리 의자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아…”


진짜 준우가 바로 코 앞에 있었다. TV에서 보고 올림픽홀에서 봤던, 방금 전까지 사인회장 객석에서 보고 있던 준우가, 내가 알던 준우가 아주 가까이에서 점점 확대되고 있었다. 탈색을 해서 금발로 염색을 한 준우의 머리카락이 조명 아래에서 한 올 한 올 빛났다. 나는 감히 준우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준우의 용안을 힐끔거렸다. 어느 대협곡과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깊고 또렷한 T존을 가진 덕분에 준우의 눈은 우주와 같이 깊었다. 우주를 담은 눈동자가 은하수를 박아놓은 것처럼 빛났다. 준우의 크고 높은 코는 마치 조선 제일의 건축가가 빚어낸 한옥의 처마 같았다. 처마 끝에 동그란 콧망울이 걸려있는 것이 가히 걸작이라 할 만했다. 매끄럽게 먹힌 메이크업 덕분에 준우의 얼굴에서는 한껏 광이 났다. 신이 인간을 만들고 너무 예뻐서 한번 콕 눌러본 자국이 인중이라는데, 준우를 만든 신은 준우가 얼마나 예뻤을까. 대역죄를 지은 듯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향해 준우가 친히 고개를 숙였다. 준우의 도톰한 입술 끝이 사락 올라가자 가지런하고 흰 치아가 드러났다.


“안녕하세요!”


준우가 웃었다. 눈앞에 놓인 나의 세상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천년의 시름이 사라질 것 같았다. 조각 같은 준우에게서 성화에 그려지는 성인들의 후광 같은 것이 보이는 듯했다. 나는 너무 눈이 부신 나머지 나를 향해 거듭 인사해 주는 준우의 말소리를 듣지 못했다. 사인회장에는 분명 아까와 같이 잔잔하게 MR 음원이 깔려 있었겠지만, 준우의 앞에 앉은 나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준우에게서는 평소에 쓴다던 좋은 향수 냄새가 났다. 준우에게서 느껴지는 파츌리 향을 맡는 순간 나는 숨이 턱 하고 막혀왔다. 객석에서 무대를 보고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손이 떨렸다. 53번 팬에게서 받아 붙인 캐릭터 홀로그램 스티커가 준우의 귓불에서 발광하고 있었다. 준우가 스티커를 떼어 다시 손등에 옮겨 붙이는 장면이 내 눈앞에서 느릿느릿 펼쳐졌다. 스티커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안녕하세요… 데뷔 축하해요… 제가… 선물을 가져왔어요…”


최종 면접 때 면접관 앞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최애 앞에서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바보가 된다는 숱한 팬사인회 후기는 정말 사실이었다. 방금 전까지 꽤나 충직한 엘리브 팬으로서 다른 멤버들과 대화를 이어 나갔건만, 준우를 위해 준비했던 쿨한 인사멘트는 모두 곱게 접어 하늘 위로 날아갔다. 코 앞에 준우를 두고 흑염소처럼 매애애 소리를 내며 뚝딱거리는 말들을 빠르게 내뱉을 뿐이었다. 나는 행여나 준우를 보며 웃음 짓다 잇몸이 바싹 말라버려 윗입술이 말려 올라갈까 봐 온통 신경이 쓰였다.

“와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너무 춥죠. 어디 보자…”


사인받을 페이지를 표시한 가사지의 존재를 허겁지겁 알아챘을 때, 가사지 위에 올려놓은 손톱 끝이 눈에 보일 만큼 떨리고 있었다. 내가 겨우 건넨 몽블랑 쇼핑백을 익숙하게 무대 위 매니저에게 넘긴 준우가 나의 덜덜거리는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준우가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내 가사지를 대신 펼쳤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한 번 더 몸을 기울였다.


“이현? 이름이 이현이예요?”

“네. 제가 꼭 데뷔를 축하해주고 싶었어요… 선물도… 마음에 들었으면…”

입꼬리가 주책없이 귀 옆으로 향했다. 안면 근육이 자동문이 열리듯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에 뭐가 낀 건 아니겠지, 양치질 제대로 했었는데, 그래도 아까 커피를 마시기는 했다, 커피 때문에 입냄새가 나는 건 아니겠지, 같은 생각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내가 여기에 어떻게 왔는데. 나는 애써 생각을 다잡고 조금이라도 더 준우를 눈에 담아보려고 고개를 들었다.


“혹시, 있잖아요.”

“…네?”

“혹시 저한테 맨날 편지 써주는 장이현 누나예요?”


장이현 누나에요, 장이현 누나에요, 장이현 누나에요. 누나에요… 누나에…요우…요우요우요우… 나와 눈을 맞춘 준우의 옅은 갈색 눈동자가 할로겐 조명 아래에서 환하게 드러났다.


“저… 저를… 아세요?”

“와! 진짜? 진짜 장이현 누나에요? 그, 노란색?”

“노란…?”

“그! 노란 편지봉투에 맨날 편지 써주시는! 노란 편지봉투 장이현 누나!”

“노… 노란… 노란 맞아요.”

“와! 진짜? 진짜로? 우와 너무너무 신기해요! 제가 데뷔하면 혹시 콘서트를 보러 와주시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아니면 혹시나 사인회에 오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어떻게…”

“맨날 저 응원한다고 편지 써주셨잖아요! 저 누나 편지 맨날 찾아서 읽어요! 노란색 편지 봉투 있나 찾아서 봐요! 연습생 생활하면서 힘들 때마다 누나가 보내주신 응원 너무 고맙게 읽었어요. 진짜 고마워요 누나! 특별히 이름 옆에 하트 그려드려야겠다! 티오, 우리 이현누나 하트.”


준우는 나를 앞에 앉혀놓고 진기한 것을 발견한 소년의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한껏 격앙된 표정으로 내 편지에 대한 소감을 말하는 준우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온몸이 구름에 휩싸여 붕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라는 단어를 써주는 준우의 손가락에 묻은 매직 자국이 유려했다. 준우의 데뷔앨범 콘서트를 보러 간 올림픽홀에서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모든 불이 꺼지고 수만의 응원봉이 빛날 때, 아니 그전에 이미 콘서트 티켓팅을 할 때부터 나는 내가 마치 새우젓 통에 빼곡하게 들어있는 작은 새우의 눈알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순간 나는 마침내 새우젓 통을 탈출하여 준우라는 바다를 누비는 자유로운 랍스터가 된 것이다. 아름다운 인어공주에게 단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였던 바로 그 랍스터 말이다. 언더 더 씨, 언더 더 씨…


“이동해 주세요!”

“누나가 편지에 지금까지 저답게 잘해왔다고 해준 말, 진짜 힘이 났어요! 진짜 고마워요. 늘 예쁜 말만 써주시고.”

“제가 고마워요… 준우가 데뷔하면 저도 꼭 잘 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동해 주세요!”

“저… 저도… 합격했어요. 준우가 데뷔해 준 덕분에 저도 합격… 했어요.”

“와! 정말요? 누나 진짜 진짜 축하드려요! 너무너무 잘됐다!”

“이동해 주세요!”

“누나 만나서 너무 반가웠어요! 다음에 또 봐요!”

“흐엉… 네! 또…! 또 편지 쓸게요!”

“이동해 주세요!”


매직 자국이 묻은 준우의 오른손과 내 왼손을 맞대어 어정쩡한 한 손 손깍지를 낀 채로 두어 번 손을 흔들고, 나는 고나리 매니저의 외침에 쫓기듯이 무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어둑어둑한 객석 복도를 지나 번호표가 붙어있는 내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사이 수많은 목소리가 순간의 틈들을 타고 각자의 최애를 애타게 불렀다. 나는 자리에 털썩 앉아 방금 나에게 주어졌던 순간을 떠올리며 품에 쥔 가사지를 다시 펼쳐보았다. ‘To. 우리 이현누나’라고 적힌 준우의 손글씨가 있었다. 브이라이브를 통해 팬과 함께 만들었던 사인과 ‘-엘리브 준우-’가 간결하게 적혀 있었다. 사인받은 페이지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데 내 다음으로 사인을 받았던 옆자리 여자가 자리로 돌아와 다시 효원이를 부르기 시작했다.

“저기요, 저 혹시 부탁이 있는데요.”

“네?”

“효원이 팬이신 것 같아 죄송한데, 혹시 준우 한 번만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아, 준우 팬이시구나. 그럼 저도 캠에 찍힌 제 영상 받을 수 있을까요?”

“네. 계정 알려주시면 디엠 드릴게요.”

“그래요. 이제 저 앞에 팬분 넘어가면, 아시죠?”

한껏 여유로워 보이는 옆자리 여자에게 처음 말을 건 나는, 다시 준우가 있는 무대를 응시했다. 오늘의 준우는 정말이었고, 내가 오늘 준우와 나눈 대화는 분명 진짜였다. 준우가 나를 ‘노란 편지봉투 장이현 누나’라고 불렀다. 무대 위에서는 남색 스웨터를 입은 여자가 매니저의 고나리를 견디다 못해 매니저에게 눈을 흘기며 무거운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고 있었다. 객석 복도에서는 이제 90번대 팬들을 부르고 있다.


“준우야! 준우야! 이준우!”

나는 다급하고 우렁찬 소리로 준우를 불렀다. 너무 우렁찬 소리가 나서 다른 쪽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팬들과 함께 웃던 준우가 두리번두리번 객석을 둘러보았다.


“준우야, 여기 여기! 하트! 준우야 하트!”

옆자리 여자가 손가락으로 자기 렌즈를 가리켰다. 나도 옆자리 여자의 백사투 렌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준우가 옆자리 여자의 렌즈를 향해 두 손으로 하트를 만들었다. 객석의 팬들이 환호했다.

“오 대박. 아이컨택. 대박. 인류애 충전되네. 보내드릴게요.”

카메라 전면 버튼을 익숙하게 누르며 연속으로 찍은 사진을 확인하던 옆자리 여자가 나에게만 들리게 속삭이고는 왼손으로 엄지를 들어 보였다.


“준우야, 고마워! 너무 예쁘다!”

나는 새된 목소리를 하고는 그동안 편지에 수없이 적었던 말을 준우에게 외쳐보았다. 그 순간, 다른 곳을 보던 준우가 고개를 돌려 나와 정확하게 눈이 마주쳤다. 준우가 빙긋 웃었다. 나는 다시 한번 외쳤다.


“우리 준우, 오늘도 너무 예쁘다!”

준우가 노랗게 웃었다. 나의 세상이 온통 노란색으로 환하게 빛났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