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치매가 온 것 같다.

노견과 함께 산다는 것은. 세 번째.

by 김커피

우리 집 첫째 구름이는 스무 살. 치매가 온 것 같다.


작년 크리스마스 날 밤 병원에서 응급으로 종합 검사를 받았을 때 구름이에게 질병적인 문제는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노견이라서, 나이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치매 증상이 발현된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구름이의 경우에는 증상이 심하지 않기 때문에 잘 지켜보고 해 오던 대로 관리에 신경 쓰면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5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구름이는 5개월 동안 차츰차츰 변해갔다. 치매 증상이 하나둘씩 늘어갔는데 내 눈에 특히 보이는 증상 몇 가지가 있었다.


언론으로 접하던 치매 노인들의 모습 중 흔히 보이는 증상은 배고픔이다. 먹고 또 먹고 다시 먹고 싶어 한다. 구름이 역시 그렇다. 방금 먹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다시 밥그릇을 찾고 자신의 밥그릇을 비우고 나서는 둘째의 밥그릇까지 차지한다. 그러고도 성에 안 차면 밥 좀 달라고 낑낑거리는데 그 모습이 꼭 일주일은 못 먹은 아이처럼 보여 당황스럽다.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우니까 안 줄 수도 없어서 소량으로 자주 준비해 준다. 그렇게 자주 먹으면서도 살은 전혀 찌지 않고 오히려 말라간다. 살보다 뼈가 만져지는 것. 매일 구름이의 온몸을 쓰다듬어주며 호흡과 온기가 느껴져 마음이 편안해지면서도 동시에 불편해지는 이유다.


써클링 증상도 있다. 쉽게 말해 아이가 한 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현상을 말한다.

처음 이 행동을 보았을 땐 그저 배변활동을 위한 준비 포즈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강아지가 그렇듯 대변을 보기 전에 몇 번 빙글빙글 돌다가 볼일을 볼 자리를 잡으니까. 그런데 하루는 대변을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한 자리에서 열심히 돌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 오늘 소화 능력이 유난스럽네? 생각하며 가만히 보고 있는데 멈추지 않고 뱅뱅 돌고 있는 거다. 그날부터 써클링 증상은 며칠에 한 번씩 보이고, 목적도 없이 방이며 거실이며 헤매는 날도 잦아졌다. 본격적으로 증상이 오는구나 생각이 들면서 겁이 덜컹 났다. 그리고 나도 본격적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턴 매일 구름이를 내 앞이나 옆에 두고 시력 확인을 해보는데 아직 시력을 완전히 잃진 않았지만 시야가 많이 좁아졌다. 그걸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때는 내가 퇴근을 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갈 때다.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거실에 나와있던 구름이가 내가 들어오는 현관문 방향을 보면서도 인지를 못 하는 거다.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고 또 슬퍼서 멈칫했지만 시야가 얼마나 좁아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 걸음 걸어 들어가 보았다. 단 한 걸음 차이로 나를 인지하고 반기는 아이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직 팔팔한 둘째 강아지는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발소리부터 듣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지만, 구름이는 문이 열리는 소리 혹은 신발장을 여닫는 소리를 듣고서야 나의 귀가를 체감한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바닥에서 미끄러지듯 달려 나와 고개를 빼꼼 내밀어 나를 반기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그마저도 못 듣고 깊은 잠에 빠져있다. 그 모습이 귀엽고 소중해서 얼른 깨워 인사하고 싶어도 노견은 잠들어 있을 때 가장 편해 보여서 편하게 자라고 일부러 모르는 척한다. 그러다 갑자기 고갤 들어 나와 눈을 마주치면 눈을 끔뻑끔뻑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는 표정으로 보기도 한다. 다행히 시력도 청력도 아직은 큰 문제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다행은 아직 배변 실수가 없다는 것. 걷는 것이 힘들어도 힘을 내어 배변패드까지 가서 볼일을 본다. 대변도 얼마나 야무지고 예쁘게 나오는지 그것만 봐서는 둘째보다도 건강한 것 같다. 이빨이 다 빠져서 혓바닥이 축 늘어져 있으니 입이 자주 말라 물도 자주 마시는데 물그릇의 위치까지도 매번 잘 찾아가서 원하는 만큼 목을 축인다.


반려견의 노화는 사람보다 훨씬 빨리 진행된다. 내 마음의 준비를 그 속도에 맞추지는 못하지만 구름이와 함께 하는 매일을 소중히 여기며 여전한 사랑을 전하려고 애쓴다.

우리가 언제 이별할지는 몰라도 그날이 오는 속도만큼은 느리길 바라며 오늘도 나는 눈을 뜨자마자 구름이를 부르고, 잠들기 전에도 구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