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부터 있던 섬이자, 산인 것이다. 나만 신기하게 넋을 놓고 보고 있다
하루 3만 원짜리 호스텔에 묵으면서, 한 끼 3만 원짜리 밥을 매번 사 먹을 수 는 없다. 싱가포르, 런던의 헬 같은 백패커를 거치고 터득하게 된 끼니 때우기는 바로 마트다. 이마트, 콜스 같은 대형 마트에서 대충의 배부를 만한 것들은 쟁겨놓고 질릴 때까지 먹는 것이다. 이걸 먹느니 굶겠어,라는 생각이 들 때쯤 한번 외식을 한다면, 내 카드의 지출을 조금 더 막을 수 있다. 케첩이나 식용유 같은 것 들은 정말 사기 아깝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것 들이 호스텔 키친에 쉐어 되고 있고, 많은 여행자들이 남은 것들을 기부한다. 쇼핑 전 필수 체크 사항이다.
런던이 워낙 악마의 물가였기 때문에, 아이슬란드는 그냥 상식선의 물가이다. 밥 한 끼 1~2만 원 정도 선이고, 고급 레스토랑처럼 보이거나 유명해 보이는 곳은 3만 원 정도의 선이다. 난 3만 원으로 식빵 계란 햄 샐러드 시리얼 우유 음료수 피클 라면 등을 구입했고, 이건 5일 정도의 식량이 되었다.
밥 먹으면서도 창밖을 보며 드는 생각은 오늘의 투어 여부이다. 아이스란드 기상청 사이트는 그냥 계속 흐리거나 비로 표시되어있고, 실제로 흐리거나 비가 오고 있다. 이 나라는 해도 비치지 않는 곳에 숨어있나?
오늘은 간단히 시내 구경을 하고,
간단히 할 수밖에 없다. 시내는 손바닥 만하다.
그래도 호스텔에서 시내 중심가까지 40분 정도 걸어가야 하고, 난 One day pass 9천 원을 아끼기 위해 걸을 수밖에 없었다.
시내로 걸어가는 길에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눈 덮인 산이 겸손하게 자리 잡고 있다. 정말 겸손하게 "난 별거 아니야 헤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원래부터 있던 섬이자, 산인 것이다. 나만 신기하게 넋을 놓고 보고 있다. 원래부터 있던 그들은 나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외진 북유럽의 섬나라 이긴 하지만, 동양인이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 시내로 걸어가는 내내 지나가는 자동차의 운전석에서도, 길을 가는 사람들도 약 1~2초간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별로 기분 나쁘진 않다. 점퍼 속으로 고개를 파묻는다. 챙피해서가 아니고, 바람이 차다. 내복과 패딩 점퍼도 역부족이다. 자존심 버리고 남방을 바지 속에 넣어서 벨트를 조여 배바지를 했는데도 말이다.
없다.
오늘도 투어는 없고 나에겐 8일이 남는다.
조바심이 난다. 인포데스크의 스텝은, Unfortunately로 말을 꺼내며 유감이라 하지만 난 왠지
"난 봤으니까 뭐"
라는 듯이 무성의하게 말을 뱉고 있는 걸로 보인다. 내가 여길 어떻게 왔는데 말이다.
내 인생에 아이슬란드의 10일 동안의 여유가 또 생길 리 없다는 걸 알고 유감이라고 하는 거냐는 말이다.
괜히 꼬장 나지만 내뱉은 말은 "thank you, see u tomorrow at 5"
해도 없는 미명이 저녁 9시 까지 계속되었다가, 슬슬 어두워진다. 여름에는 백야가 지속되어 밤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텅텅 비어 있는 4인실의 내방은 이제 좀 외롭다. 좀 시끄럽고 불편해도 시끌벅적하고 페이스북 친구도 맺으면서 화기애애한 방을 잠시 상상하면서 침대에 눕는다.
"너 어디서 왔어? 한국 알아? 오로라 봤어? 우와~~ 너 차 랜트했어? 같이 여행 다닐까? 나 좀 태워줘라. 여기 근처에 뭐 맛있는데 있어?"
......
런던에서 찍어놨던 영상들의 편집을 마치고 업로드를 했다. 뭐 여행 전부터 도시마다 하나의 영상을 만들리라, 하고 다짐한 건 아닌데 하나씩 영상이 나오고 있고, 그 안의 주인공들이 기뻐하다 보니 뿌듯하고, 그들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 성심성의껏 업로드되었던 것이다.
아쉽지만 런던부터는 오롯이 나 혼자 만의 여행이 였고, 내 얼굴 내가 찍기도 이젠 좀 민망하다. 그런 연유로 계속 돼 왔던 촬영이 왠지 여기선 이어 지지 않는다. 그 허전함이 이 글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