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커피 May 30. 2023

자취생의 김치 사용법.

돈 없으면 집에 가서.. 집에 가서...

나는 복학생이었다.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을 했었고, 학비를 벌고 복학을 했지만 멀리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며 생활하기에는 여유롭지 못한 형편이었다. 당시에는 집에서 지원을 받을 형편도 못 돼서 젊은 부부가 사는 집에 빈 방 하나를 하숙으로 내놓은 곳에 들어가 하우스 메이트로 자취를 시작했다.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닌데 괜히 눈치를 보면서 진짜 ‘없이’ 사는 때였다. 그땐 학교와 집을 오가는 교통 경비와 최소한의 식비만을 제외하고 돈을 쓰지 않았는데, 그럴 땐 왜 그리 먹고 싶은 것들이 많은 건지. 배가 자주 고팠던 만큼 자주 슬펐다.


굶주린 배를 해결하던 곳은 주로 하숙집 근처의 시장이었는데, 대학가 근처의 시장이라 분식점과 백반집이 여러 개 있었고 저렴한 가격에 꽤 많은 양의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백반집도 사치였기 때문에 나는 시장의 떡볶이집을 자주 이용했다. 좋아하지도 않았던 떡볶이였는데. 그저 배부르다는 이유로 튀김과 떡볶이를 섞어서 이천 원 치를 억지로 먹곤 했다. 그렇게 먹다 보니 그 이천 원도 아껴야 할 때가 있었고 그럴 땐 그냥 집으로 갔다.


하숙집에서는 집주인 부부가 쓰는 냉장고에 내가 쓸 공간을 조금 남겨주셨는데 거기엔 집에서 보내준 김치통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치와 쌀. 그것만이 내가 가진 식량의 전부였기 때문에 거의 매일을 밥과 김치만 먹고 지냈다. 그렇게 김치만을 반찬으로 밥을 먹다가 김치마저 떨어졌을 때는 남아있는 김치 국물로 버텼다. 주방을 써도 된다고는 했지만 집주인 가족은 항상 주방과 연결된 거실에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밥을 볶아 먹는 것도 눈치 보여서 흰쌀밥에 김치 국물을 부어 비벼 먹었다. 뭘 씹을 것도 없이 김치 국물맛밖에 나지 않는 밥을 한 숟갈 떠먹는데 내가 너무 처량하게 느껴져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그런 경험들로 깡다구가 생겼고 어떻게든 버티자는 생각만으로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지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조금씩 내 주머니 사정도, 마음 사정도 편해졌다.


내가 사회인으로 살아가면서부터는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을 때 먹는 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정말 단순하지만, 당연하지는 않은 사실. 내가 먹고 싶을 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 먹을 능력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살면서 감사할 일은 정말로 천지다. 그런데 가끔은 내가 그 감사함을 잊고 사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그 시절을 떠올린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지만 스스로 일어났던 나 자신.


힘든 시기의 나를 독한 마음으로 버티게 한 것은 그때의 그 김치맛이 아닐까,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