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는 둘 다 가장이고, 둘 다 주 양육자다. 그래서 늘 책임의 무게를 함께 나누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둘 중 한 명이 아프기 시작하면 그 균형은 단숨에 흔들린다. 평소에는 당연하던 일상과 육아가 갑자기 한쪽 어깨 위에 몰려든다. 그 무게는 예상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 가장은 늘 다짐한다.
아프면 안 된다고.
하지만 그 다짐은 현실 속에서 너무나 허망하다.
몸이 버티지 못할 때가 오고, 감기든 독감이든 예상치 못한 병이 찾아올 때가 있다. 아이가 어린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아이는 언제나 엄마, 아빠를 찾는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빠!” 하고 부르며 팔을 벌리는 순간, 그 작은 두 팔을 잡아주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크다.
그런데 혹시나 전염될까 봐 다가가지 못할 때, 마음은 와르르 무너진다. “아프면 안 된다”는 말은 단순한 자기 다짐이 아니라, 아이를 안아주지 못하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내가 몸살로 며칠을 앓았던 적이 있다. 그 며칠 동안 나는 출근 전후로 아이를 챙기고, 간단하게 밥을 차려 먹이고, 빨래를 돌리고, 아내가 쉴 수 있도록 집안을 조용히 유지하려 애썼다. 솔직히 말해 힘들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겪으며 아내가 평소에 얼마나 많은 일을 묵묵히 해왔는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내가 보지 못했던 그녀의 고단함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반대로 내가 독감에 걸려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을 때는 아내가 나 대신 가정을 지탱했다. 아이와 뛰어놀아주고, 장도 보고, 밤중에 아이가 보채면 나 대신 일어나 달래주었다. 그때 나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가족이라는 건 ‘누군가 아프지 않아야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아픈 순간에도 서로를 버티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아이 역시 생각보다 단단했다.
내가 아파서 안아주지 못하던 날, 아이는 처음엔 서운해 울다가도 곧 아내의 품에서 금세 적응했다. 나를 향해 작은 손을 흔들며 “아빠, 안뇽?” 하고 인사하는 아이의 얼굴에서,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이 이미 자라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 순간 오히려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이에게 완벽한 부모가 되어주지는 못하더라도, 힘든 시간을 겪으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배워가고 있었다.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가장은 아프면 안 된다”는 말은 절반만 맞는 말이라는 것을.
맞다, 아프면 힘들다. 하지만 동시에 아플 때 비로소 가족이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며 단단해진다.
배우자는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내 옆에 서 있고, 아이는 서운해하면서도 다시 웃는다. 그리고 나는 조금 더 겸손해지고, 서로의 수고를 더 깊이 감사하게 된다.
아프지 않으려 애쓰는 건 여전히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다짐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나는 절대 아프면 안 돼”였지만, 지금은 이렇게 말한다.
“혹시 내가 아프더라도, 우리는 함께 이겨낼 수 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언제나 건강하고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힘들어도 서로 챙기고 결국 다시 일어나는 부모 아닐까. 아이는 그 과정을 보며, 인생이란 언제든 흔들리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균형을 찾아가는 것임을 배워갈 것이다.
오늘도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아프지 말자. 하지만 혹시 아프더라도 괜찮다고.
우리는 가족이니까, 결국 함께 버틸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