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무조건 한다. 얼마니?
침대에 누워서 그냥 쉬어도 되는데, 그게 잘 안된다. 마치 숙제 안 하고 노는 초등학생처럼. 그냥 충분히 놀고 쉬어도 되는 타이밍인데 뭐가 불안해서 자꾸만 무언가를 찾는다. 영화라도 보면서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 팔 굽혀 펴기라도 해서 체력을 키운다. 시내에 나가서 사진 한 장이라도 더 찍는다. 무리해서라도 돈을 들여 다른 지역 투어에 참여한다. 무한 경쟁의 한국사회에서 직장생활을 한 탓인지, 1년 동안 외국물 먹고살아도 본질은 안 바뀌나 보다. 어차피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애증의 나라. 오로라가 정말 보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왠지.
"나 오로라가 너무 보고 싶었어, 그래서 떠났던 거야 그리고 그걸 봤을 때 정말 1년간의 방황 따위 보상이 되었지, 난 그걸로 됐어"
라고 말을 한다면 남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변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생긴다.
그래서 인지 투어의 존재와 오로라 목격은 집착의 대상이 된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도 행복할 수 없어 or 나중에 행복하려고 이렇게 고생하고 사는 거야"
"돈 없어도 행복할 수 있어 or 그래... 그러고 살아"
option or must
가치관에 따라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떻게 해서든 오로라를 꼭 보고 한국에 들어가고 싶다. 이제 너는 신비하고 영험한 자연의 현상이라기보다 내 자존심의 척도 혹은 핑계거리가 되어버렸다.
6일이 남았다.
원데이 패스와 웰컴 카드 사이에서 고민을 했다.
웰컴 카드는 원데이 패스의 역할을 하면서 모든 버스를 타고 각종 뮤지움과 갤러리 수영장 등등을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일종의 자유이용권이다. 가격은 원데이 패스의 3배 29,000원.
실패다.
알 수 없는 돌들, 바이킹 칼등 전혀 관심 없는 것들의 전시와 비가 오는 바람에 많이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3만 원 정도의 것들을 누리고 숙소로 들어왔다. 결국 난 관심도 없는 것들을 제값 주고 보고 들어온 꼴이다. 당한 기분에 패배감에 젖어서 늦은 점심을 먹고, 아까 나에게 웰컴 카드를 팔아먹은 직원에게 "네가 말했던 아일랜드 패리는 주말만 되는 거고 난 겨우 3만 원 정도의 것들을 참가하고 돌아오는 길이야 하지만 널 원망하진 않을게"라고 말하려고 대충 문장을 만들고 되뇌며 인포를 지나치는데 직원은 교대되었고, 주옥 같은 나의 문장들은 휑한 복도 속에 흩날려지고, 난 그냥 지나가는 말로,
'it;s raining all day, there's no tour tonight, uh?"
"Only one company operate!"
있다니, 이렇게 비가 하루 종일 왔는데,
난 무조건 한다. 얼마니?
못 보게 될 경우 몇 번이든 무료로 참여를 할 수 있는지를 확실히 물어보고, 오늘 저녁 8시 30분에 픽업을 하러 온다는 말을 끝으로 부킹을 마쳤다.
두근두근
방으로 들어와 오로라 활동성과 레이캬비크의 날씨, 달의 크기(보름달은 오로라 관측을 방해한다.), 투어 회사 사이트 등등을 훑어보고 한쪽 빈 침대에 널브러져 있던 내 옷짐들을 바라보고 한참을 서있었다. '어떻게 입어야 최대한 껴입을 수 있을까...'
티와 셔츠를 죄다 바지 틈으로 밀어 넣고 패딩점퍼로 상의를 마무리하고, 내복타이즈와 바지, 그위에 상대적으로 넉넉한 잠옷용 트레이닝 바지를 껴입고 호스텔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8시 25분
몇몇의 유럽 아가씨들이 담배를 피기 위해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고, 장 보고 온 아저씨가 눈인사를 하고 들어가고, 몇 대의 차들이 슝슝 지나갔다. 여긴 분명 섬나라인데 우리와 같은 좌핸들이다. 호주와 같은 라운드어바웃이 설치되어 있고, 한가한 나라이기에 멜버른의 훅턴같은 이상한 교통 법규도 없다. 아직 해가 안 진다. 8시 50분
왜 안 오지, 약속시간계념 없는 민족성인가? 오늘은 이대로 해가 영영 지지 않아 오로라를 볼 수 없게 되었나?
별 개똥 같은 상상을 하며 추위에 떨고 있을 때쯤, 호스텔 인포에서 내 부킹을 해준 스텝이 두팔을 감싸 안고 문지르며 걸어나온다.
'이런, 취소됬구나' 하고 좌절한다
시티 픽업이 늦어져서 9시 10분에 온데 여기 나와 있을 필요는 없어 들어가서 기다려 오늘 너무 추워
음, 다행이다. 취소된 건 아니네.
방까지 들어가 있기엔 살짝 흥분된 상태였기에 로비에서 서성였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거의 모든 판플렛의 커버를 차지하고 있는 이 초록색 일렁임을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니.
10분이 되고 버스가 나타났다. 회사 로고를 옆면에 크게 붙여 놨고, 깔끔한 흰색의 대형 버스이다. "걱정 마 나만 믿어"라고 말하는 듯한 첫인상의 버스였다. 가이드가 내렸고
" kim? " "Yes"
간단한 인증절차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탓다, 내가 마지막 픽업인 듯 버스는 꽉 차있었고 내 자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기서 난 Kim으로 충분하다. 중국인 몇 명과 영어 잘하는 홍콩 얘들이 좀 보이긴 했지만 그들 이름이 Kim일리는 없고, 일부러 영어 이름을 만들어서 날 소개할 필요도 없고 깔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