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이루는 것은 단어와 문장, 단락이다. 그것들이 모여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영화를 이루는 것은 쇼트, 신, 시퀀스다. 그것들로 이룬 프레임이 완벽한 영화를 만들어낸다. 아마도 <헤어질 결심>은 그 완벽한 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영화일 것이다.
<헤어질 결심>은 산 정상에서 추락해 사망한 남자의 아내 '서래'와 담당 형사 '해준'이 만나게 되고 이후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개인적으로 여태 봐 온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에 최고였다고 말하고 싶은 영화다. 138분 동안 나를 영화적으로 괴롭힌다. 박찬욱 감독 영화 속 주인공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에게 내심 동정과 연민의 마음을 갖게 했는데, 이 영화의 해준과 서래는 특히 그렇다. 나눠 차고 있는 수갑 아래 닿아있는 두 사람의 손과 해준의 결혼반지. 왠지 모르게 폭력적으로 느껴지면서도 애잔하다. 눈을 감은 해준과 눈을 똑바로 뜨고 어딘가를 응시하는 서래. 포스터 속 한 장면으로도 두 사람의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짐작이 된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디테일이나 미장센 등에 대해서는 말해 뭐하나 싶다. 사실 국내 감독 중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은 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할 정도로 디테일과 미장센이 훌륭하기로 유명하지 않나. 다만, 이 영화에서 조금 다르다고 느낀 점은 각 장면에서 느껴지는 품위다. 담당 형사와 피의자로 만난 해준과 서래가 사망 사건을 조사하면서 유명 일식집의 도시락을 먹고 함께 치우는 깔끔한 장면이라던가, 한국말을 잘 못한다는 서래가 내뱉는 '마침내'같은 부사나 해준이 서래에게 하소연하듯 내뱉은 '붕괴'라는 명사에서조차. 자극적인 장면 연출이 많았던 감독의 전작들과는 달리 해준의 속주머니에서 나오는 입술 보호제나 사탕처럼 은근하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뭐 하나 부족한 데 없지만 이번 영화에서 감독의 연출만큼이나 훌륭했던 부분은 촬영과 미술,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박찬욱 감독과 함께해 온 류성희 미술감독과 조영욱 음악감독은 늘 그래 왔듯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잘 살려주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카메라 워크. 김지용 촬영감독의 시선은 영화 몰입에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박해일과 탕웨이, 두 사람 연기의 정점이 아닐까 싶다, 아주 짧게 등장하지만 박정민의 존재감에 대해서도 대단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이 영화에서 억지로 흠을 하나 잡는다면 김신영의 등장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등장과 동시에 몰입감이 약간 떨어지지만 그마저도 주, 조연 배우들 덕에 금세 다시 몰입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영화는 흠이 없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박찬욱 감독의 결심이 만들어 낸 마스터피스.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이 그런 것처럼 순간의 극단은 영원한 미결로. 138층 자연으로 시작돼서 지하의 자연에서 끝이 난다. 이것은 사고일까, 사랑일까. 당연한 것은 어쩌면 가장 무서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정훈희의 <안개>를 여전히 듣고 있다. 재회한 해준과 서래가 서로를 향해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외치던 안개 자욱한 도시 이포와 아니 그냥 전체적으로 딱 어울리는 곡. 한 곡만으로도 충분한 느낌.
이 영화만큼은 꼭 다시 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제대로 리뷰를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