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에 관한 슬픈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국민학교 운동회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에는 운동회날마다 학교 정문 앞에서 쭈그려 앉아있는 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그 할머니는 커다랗고 두꺼운 박스를 옆에 두고 계셨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삐약삐약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병아리를 팔러 오신 건데 당시 500원으로 한 마리를 살 수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짜장범벅도 하나에 300원인데 병아리를 500원에 살 수 있다고? 친구와 함께 삐약거리는 소리를 따라 할머니 앞에 가서 박스 안을 봤더니 정말로 병아리가 열댓 마리쯤 모여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귀여운 광경은 처음이었다.
운동회가 끝나고 나올 때까지도 계속 병아리가 눈에 아른거려서 집에 가기 전에 할아버지께 조르다가 결국 병아리 한 마리를 샀다. 몇 마리 남은 병아리 중에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노오란 아이를 소중히 안고 집으로 갔다.
삐약이.
나의 첫 병아리 이름은 삐약이로 정했다. 할아버지는 집에 있던 박스를 모아서 삐약이의 집을 만들어주셨다. 그날부터 매일 학교에 갈 때도, 수업이 다 끝나고 돌아왔을 때도 가방도 벗지 않고 삐약이에게 인사를 했다. 삐약아 나 학교 갔다 올게. 삐약아 나 학교 갔다 왔어! 그럴 때마다 작은 머리를 갸우뚱거리듯 움직이며 삐약삐약 하는 것이 꼭 내 인사에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삐약이는 내 사랑과 할아버지가 장날마다 구해 온 모이를 먹으며 잘 자랐다. 너무 잘 자란 나머지 어느샌가부터는 삐약이라는 이름이 민망할 정도로 병아리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닭의 모습에 가까워오고 있었다. 무탈하게 성장하며 몸집도 점점 커가는 삐약이와는 달리 내 관심은 점점 줄어갔다. 그래도 하루에 꼭 한 번씩은 삐약이와 교감하듯 인사를 나누었다.
어느 추운 날이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뛰어갔는데 할아버지가 얼른 가방과 윗옷을 벗겨주시며 한 상을 내 앞에다 두시고는 식기 전에 얼른 먹으라는 말만 하셨다. 냄비 안을 들여다보니 처음 보는 음식이었다.
이건 뭐지? 통닭과는 다르게 하얀 속살이 다 드러나 있는데 부드러웠고, 뽀얗고 뜨거운 국물은 차가운 바람에 얼어붙은 몸을 온수에 샤워하듯 녹여주었다. 닭 한 마리를 먹고 국물에 밥까지 말아서 남김없이 먹은 나는 튀어나온 똥배를 자랑하며 온돌 바닥에 드러누웠다. 기억에 남을 따뜻한 하루였다.
다음 날, 학교에 갈 때 미처 삐약이에게 인사를 못하고 나온 것을 깨닫고 끝나고 집에 가면 삐약이부터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수업을 들었다. 마침내 하교를 하고 집으로 갔는데.. 응? 삐약이가 없었다. 마치 삐약이는 이 자리에 없었다는 것처럼 흔적도 없이.
"할아버지 삐약이 어디 갔어?"
내 물음에 할아버지는 그저 웃기만 하셨다. 아마 '네 뱃속에 있지.' 같은 말을 했다가는 내가 기절이라도 할까 봐 그런 게 아닐까. 하지만 할아버지가 설명하지 않아도 무언의 대답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삐약이가 나의 따뜻한 하루를 위해 희생되었다는 것을. 정말 슬펐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진 않았고 삐약이가 지내던 박스 앞에 얌전하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이미 사라져 버린 삐약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꿈속에서 삐약이를 만날까 봐, 만나면 할 말이 없을 것 같아서 감기는 눈을 억지로 떠가며 잠들지 못했다.
나는 그날 이후 몇 번의 운동회를 더 겪었지만 병아리를 파는 할머니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