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퇴근하고 귀가 후 입가심처럼 간단하게 술을 하고 싶을 땐 맥주만을 마시고, 푸지게 즐기고 싶을 땐 소주와 맥주를 일대일 비율로 말아서 글라스 반 잔을 채워 한입에 털어 마신다. 그리고 인생이 고단할 때, 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극단적인 감정이 오가는 경우엔 오로지 소주만을 마시는데 단언컨대 최고의 소주 안주는 바나나 우유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말이다.
옛 기억을 떠올리면 보통의 사람들은 단지 우유라고 불리는 뚱땡이 바나나 우유를 주로 목욕탕에 다녀오면서 마셨다고 한다. 그런데 내 기억 속에 바나나 우유는 목욕탕의 뜨끈한 기운이 아니라 프레시한 초록색 병의 시원한 소주와 함께다.
술을 배우기 시작했던 대학 신입생 때는 내 모습도 초록의 소주만큼 참, 프레시했다. 동그란 얼굴에 땡그란 눈 때문에 늘 “장화 신은 고양이 같아!”하는 소릴 많이 들었다. 그리곤 뒤이어서 하는 소리가 “바나나 우유 사줄까?” 다들 하나같이 똑같은 대사를 하는 이유는 한때 히트했던 바나나 우유의 광고 탓이었다.
광고에서는 한 꼬마가 유명 애니메이션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한 캐릭터인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간절한 눈빛을 하고 바나나 우유를 마시는 어른을 쳐다보고 있다.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아이의 눈빛을 조명하는 듯한 산울림의 노랫말이 흐르고, 바나나 우유는 곧 꼬마의 손에 쥐어진다.
“마음은 나눌 때 채워진다.”
내레이션으로 나오는 이 한마디를 끝으로 광고가 마무리되는데 정말이지 20초라는 짧은 시간에 바나나 우유 하나로 마음을 잘 담았고 잘 나누면서 잘 채웠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풍요의 바다로 만드는 이 광고처럼 나의 20대를 채워준 사람도 많았다.
사랑을 준 사람에게도, 사랑을 받은 사람에게도 바나나 우유에 관한 기억이 잦다.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는 사람에게 바나나 우유를 받았고, 그런 슬픈 눈으로 내가 봤더니 바나나 우유를 나눠 마시게 됐다. 나의 청춘은 바나나 우유가 이루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풋풋한 청춘의 기억을 벗어난 후로부터 바나나 우유는 쓴 맛이 강한 인생을 알기라도 하는 듯 내 앞의 소주잔 곁에서 나를 마주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칠분을 따른 소주를 삼분으로 꼴깍, 꼴깍, 꼴깍, 음미하듯 들이켠 후 바나나 우유를 한 모금 쭉 빨아들이면 먼저 목을 적신 알코올을 타고 쑥 내려간다. 금상첨화는 소주에 바나나 우유가 더해질 때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맛이다. 좋은 것에 좋은 걸 더한 것처럼 내 인생도 좋은 일에 좋은 일이 더해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또 그런대로 괜찮은 인생이다.
바나나 우유는 항아리 같은 생김새처럼 마음이 넓어서 내게 노란색의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주었을까. 사람도, 사랑도. 단 맛도, 쓴 맛도. 여전히 나를 채워주는 고마운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