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도 못 드신 해장국을 손녀딸이 먹었다.
대학 입학 후 1년 동안은 내가 술을 배우러 간 건지 공부를 하러 간 건지 모를 정도로 실컷 술을 배우고 가정 형편 때문에 감당이 힘들어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을 했다. 휴학한 동안은 서울을 떠나 집에서 지내며 일을 했는데 아무래도 고향에 내려와 지내다 보니 약속도 잦고 그만큼 술자리도 잦았다. 친구들은 역마살 낀 친구가 집에 있다니 이때다! 싶어 저녁마다 열심히 나를 불러댔다. 나 역시 그때마다 거절도 않고 열심히 불려 나갔다.
나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치고 술을 절제할 줄 아는 편이다. 그런 술버릇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이 잔 마시면 나 확 가겠는데' 싶으면 그 잔은 절대 마시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폐 끼치는 것도 싫을뿐더러 누군가가 나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는 것은 더 싫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 '절대'라거나 '영원'이라는 것은 주관적으로는 있을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없는 것!
하루는 내가 취하기 전의 마지노선, 그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기분이 아주 좋지도, 안 좋지도 않은 평범한 날이었는데 그날따라 선을 넘더니 술이 계속 내 목구멍을 넘었다. 결국 나는 꽐라가 되었지만 (어느 술꾼이든 신기하게도 그러듯) 다행히 집은 찾아갔다. 비록 택시를 탄 것까지만 기억나지만...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나는 거꾸로 누워있었다. 옷을 벗지도 않고 그대로 잠이 든 것 같았다. 몇 분 정도 멍하게 천장을 보면서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출근하는 날인가?... 아아 출근해야 되네!'
갑자기 출근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준비를 했다. 찬물을 수차례 뒤집어쓰고 나서야 정신이 좀 들었는데 그때부터 주방에서 구수한 냄새가 났다.
아침 상을 차려 내주시던 할머니가 웃으면서 나를 빤히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내가 평생 우리 영감 해장국도 한 번도 안 끓여줏는데 손녀딸 해장국을 끓여가 주노? 쓰언~ (시원~)하게 한 그릇 마시고 가라이."
갓 지어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쌀밥 옆에는 콩나물과 황태가 들어간 뽀얀 북엇국이 있었다. 분명 배가 고프지 않았었는데 급속도로 배가 고파졌다. 그릇째 들고 국물을 먼저 들이켰더니 속이 뜨끈해졌다. 그렇게 따뜻한 느낌이면서도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으으아~ 시원하다!"
결혼을 하고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애주가였던 할아버지께 한 번도 끓여주지 않았다는 할머니의 해장국을 겨우 스물한 살의 손녀딸이 먹으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숙취가 없는 사람이다. 이 점은 어쩌면 내가 18년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술을 사랑해 올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도 북엇국의 그 시원함이, 어른들이 뜨거움을 받아들이는 그 반어적인 시원함이 내 몸 전체로 퍼졌다. 해장이 필요 없는 사람의 속도 해장해 주는 걸 보니 역시 북엇국은 한국인의 대표 해장국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