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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May 16. 2023

곱창집 사장님의 기억법.

황학동, 나의 곱창 사랑이 시작된 곳.

대학생의 신분을 가진 나는 서울 살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람 많은 곳을 갈 때마다 동그란 눈으로 두리번두리번 신기해했고, 명동이나 동대문 같은 곳은 처음 갔을 때 멀미할 것 같다고 말을 했을 정도로 복작복작했다. 갓 상경한 내게 서울은 그렇게 복잡한 곳이었지만 골목마다의 재미가 있었다.


스무 살 적엔 에너지가 넘쳐서 매일 밤마다 돌아다녔는데 대학로에 가서 밤을 새우며 놀다가 첫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하루는 노선을 바꿔 동대문 시장으로 갔다. 동기 한 명이 진짜 맛있는 집이 있다고 하면서 나를 데려갔다. 밤에 특히 활기찬 동대문 시장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걷다 보니 청계천이 보였고 시장 안 쪽과 다르게 불이 다 꺼진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왠지 모르게 음침한 느낌이 들었다. 뭐야? 나 끌려가는 거야? 농을 던지며 이런 곳에 뭐가 맛있는 게 있냐 묻는 나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따라오라고 하길래 나는 조용히 그 동기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난생처음 곱창 골목을 만났다.


골목의 초입부터 작은 곱창집들이 줄지어 간판을 내걸고 있었고 정겨운 노포의 냄새를 풍겼다.

동기는 맛있는 냄새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는지 그중 한 집에 빠른 걸음으로 들어가며 뒤돌아 내게 손짓했다. 인자한 인상의 사장님이 마치 어제 본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처럼 따뜻하게 반겨주셨다. 나 역시 옆집 아주머니를 뵌 것처럼 반갑게 인사드렸다. 오는 정, 가는 정을 이런 골목에서 느낄 수 있구나!


곱창을 볶는 철판이 있는 입구를 지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온돌로 된 작은 공간에 테이블 몇 개가 있었다. 동기는 바닥에 엉덩이를 채 붙이기도 전에 야채곱창과 소주를 주문했다. 이 주문은 나의 곱창 사랑이 시작되는 주문과도 같았다.


기본 찬은 별것 없었다. 양파와 마늘, 마늘종대가 섞여있는 접시와 그것을 찍어먹는 양념장이 다였는데 사실 그게 별것이었다. 생 마늘종대를 사장님만의 비법 양념장에 찍어먹는데 그게 너무 맛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소주 한 병을 비울만 했다. 아삭아삭 기본 찬을 씹으며 주거니 받거니 한 병을 비워갈 때 우리의 메인 야채곱창이 나왔다.


각종 야채와 당면, 곱창이 빨간 양념에 볶아져 나왔는데 이십 인생 처음 먹어보는 맛 세상이 내 입 속에서 열렸다. 곱창도 가득한데 야채와 당면까지 많이 들어가서 푸짐했고, 식감마저 즐거웠다. 그렇게 내 입이 흐뭇하고, 내 위가 넉넉하게 달린 황학동의 밤이었다.


첫 방문 이후로 한참 동안은 학교생활 때문에 곱창 골목에 가보질 못했다. 신입생이다 보니 수업부터 동아리 활동까지 바빠도 너무 바빴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말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다시 황학동을 찾았는데 골목 너머로 번쩍번쩍하고 높은 건물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아파트였다.

모든 게 있던 자리 그대로 있고 아파트만 들어섰을 뿐인데 옛 느낌이 강했던 동묘 앞부터 곱창골목까지의 길이 확 다르게 느껴져서 어쩐지 좀 아쉬웠다. 좋아하는 곱창집을 잃을까 봐 두려웠다.


반면 오랜만인데도 곱창집들의 분위기는 여전했다. 그때 그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사장님께서

"아유 오랜만에 왔네." 하시는 거다.

몇 년 전 처음 와보고 두 번째 방문인데 설마 나를 기억하실까, 닮은 사람으로 착각하셨겠지 혼자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사장님! 저를 기억하세요?"

"아유! 그럼! 여자 둘이서 소주 8병을 마시고 갔는데 어떻게 기억 못 해!"

대답하는 사장님도 빵! 대답 듣는 나도 빵! 아주 빵빵 터졌다. 곱창집 사장님의 기억법은 곱창이 아닌 소주였다.


그날도 내가 데려간 친구와 소주 8병을 마셨다. 먹을수록 매콤하고 씹을수록 고소한 곱창볶음에 소주 한잔을 들이켜 오는 길의 아쉬움과 두려움을 달랬다. 이후로는 더 자주. 배가 고플 때도 술이 고플 때도, 그리고 정이 고플 때도 나는 곱창 골목을 찾았다.

여전히 아쉬운 마음들을 잘 달래주고 계실지. 따뜻한 사장님의 마음이, 그 맛이 그립다.



배가 고플 때도 술이 고플 때도, 그리고 정이 고플 때도 나는 곱창 골목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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