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집에>와 치즈 피자.

케빈이 치즈 피자를 찾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어!

by 김커피

여름만큼 겨울도 싫지만 겨울이 오는 것이 싫지만은 않은 이유가 있다. 캐럴의 분위기와 케빈의 분위기는 오직 추울 때만 만들어진다는 것. 익숙하고 애잔한 그 겨울의 이름. 케빈!


겨울이 올 때마다 내가 빼먹지 않고 챙겨보는 영화 중 하나가 <나 홀로 집에>다.

<나 홀로 집에>는 중산층 가족이 여행을 떠나면서 실수로 인해 홀로 남겨진 꼬마 케빈이 빈집털이 도둑들로부터 집을 지켜내는 이야기다. 어릴 적에 봤던 이 영화는 그저 무섭거나 웃기기만 했는데, 성인이 되어 보는 이 영화는 볼수록 폭력적이고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챙겨보는 이유는 케빈의 먹방이랄까. 어른들과 형, 누나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팝콘이며 초콜릿이며 아이스크림에 콜라까지. 조화롭지 못한 것들을 넘치도록 와구와구 먹는 케빈의 다양한 먹방 중에 나를 사로잡은 것은 치즈 피자였다.


할머니가 손수 해주신 음식들을 먹고 자랐기에 10대까지만 해도 양식과는 친해지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치즈 때문이었다. 나물반찬과 김치, 찌개 등의 대표적인 한식만을 먹고 자란 내게 치즈는 왠지 모르게 구역질이 올라오는 식품이었다. 그 덕에 나는 친구들이 잘만 먹는 스파게티며, 피자 같은 것들을 못 먹는 별종이었다. 아마 그 당시에는 치즈의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보다는 느끼한 맛만을 강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런 내가 치즈 피자맛을 알게 된 것은 20대 초반의 어느 날이었다.

친구와 함께 프랜차이즈 피자집엘 갔다가 친구가 권하는 피자 한 조각을 억지로 한입 무는데... 그건 내가 어릴 적에 먹어본 치즈 맛이, 피자 맛이 아니었다. 입안에서 보드랍고 쫄깃하게 씹히는 치즈와 도우, 토마토소스의 조화가 말도 못 하게 맛있었는데 그때의 기분을 표현하자면 뭐랄까.. 사람들이 보통 첫 키스를 할 때 귓가에 아름다운 종소리가 들린다는 그런 류의 반짝반짝한 황홀함이었다.


케빈이 치즈 피자를 찾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어! 첫 키스의 기분을 잊지 못하는 것과 같은 거지!



맥컬리 컬킨이 케빈으로 분한 <나 홀로 집에> 시리즈 1, 2편에서는 케빈의 최애 피자, 소울푸드로 치즈 피자가 몇 번씩이나 등장한다. 현대의 카메라처럼 풀 HD의 좋은 때깔로 피자를 잡아주는 것도 아니고 먹방 유튜버들처럼 먹는 모습을 내내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난 그 치즈 피자에 꽂혔을까. 케빈이 피자 박스 뚜껑을 열 때는 내가 선물 박스를 여는 것처럼 설레었고, 케빈이 자신의 얼굴보다 큰 피자를 먹는 걸 볼 때마다 그 장면에 주문이라도 걸려있는 건지 홀린 듯이 나도 치즈 피자를 주문하게 됐다.


올해 처음으로 <나 홀로 집에>를 틀어본 이번 주에는 쿠팡으로 주문한 냉동 치즈 피자를 두 조각 오븐으로 구워 먹었다. 배달로 먹을 수 있는 피자집도 많지만 많아도 너무 많아서 고르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가격이 예전 같지 않았다. 자영업을 시작하고나서부터는 소비하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입이 심심해서 편의점을 찾아도 어느샌가 뛰어오른 가격표를 보고 이게 내가 진짜 먹고 싶은 건가, 이게 나한테 진짜 필요한 건가,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물건을 고르게 된다. 빚쟁이보다는 월급쟁이가 낫다는 말을 사장이 되고서야 깨닫는 중이다.


홀로 집을 지키던 케빈처럼 홀로 카페를 지키는 내가 치즈 피자를 먹는데 문득, 케빈의 마음이 어땠을까 궁금해졌다. 혼자 먹는 피자가 맛있었을까. 자신을 놓고 멀리 떠난 엄마와 아빠가 밉진 않았을까. 내 몫을 챙겨주지도 않던 버즈 형이 그리웠을까. 혼자라는 사실에 외롭진 않았을지. 마냥 해맑고 즐거워 보이지만 내심 그렇지 않았을까. 겉으론 걱정도 생각도 없어 보이지만 속으론 그게 아닌 나처럼.

꾸덕하리만큼 많은 치즈가 올려진 피자를 먹으면서 괜스레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누가 보지도 않는데 그 마음을 메우려고 입 속 가득 피자를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그 옛날 영화 속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드는 생각이 씁쓸했지만 피자는 맛있기만 했다.


케빈, 그래도 우리에겐 치즈 피자가 있어. 뜨끈하게 치즈가 녹아든 피자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의 기분을 잃지 말자.


케빈, 그래도 우리에겐 치즈 피자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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