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 중의 통닭.

엄마의 뱃속에서 한 마리에 반 마리를 더 먹은 날.

by 김커피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나의 부모님은 성질 급한 사랑 덕분에 딸도 일찍 얻었다. 엄마와 나는 고작 스무 살 차이. 그 말은 즉슨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나이에 이미 엄마는 나를 가졌고, 낳았고, 엄마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옛날이긴 하지만 그 어린 나이에도 나를 포기하지 않고 힘든 엄마의 길을 걸어준 사실에 항상 감사한다.


내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엄마의 입덧은 그리 심한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여유롭지 않은 형편 때문에 생각나는 대로 먹을 것을 요구하지도 못했던 당신이지만,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입덧 중의 이야기로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다.


하루는 엄마가 좋아하지도 않는 치킨이 너무 먹고 싶었다고 한다. 그 시절의 치킨은 시장에서 생닭을 바로 손질해서 가마솥에 튀겨 기름종이를 깐 누런 종이봉투에 넣어주던 그야말로 시장통닭이었다. 어릴 적에는 어쩌다 한 번씩 먹는 메뉴였던지라 천 원짜리 몇 장을 받아 통닭 심부름을 갈 때면 설레는 마음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콩닥콩닥 뛰는 가슴 장단에 맞춰 달리며 통닭통닭 없는 노래까지 흥얼거렸다. 그 시절에 뭐가 있겠나. 시장까지 이동하는 시간 동안 노래 들을 기기도 없는 때였고, 통닭이 튀겨지는 몇 십분 동안 우두커니 있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도 없었다. 한편에 준비된 통닭집 사장님의 휴식공간으로 보이는 장판이 깔린 작은 마루에 앉아 맛있는 통닭을 만들어 주시는 사장님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면서 닭이 통닭으로 바뀌는 과정을 기다리는 그 시간이 좋기만 했다.


아무튼 그런 통닭이 그렇게 먹고 싶다는 엄마를 위해 아빠는 퇴근하자마자 시장에 가서 통닭 한 마리를 사 왔다. 퇴근한 아빠보다 통닭이 든 봉투를 반갑게 받아 든 엄마는 얼른 봉투를 펼쳐 상 앞에 앉아 맛있게도 먹었다. 그런 엄마 덕분에 아빠는 살 한 점은커녕 껍질이나 튀김 부스러기조차 구경하지 못했다. 닭고기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앉은자리에서 통닭 한 마리를 순식간에 다 먹어치운 엄마를 보며 아빠는 몹시 당황했다. 게다가 엄마는 거기서 그칠 줄 몰랐다. 뱃속의 나까지 하면 2인분을 먹어야 하니 한 마리를 더 사다 달라고 했다. 아빠는 너무 놀란 나머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얼른 시장으로 가서 또 한 마리를 사 왔다. 엄마는 아까와 같이 봉투를 받아 들고 펼쳐 통마리의 닭을 조각내듯 찢어서 마치 처음 먹는 것처럼 다시 맛있게 먹었다. 닭 한 마리에 손대지도 못하고 말 한마디도 붙이지 못하던 아빠는 눈만 끔뻑대면서 엄마를 쳐다보며 속으로 '이것은 데자뷔인가?' 생각했다. 아빠는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을 닮았었는데 그의 잠 오는 듯한 눈빛을 특히 닮은 아빠가 걸신들린 사람처럼 먹고 있는 엄마를 바라만 보고 있었을 모습을 떠올려보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그렇게 열심히 반 마리를 더 먹은 후에야 엄마는 “이제 됐다.” 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아마 그 만족감은 내게도 전해졌을 것이다. 엄마는 그날 이후로 통닭을 잘 먹지 않았다고 했지만 반대로 나는 잘 먹어왔고 여전히 잘 먹는 중이다. 다만 요즘의 크리스피한 프랜차이즈 치킨이 아닌 옛맛이 담긴 통닭만을 찾아 먹는다.


뱃속의 나와 함께 한 마리에 반 마리를 더 먹은 날, 엄마가 남긴 반 마리의 식은 통닭은 아빠의 몫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행복했으면서 아빠는 그날 먹은 닭고기의 양처럼 자신의 몫을 다하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아주 가끔 내가 옛날통닭만을 찾아 먹는 이유가 아빠의 갑작스러운 부재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워낙 어릴 적에 헤어졌기에 아빠에 대한 기억도, 정도 거의 없지만 그래도 나한테 만큼은 좋은 아빠였나 보다 하면서. 호적등본에 아빠의 이름 아래로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나의 그런 생각은 변함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등본상에 보이는 김씨의 나 말고 세 명의 아이들은 엄마와 헤어지고 재혼을 해서 낳은 아이라고 단정 지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껏 아빠가 억센 성격의 엄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우리를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경솔한 판단이었다. 두 달 전쯤 술 한잔을 하다가 취기가 오른 엄마에게 처음 들었는데 아빠는 바람을 폈다고 한다. 엄마가 있는데도 다른 여자를 만났고, 내가 있는데도 다른 아이를 가졌다. 그 말을 듣고 없던 정도 다 떨어졌다. 엄마의 뱃속에서 양분을 받아먹던 통닭의 호시절, 호순간은 그때부터 싹 지워버렸다.


일주일 전은 내 생일이었다. 평소 그런 기념일에 감흥이 없는 사람이라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던 나는 언젠가부터 생일날마다 엄마에게 나를 낳느라 고생 많았다고 감사 인사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니 낳는 거 하나도 안 힘들었는데?" 하고 답한다. 그럼 매번 나는 그래? 하며 그냥 웃고 말지만 속으로 혼잣말을 한다. 하나뿐인 딸의 모진 말을 들으면서도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참고 살았던 우리 엄마 참 고생 많았다고.



뱃속의 나와 함께 한 마리에 반 마리를 더 먹은 날, 엄마가 남긴 반 마리의 식은 통닭은 아빠의 몫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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