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는 멘탈이 마치 유리와도 같아서 누가 살포시 건들기만 해도 바스러지는 낙엽 같은 상태였다. 왜 하필 그런 때에 그 시가 내 눈앞에 나타났을까!
시의 내용은 간장 속에 담긴 꽃게가 뱃속의 알을 지키려고 버둥거리다가 살 속으로 스며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었다. 어미 꽃게는 그 과정에서 알들에게 말한다. 저녁이라고, 불을 끄고 잘 시간이라고. 나는 시를 한 번 읽고 믿기지 않아서 두 번 세 번 더 읽었다.
꽃게의 등판에 울컥울컥 쏟아지는 간장처럼 내 눈에서 왈칵왈칵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속수무책. 나는 처절한 이 시 앞에 철저하게 무너졌다. 눈물도 모자라서 콧물까지 흘러내리는데 그때의 기분은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가 없었다. 나를 이렇게 슬프게 하는 시인이 미울 정도였다.
그런 모습을 나의 최측근이 보았다면 아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고생 꽤나 했을 거다. 왜냐하면 나는 간장게장을 굉장히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장을 그렇게나 잘 먹는 주제에 시 하나로 이렇게나 운다고? 내가 생각해도 골 때리는 상황이었다.
진심으로 미안했다. 그동안 내가 그들을 깨물었던 것처럼 마음을 깨물려 아팠고, 알이 가득한 꽃게의 배를 까면서 좋아했던 나에게 혐오감이 들 정도로 슬펐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내가 이불에 엎드린 채로 겨우 숨만 쉬면서 다짐했다. 다시는 간장 게장을 먹지 않기로. 그리고 다시는 그 시를 읽지 않기로.
그렇게 몇 년쯤의 시간이 흐르고 스며들었던 슬픔을 까마득히 잊은 어느 날이었다.
그날의 약속 장소는 인사동에서 유명한 게장 백반집이었는데 사람들이 많은 곳에 정신없이 자리를 잡고 앉아 별생각 없이 게장에다 밥을 잔뜩 먹고 나왔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분이 이상했다. 이유가 뭘까 머리를 굴려 생각하다 아뿔싸! 그제야 깨달았다. 내 다짐이 무너진 날이라는 것을.
하지만 6년 정도의 시간 동안 게장을 멀리하면서 시도 멀리해서 그런지 죄책감이 덜했고 나는 또 그렇게 죄를 짓기 시작했다. 일부러 시만 멀리하며 다시금 간장게장을 가까이했다.
그래도 가끔 간장게장을 먹는 날이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동시에 시의 구절을 하나라도 외우지 않고 있어 다행이라는 억지를 부린다.
나란 사람은 정말 먹는데도 진심인데 슬픈데도 진심이다.
얼마 전, 엄마가 간장게장이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전라도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밥집에 엄마를 모시고 갔다. 엄마는 그곳의 간장게장이 비리지도 않고 너무 맛있다며 먹어보라고 권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엄마 많이 드시라고 효녀 노릇을 하며 시를 한번 떠올렸다.
그리고 내게는 아직도 간장게장이 참을 수 없이 무겁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같이 나온 국물과 생선, 묵은지와 나물 반찬만으로도 밥을 배불리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