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배기의 맛

설탕 발린 사랑의 매개체.

by 김커피

국내 옴니버스 영화 중에 <내 사랑>이라는 작품이 있다. 2007년 겨울에 개봉했고 유명 배우들이 많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흥행하진 못했지만 나 같은 마니아 층이 있던 영화였다. 풋풋한 사랑의 기억을 담은 이 영화가 좋아서 나는 극장에서 두 번이나 관람했다.


제일 좋아했던 에피소드는 대학생 지우와 소현의 이야기였다. 정일우와 이연희가 주인공을 맡았는데 짝사랑하는 학교 선배 지우에게 소현이 소주 한 병을 다 마실 때까지 술을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 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서히 가까워진 둘은 저녁 음주 수업이 아닌 낮 대공원 데이트를 하게 되는데 바로 여기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 나온다.


공원 앞에서 대야 같은 데다 꽈배기와 설탕을 쌓아놓고 파는 사람들. 소현은 꽈배기를 설탕에 푹 찍어서 맛있게도 먹는데, 한입 베어무는 꽈배기가 유난히 쫄깃해 보였다. 입가에 설탕 가루가 묻든 말든, 짝사랑하는 선배가 옆에서 보고 있든 말든 열심히도 먹고 나서야 만족의 미소를 짓는다.


영화 <내 사랑> 스틸컷



영화를 보면서 그 꽈배기의 맛이 얼마나 궁금했던지. 이연희의 미소는 나로 하여금 좋아하지 않는 노선이었던 4호선을 타고 과천까지 가게 만들었고, 진짜 꽈배기 앞에 서게 만들었다. 나를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로 만들었던 설탕 묻힌 꽈배기는 많이들 표현하듯 예상되는 맛, 아는 맛이었다. 달리 특별한 맛은 아니었대도 경험 자체로 특별하게 기억됐다. 하지만 꽈배기를 먹으러 과천까지 다녀왔다는 것을 같이 다녀온 사람 이외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었다.



얼마 전 점심으로 갈비탕을 먹고도 부족해서 꽈배기만 파는 가게에 들른 적이 있다. '꽈배기에는 설탕'은 수학의 정석보다 더 정석이고, 근의 공식보다 더 중요한 공식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직원은 "설탕 할까요? 그냥 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요즘은 먹는 취향도 다 다르고 단 맛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설탕 해주세요." 대답하는 순간에 문득 그날이 떠올랐다.


단지 꽈배기의 맛이 궁금해서 영화 따라 한 시간을 달려갔던 서울대공원. 간 김에 공원이나 돌아보자고 들어갔는데 마치 영화 <아비정전>의 오프닝처럼 나무가 우거진 위를 꽤 긴 시간 동안 지나가는 무심한 생김새의 리프트를 타고 무섭다고 덜덜 떨면서 엉엉 울었던 기억. 콜라를 마시면서 감탄하며 구경했던 돌고래쇼. 우리 안의 동물들을 귀여워하면서도 가슴 한가운데를 쿡쿡 찌르며 아파왔던 마음. 아이들이 작은 손에 쥔 풍선처럼 동그랗게 부풀어 올랐던 설렘. 동물의 동상 위에 올라타 앉아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느낀 미안함. 꽈배기 하나로 그날의 모든 기억이 살아났다.


꽈배기 하나에 추억과 꽈배기 하나에 사랑과 꽈배기 하나에 아픔과. 꽈배기 하나에 고스란한 여러 감정이 설탕처럼 발려있었다.


꽈배기를 먹으러 과천까지 다녀왔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당시 포동포동 살이 오를 대로 오른 내가 기름에 튀겨진 밀가루에 설탕이 잔뜩 발린 꽈배기를 먹으러 다녀왔다고 말하는 게 부끄러워서였다. 유명 맛집에서 두세 시간씩 웨이팅 하고 먹는 사람들도 있는 때에 한 시간 지하철 타고 가서 먹은 게 겨우 꽈배기라고, 그런 꽈배기가 나를 더 살찌게 했다고 부끄럽기까지 할 일인가.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의 부끄러움이 더 부끄럽다. 내가 먹고 싶다는데 내가 다녀왔다는데 그게 뭐가 어때서.

이렇게 자존감이 높아진 정도까지 꽈배기로 깨닫기도 하다니! 꽈배기 너는 알짜배기였어!



영화에서 공원 데이트 이후 복잡해진 지우와 소현의 관계에서 꽈배기는 사랑의 매개체가 된다. 영화 속 두 사람에게는 서로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든 매개체라면, 내 삶의 기억 한 편에서는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든 매개체였다.


이것이 시장엘 가더라도 우연히 가게를 만나더라도 여전히 지갑을 열게 만드는 꽈배기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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