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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Jan 25. 2024

참 신기한 손님 화법

감정노동자로 사는 것 (4)

매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나는 장사를 하는 일 년 간 손님 화법 데이터를 어느 정도 뽑아낼 수 있었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화법은 신기하게도 꽤 많은 사람들이 사용했던 화법이다.



첫 번째, 공격형.


"과일주스 있어요?"

"손님 죄송한데 지금은 생과일이 다 떨어져서 주스 주문이 안 돼요~"

"그럼 뭐가 되는데?!"


우리 매장에는 과일주스를 제외 메뉴만 47가지가 있는데 딱 한 가지 없다고 노려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럴 때면 내가 대역죄인이 된 것 같아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두 번째, 알쏭달쏭형.


"쿠폰이랑 영수증 드릴까요?"

"쿠폰 그런 거 없는데?"

"찍어드릴까 여쭤보는 거예요~"

"아 나 처음 왔는데."

"찍어드릴까요?"

"쿠폰 그런 게 필요가 있을까?"

"필요 없으신가요?"

"아 할까? 말까?"


가족오락관도 아니고 이런 분들께 대답 듣기란 여간 쉽지가 않다. 뒷사람이 주문을 기다리고 있는데도 남들의 기다림 쯤이야 예사로 생각하고 커피 한 잔 주문하는데만 1분 이상 소요 된다.



세 번째, 말장난형.


"아 싸장님 아메리카노 한 잔 주쎄요옹."

(커피를 드리며) "아메리카노 여깄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아 싸장님 아가리또 고자이마~스~~"


영화 <범죄도시>의 마석도 형사가 온 줄 알았다며 받아쳤더니 그건 못 알아들으시고 정색을 하시던 손님. 오는 말장난이 있으면 가는 말장난도 있거늘.



네 번째, 줄임말형.


"아아 하나 뜨아 하나 아바라 하나요."

"네?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시겠어요?"

"아!아! 뜨!아아바!라!!!"


절대 못 알아들어서 되물은 게 아니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내가 그들의 친구도 아니고 이런 줄임말형으로 주문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 생각일부러 되묻는 건데 그럴 때면 꼭 한숨을 쉬며 '이것도 못 알아듣냐'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아예 줄임말로만 성질내듯 말한다. 느낌표까지 팍! 팍! 붙여서 우렁차게 말이다.



다섯 번째, 쿠크다스형.


"커피 향이 너무 좋아서 홀린 듯이 왔어요."

"커피가 참 맛있더라고요."

"사장님이 친절하고 좋으네."

"다음에 또 올게요!"

"여기 쿠키가 제일 맛있어요."

"사장님. 저는 여기 올 때마다 너~무 좋아요."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입 안에 넣은 쿠크다스처럼 살살 녹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이 분들은 호그와트라도 졸업을 하신 걸까.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건지.



이 땅의 수많은 감정노동자들을 죽게 하는 것도 말이지만, 살게 하는 것도 말이다. 부정의 말을 열 번 들을 때보다 긍정의 말을 한 번 들을 때의 힘이 훨씬 더 크기에 우리는 긍정의 한 마디에 힘을 얻고, 힘을 내어 살아간다. 점점 팍팍해지는 세상이지만 우리에겐 아직 이렇듯 희망과 온정이 있다.


모두의 무탈한 하루를 위해 나는 오늘도 으라차차! 마음속으로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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