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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Apr 10. 2024

어느 애콜가의 아랍 콜라 이야기

코카콜라 맛있다 맛있으면 또 먹지

내게는 좋지 않은 식습관이 있다. 그건 바로 콜라. 나는 콜라를 심각하게 좋아한다.


시작은 20대였다.

탄산음료 대신 과일 주스만 있었던 우리 집 냉장고를 여닫던 10대를 벗어나 대학 진 때문에 멀리 떠나 자취 생활을 하게 된 나는 온갖 몸에 안 좋은 것들을 마구 주입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 잘 먹지 못했던 정크 푸드와 카페인, 알코올 같은 것들. 느끼하고 짠맛이 강한 음식들을 먹기 시작하니 탄산음료도 어색함 없이 받아들이게 됐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콜라를 자주 만났다. 주야장천 마셔대니 나중에는 회사마다 다른 맛도 알 수 있을 지경이 되었다. 나야말로, 그야말로 애콜가 아닌가.


겨우 콜라를 굳이 쓸 일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몸에 축적된 콜라만큼 나의 콜라 경험은 많고,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콜라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이렇게 하려고 한다.


2016년 겨울.

당시의 나는 일주일 동안 손수 짐을 옮겨 나르는 이사를 끝낸 터라 수면 시간이 부족했고 꼴이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특히 바쁜 금요일 근무를 끝내고 이게 여행자의 모습이 맞나 싶을 만큼 상당히 후줄근한 상태로 인천공항을 찾았고, 공항에서 대충 저녁을 때우고 밤 비행기로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로 떠났다. 여행의 경유지가 아닌 목적지로 두바이를 선택한 이유는 내가 취미 생활에 진심이 편이기 때문이었다. 축구를 보기 위해서였다.


K리그를 좋아하는 나는 모 팀을 십수 년째 응원하고 있는 서포터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도 성적이 좋은 팀끼리 하는 토너먼트 대회 <AFC 챔피언스 리그>가 있는데 나는 그 대회의 결승전을 보러 멀리 중동으로 떠났다. 열 시간의 비행을 하는 동안 잠은 겨우 두 시간쯤 잤고, 차가운 겨울인 한국과 확연하게 다른 온도의 두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더운 것 같기도 한 데 그리 덥진 않고 습한 것 같기도 한데 그리 습하지 않았다. 두바이를 여행하기에 좋은 때라고 생각이 되는 날씨였다.


일행들과 함께 숙소 체크인을 하고 일단 축구장이 있는 아부다비의 알 아인으로 출발했다. 알 아인까지 가는 길에 여기저기를 구경했지만 시차 때문에 거의 못 잔 상태라 이동하는 동안에는 꾸벅꾸벅 졸기만 했다. 그렇게 졸다가도 깨는 순간이면 다가오는 경기 시간 때문에 가슴이 답답했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날의 한 경기로 모든 게 달라지는 상황이라 많이 긴장됐다. 조마조마한 마음처럼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저녁이 되었고, 처음 보는 경기장을 구경하는 척하며 긴장감을 숨기려 애쓰다 보니 숨 막히는 90분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응원하는 팀이 우승했다.

한자리에 모여 WE ARE THE CHAMPIONS를 부르는데 벅찬 마음에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고 이 영광에 나도 한몫 한 기분이 들어 뿌듯했다. 아쉬운 건 축구장에서 맥주가 허용되지 않는 국가였기에 그 자리에서 바로 축배를 들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다소 건전한(?) 우승 현장 속에서 시상까지 끝난 후 그곳을 빠져나오는 차 안에서 뒤돌아 멋진 불빛을 뽐내는 경기장을 계속 바라보았다. 이게 다 꿈같아서.

우승에 목이 말랐던 우리는 우승을 하고 나니 진짜로 목이 말랐다. 사람 참….


경기장에서 조금 벗어났더니 주유소 같기도, 편의점 같기도 한 곳이 보여 정차했다. 간이 휴게소 같은 느낌이었는데 상품이 꽤 준비가 잘 된 매장이었다. 물과 음료수를 여러 개 골랐는데 나는 당연히 콜라를 택했다. 그런데 콜라의 모습이 특이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빨간색의 콜라 캔인데 사이즈가 손바닥을 쫙 편 것보다도 컸고 낯선 기호 같은 글씨가 쓰여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다가 이내 여기가 아랍어를 쓰는 국가라는 것을 깨달았다. 중동에서 마시는 콜라라니... 신기했다.


내가 마시는 콜라는 세 가지가 맞춰져야 했다. 탄산의 정도, 적당한 당도, 온도. 콜라 하나 마시면서 뭐 그렇게까지 까다로울 일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콜라는 커피나 술과 더불어 내 순간순간을 좌지우지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음료였다.


캔을 따니 탄산의 소리가 들렸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소리가 굉장히 크고 유쾌했으며 아니나 다를까 탄산조차 더 센 느낌으로 다가왔다. 단맛은 덜하게 느껴졌는데 그건 딱 내가 원하던 콜라의 맛이었다. 더군다나 중요한 냉장의 온도! 더운 지역이라 그런지 냉장고의 온도가 차가워서 얼음 컵이 따로 필요 없었다. 축배를 들어야 할 현장에서 맥주를 마시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는 콜라의 맛이었다.


장장 열 시간을 날아 다녀온 곳에서 쓰고 싶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 콜라라니. 나도 내가 참 우스워서 너털웃음을 짓다가 어린 시절에 많이 부르던 노래를 떠올렸다.


코카콜라 맛있다. 맛있으면 또 먹지.


먹음으로써의 콜라만 기억하고 싶던 나는 항상 여기까지만 불렀다. 그리고 그 노래의 가사처럼 맛있어서 또 먹어 온 시간은... 셀 수 없다.



요즘은 건강을 생각해서 콜라를 줄이려고 노력 중이다. 정말 마시고 싶을 땐 당이 없다는 제로 콜라를 마시거나 참을 만하다면 탄산수로 대체해서 마신다. 콜라가 몸에 좋지 않은 건 확실한데 내 기분이 확실할 땐 언제나 콜라를 찾게 된다. 광고에서 보던 것처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나쁜 맛은 건강에 해롭지만 정신 건강에는 이롭다. 이것이 내가 여전히 콜라를 마시는 행위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이자,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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