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이 절정에 다다른 주간이었다. 일요일 저녁 같은 방에서 각자 TV와 휴대폰을 보다가 출출하다는 엄마를 위해 만두를 구워 그제야 마주 보고 앉아 소주 한잔을 하다가 별것도 아닌 일로 말다툼이 시작됐다.
감정이 시냇물처럼 졸졸 흐르고 있다가도 엄마와 대화를 시작하면 거센 날씨의 바다처럼 파도쳤다. 대화가 잘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매일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집에서는 쓸데없는 이야기에 힘 빼는 것을 싫어한다. 반대로 엄마는 종일 이야기 할 상대가 없다가 내가 오면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보통 내 기준에서 쓸데없는 것들이다. 어떤 드라마에서 누가 어떻게 됐다는 둥, 어떤 예능에서 이런 걸 만들어 먹었다는 둥, 어떤 드라마에서 협찬으로 광고하는 그 약이 좋겠다는 둥, 트로트 가수 누구가 어디에 나온다는 둥... 차라리 다른 뉴스거리라면 괜찮겠는데 엄마는 주로 내가 뉴스 중에서도 보지 않는 연예 뉴스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매번 "그런 거 안 궁금해." 하고 말하는데도 굳이 매번 이야기하는 엄마에게 지친 나는 급기야 제발 쓸데없는 이야기 좀 하지 말라고, 그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계속하면 입이 안 아프냐고 물었다. 엄마는 내 말에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색 없이 화제전환을 했다. 그런데 이미 어긋나기 시작한 마음의 내 입은 어떤 말에도 좋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결국 엄마는 내게 처음으로 이런 말을 했다.
"그냥 나가 살아라. 니랑 못 살겠다."
나는 나가 살 테니 지금껏 빌려간 내 돈을 다 내놓으라고 말했다. 그것은 내가 돌려받길 바라고 빌려준 돈이 아니었다. 나와 엄마는 각자의 마지막 말로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을 한 것이다.
수면 장애를 겪고 있는 나는 이어폰을 꽂고 수면유도 빗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후회할 걸 알면서 왜 꼭 나쁘게 말하는 걸까. 왜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는 걸까. 왜 엄마한테만 이러는 걸까.
새벽 내내 생각하다가 이런 결론을 내렸다. 어릴 적부터 환경이든 누구든 탓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내 삶의 어려움에 대해 엄마 탓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나는 내 마음의 나쁜 변화에 두려움을 느꼈다.
잠을 얼마 못 자고 일찍이 출근해서 세팅을 끝내놓고 커피 한잔을 내려 마시며 부동산 앱으로 주변 오피스텔과 원룸을 검색해 보았다. 괜한 짓이라는 것을 스스로 아주 잘 알고 있었는데 무슨 오기가 생겨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한가한 아침에 멍하니 앉아 빈 속에 커피만 연달아 마시다가 손님들의 방문으로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생각을 잠시 멈췄다. 그리고 퇴근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던 오후, 속이 좋지 않아 도시락을 먹지 못하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밥을 먹었냐는 물음에 위장약을 먹고 밥을 아직 먹지 못했다고 했더니 엄마는 그러면 집에 와서 따뜻한 밥을 먹으라고 했다.
어색하게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신나게 정리를 하고 칼퇴근을 했다.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조림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아주 맛있는 냄새였다.
밥상의 메인 메뉴는 고구마순을 넣은 고등어조림이었다. 호박잎과 상추까지 준비해서 김이 나는 뽀얀 쌀밥 한 숟가락에 가시를 잘 발라낸 고등어 살과 몇 줄기의 고구마순을 올려 쌈을 싸 먹는데 진짜 어디 가도 이런 고등어조림은 못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막힌 맛이 입 속에 가득했다. 엄마는 "고등어가 참 좋제. 고구마줄기도 부드럽고." 말했고 나는 그 말에 "나는 뭐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고 그냥 이 자체로 맛있다." 하고 대답했다.
머릿속에 그려졌다. 손수 고구마순의 껍질을 벗기면서 엄마 나름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모습이. 장갑도 끼지 않고 맨손으로 껍질을 하나하나 벗기다 손톱 밑이 까매진 걸 보면서 보답을 바라지 않는 뿌듯한 감정을 느끼는 모습을. 그런 감정이 만들어 낸 고등어조림은 화해의 말이 되었다.
퇴근길 마트에 들러 사가지고 온 막걸리를 엄마와 나눠 마시고 소화시킨다고 앉아서 같이 TV를 보다가 잠이 든 밤이었다. 그날은 수면유도 빗소리를 듣지 않고도 잠을 잘 잤다. 가을이 되면 맛이 제일 좋다는 고등어 한 쌈으로 내 마음속의 두려움까지 꿀꺽하고 삼켰나 보다.
진짜 어디 가도 이런 고등어조림은 못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막힌 맛이 입 속에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