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브래너는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생각보다도 오랜 시간 영화를 '해'온 사람이다. 영화에서의 역할이 감독이든, 배우든 말이다.
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 감독상 등의 후보에 오른 이 영화 <벨파스트>는 북아일랜드의 수도명인데, 케네스 브래너 역시 벨파스트 출신이며 감독 본인의 거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벨파스트> 스틸컷
영화의 배경은 1969년, 벨파스트. 이곳의 사람들은 이웃끼리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가까이 지내며 서로를 아낀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어느 날.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모두 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마을 전체가 갑작스러운 공격을 당한다. 그날 이후로 벨파스트의 사람들은 불안한 시간을 보낸다.
실제로 1960년대 후반부터 일어났던 벨파스트의 종교 분쟁 속의 한 가족을 담아낸 이야기. 영화는 주인공 '버디'의 시선으로 흘러간다. 아이의 시선으로 흘러가는 만큼 내전이라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웃음이 날 정도로 순수해서 더 찡한 구석이 있었다. 버디에게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는 것, 영화를 보는 것, 수학 숙제를 잘해서 반 친구이자 짝사랑해온 캐서린의 옆자리에 앉는 것만이 중요했지만, 벨파스트의 내전으로 갈등을 겪는 부모님과 이웃 주민들을 보면서 갈림길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시작한다. 애처로웠다.
영화 <벨파스트> 스틸컷
아이지만 아이다운 생각을 할 수 없었던 이 아이에게는 너무나 훌륭하고 따뜻한 가족이 있다. 영국까지 목수 일을 하러 다니며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부재에도 굳건하게 가정을 지켜낸 어머니, 무엇이든 답은 하나가 아니라고 말하는 할아버지, 뒤를 돌아보지 말고 떠나라는 할머니. 그들은 갈림길에서 꼭 좋은 길과 나쁜 길 둘 중 하나의 해답만을 찾으려던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한참이 지난 현재에. 과거를, 고향을 그려내는 케네스 브래너라는 인물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될까.
영화 <벨파스트> 스틸컷
비극적인 역사의 시간 속에서도 벨파스트의 사람들은 겉으로는 강해 보였다. 폭력의 잔재로 이루어진 바리케이드 안에서도 날씨가 좋을 땐 집 밖으로 나와 음악을 들으며 춤을 췄고, 삼삼오오 모여 농담을 주고받았다. 내재되어 있는 불안함을 숨기려는 듯, 잊으려는 듯.
하지만 현실은 하나둘씩 벨파스트를 떠나게 만들고 결국 버디의 가족도 어렵사리 이민을 선택하게 된다. 남은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며.
영화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떠난 이들과, 남겨진 이들을 위한 메시지를 담고.
영화 <벨파스트> 스틸컷
그간의 영화에서도 보여줬듯 섬세한 미장센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그 시절의 느낌을 잘 살리기 위해 북아일랜드 출신의 밴 모리슨이 영화 음악에 참여했다. (밴 모리슨의 이름에서 이미 느껴지겠지만, 음악이 정말 좋다.) 그리고 대부분의 배우들 역시 북아일랜드 출신. 이런 점에서 유대감을 많이 느끼고 더 애틋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다양한 방향에서 왠지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방향을 찾은 듯한 케네스 브래너. 나는 98분 동안 이어지는 이 흑백 영화에서 어느 때보다 선명한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