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tion & Must 04

무언가 나타난 것이다.

by kimcity

1편부터 읽기



"왜 한국사람들은 이름이 두개야?"

호주에서 같이 일하던 오지친구한테 이런 질문을 받고 딜레마에 빠졌다. 그렇다. 한국얘들은 왜 부모님이 고심 끝에 하사하신 이름을 버리고 로버트 피터 제임스 엘리스 같은 오글 한 이름들을 선택할까? 우린 동방예의지국으로서 남 눈치와 배려를 미덕으로 알고 살아온 민족 아닌가. 혹여라도 원어민 친구 스티븐이 내 이름을 부르는데 누가 될까. 혹은 내 이름 기억하는데 어렵진 않을까 하는 이타심 때문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난 Kim kyeongsik이라고 해 라고 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뻔했다. 미안한데 다시 한 번만, 오 뻑킹 어렵다. 킴기연 시으? ㅎㅎ 어렵지? 그냥 이니셜로 KS라고 해 그게 쉽겠다. 그것도 길게 생각하는 서양인들은 줄여서 K로 불렀고 내 영어 이름은 Kay가 되어 버렸다. 나도 "김병신?"으로 불려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도 너와 나의 편의를 위한 변화를 받아들인 거지.

반면 핀란드에서 온 Pyry Kanerva 이란 친구는 니들이 발음하든 못하던 난 Pyry야.라는 듯한 도도한 푸른 눈을 하고 자신을 소개했던 게 생각난다.


버스는 한 시간을 달렸고 그사이 가이드는 노던 라이트의 대한 설명과 사진 촬영의 요령, 오늘 헌팅의 성패는 하늘에 달렸다 라고 강조를 했고, 지나가는 곳곳 발전소 교회 등등을 설명해 줬다. 앞문 옆 조그만 보조 의자를 펴고 앉아서 입과 마이크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편안한 자세로, 상당히 이 일을 즐기고 있는 듯했고, 우리를 태운 하얀 버스와 어울리는 한쌍이었다.


넓게 펼쳐진 개활지에 버스는 멈췄고, 저 멀리 약간의 주황빛들이 보였지만 주변 10Km 이내에는 관측을 방해하는 어떠한 조명공해도 소음도 없었다. 정말 거짓말처럼 비는 멈췄고 하늘은 하얀 구름 사이로 살짝 열려 있었고 점점 구름도 검은 하늘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그사이로 별들이 비쳤고, 달도 보이지 않았다.


'볼 수 있겠는데?'


약간의 기대심과 함께, 또 같은 기대심을 품은 관광객들과 함께 하늘만 쳐다보고 서있다. 하늘은 마치 살아 있는 듯 하얀 구름과 별들을 검은 배 경위로 스믈스믈 움직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뒷목은 당겨오고 몸은 얼어갔다. 잠깐 몸을 녹이라고 버스 뒷문을 열어 주었다. 줄곧 여름나라에 머물렀던 내가 장갑이나 목도리가 있을 리는 없다. 잠깐 들어가서 몸을 녹이고 또다시 나와서 하늘을 보고를 반복하다가 허벅지 사이에 두손을 낀 채로 스르륵 잠들었다.


"Hey, come out"


누군가 속삭이듯 다급하게 뒤쪽에서 나를 불렀다.

뭐지? 버스 안을 둘러봤는데 나 말고 다른 이들은 없었다. 무언가 나타난 것이다. 관측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버스의 모든 불도 껴놓은 상태라 조심조심 발판을 밟으며 나가서 하늘을 올려다 봤는데, 몇 시간 전의 그 하늘 그대로이다. "What happen?" 투어사에서 준비한 간식을 먹으라는 것이 였다. 코코아와 빵을 제공해주고 다들 버스 뒤편에서 호호 불어가며 그것들을 먹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빈 하늘에 대고 DSRL을 연신 찍어대며 적정 노출을 제고 있는 그룹도 보였다. 잡고 있기도 힘들게 뜨거웠던 코코아를 다 마시고 마지막 한 방울을 탈탈 털어 입에 넣으니 차갑다. 이제껏 먹던 것과 다른 음료인 것처럼 마무리를 했고, 무언가 나타나면 부른다는 가이드의 말만 믿고 다시 버스에 올라타 눈을 감았다. 한국과 시차가 심해 지금이 잘시간인지 어떤지 계산해 보려 했지만 귀찮다. 웅성웅성 소리에 잠에서 깼고 승객들이 올라오는 걸 보니 오늘은 실패 인가 보다. 대형 버스 2대는 조용한 승객들을 태우고 조용한 논 사이의 길을 조용히 빠져나갔고, 시티 도착할 때 까지 가이드는 마이크를 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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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이 남았다.

정확히 4박 5일, 4번의 밤, 4번의 기회


그간 숙소를 옮기고, 네이버 검색으로 아이슬란드의 맛집을 검색했다. 딱한 분의 블로그가 나왔고 몇 가지 집을 추천해 놓았다, 오래된 포스팅이었는지 가격은 차이가 있었지만 그래도 아무 정보 없이 볼불복으로 내 돈을 도박하듯 배팅하는 것보다는 안정적이지 않는가.


오로라가 나타나지 않은 스트레스 때문인지, 먹는 게 부실해서 인지 침대에서 일어나 꽤나 긴 현기증 때문에 침에 한쪽을 잡고 한동안 서있었다. 쌀을 못 먹어서 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유가네 닭갈비에 가서 닭갈비 조금을 먹고 볶음밥에 치즈를 넣어서 입안에서 뜨거운 밥알을 굴려가며 배부르게 먹고,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랑 순대를..................


카드를 파카주머니에 찔러 놓고 얼마 전 검색해놓은 라멘집을 가기로 했다. 800크로나 즉 8천 원 정도, 충분히 투자할만했다. 매일 텁텁한 빵과 우유에 과자만 말아먹었으니, 따뜻한 국물과 쌀로 만든 국수가 몸보신이 될 것이다.


진짜 맛있다.


이거 뭐지? 아이스란딕과 결혼한 일본인 엄마 사이에서 나온 아들 녀석이 만든 이 가게는 일본 라멘도 아니고 베트남 쌀국수도 아니고, 어쨌든 정말 맛있다. 가격은 12천 원. 4년 전에 800크로나 였단다. 배가 뜨뜻하니까 춥지도 않았다. 실제로 아이슬란드는 봄으로 접어들어 기온이 많이 올라갔다. 이들은 나처럼 두꺼운 점퍼를 입지 않고 가벼운 차림으로 봄을 맞이하고 있었고, 겨울과 멀어진다는 건 오로라 관측시즌과 멀어지고 있다는 것.


5시다.


데스크에 조그만 메모가 세워져 있다. "오늘은 노던 라이트 투어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해는 했지만 직접 듣고 싶었다. 진짜 없니? 어 없어 ㅋㅋㅋ 나 이제 이틀 남았는데? 그래서 10일 정도는 머물러야 해. 나 여기 두번쨰 호스텔이야 8일 쨰야 ㅠㅠ. 아 그래?


마음을 다잡고 못 보고 나갈 때의 시나리오를 세우자. 맘을 어떻게 추스르며. 어떤 합리화로 무너지지 않을지. 어떻게 해야 아이슬란드를 위해 포기한 파리, 스위스, 체코, 발트 3국 등에 대한 자기 위안을 할지 말이다. 한 번도 못 볼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했다. 친구들한테 오로라를 보러 간다고 소개할 때도 "its not easy"를 시작으로 오로라의 관측의 어려움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나 스스로는 못 본다는 상황은 상상조차 안 했던 것 같다. 오늘 밤 이 메모를 본 순간 진심으로 못 볼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한 시점인 것 같다.


저녁을 먹으려고 빵을 굽고 주섬주섬 냉장고에서 먹을 것들을 꺼내놓는데 동양얘 하나가 피자를 들고 온다. 기운도 없고 별로 말할 기분도 아니고 말 걸지 마.라는 포스를 풍기며 등을 돌려 팔짱을 끼고 빵이 튀어 올라오길 기다린다. "hello?" "hey" 간혹 노랑 머리 얘들이 내 인사에 대답할 때 턱을 살짝 들면서 헤이. 하면 말 걸지 말라는 거지. 나도 그 삘을 최대한 내서 헤이로 답했으나 우리 대화는 길어졌고, 나중엔 내가더 신났다. 그냥 영어든 한국어든 대화가 그리웠나 보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이 친구들 다른 친구 한 명과 여길 왔고 차를 렌트해서 아이슬란드를 둘러보고 있는데 여행 첫날 오로라를 봤고...... 뭐라 뭐라 했지만 안 들렸고, 뭐? 첫날 봤다고? 좋겠다 ㅠㅠ 이럴 때 친구들이 제일 그립다. 나도 3~4 친구들끼리 왔으면 렌트비 뿜바이 해서 이 절경의 아이슬란드 구석구석을 모두 섭렵하고 밤마다 시내의 공해에서 벗어나 오로라 밑에서 고개를 치켜들고 친구들에게 " 아 지겹다 이제 그만보고 자자"라고 했을 텐데 말이다. 내일도 북쪽으로 갔다가 호스텔로 돌아온다길래. 나도 데려가 나도 데려가!!!!!라는 말이 목구멍 까지 올라왔지만. 쉽지가 않다. 그냥 please take me with u라고 돌직구를 날릴 수도 있었지만, 나는 가고 싶지만 너희들에게 패는 끼치고 싶지 않고 내가 눈치 보며 따라다니는 건 나도 원치 않고, 네 친구의 의견도 중요할 것 같고,라는 뉘앙스를 모두 포함한 표현을 찾을 수 가 없었다. if u don't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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