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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Mar 15. 2024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노래 되고 시가 되고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명태

2002년, 월드컵의 여운이 사라질락 말락 하던 가을.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강산에의 6집을 자주 들었다. 그중에서도 나를 사로잡은 노래가 바로 <명태>였다.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노래되고 시가 되고

약이 되고 안주되고 내가 되고 네가 되고

그댄 너무 아름다워요 그댄 너무 부드러워요

그댄 너무 맛있어요 감사합니데이


- 강산에 <명태> 中



어려서부터 바다에서 나는 것들을 많이 먹고 자라서 생선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명태는 내게 다섯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생선이다. 강산에의 노래 가사에서처럼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고 이름도 서른 가지가 넘는 매력 넘치는 생선이기 때문이다.

버릴 것 없는 생선답게 먹는 방법도 여러 가진데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명태를 먹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 명태전이라고 부르면 어쩐지 좀 평범하게 느껴지지만, 이곳의 명태전은 보통 사람들이 아는 명절 때 먹는 순살로 작게 부친 명태전과는 다르다.


처음 명태전을 먹어본 것도 고등학생 때였다.

하루는 할머니께서 집에 있는 나에게 전화를 하셔서는 집 근처 어디론가 나오라고 하셨다. 그 어딘가는 집에서 3분 정도 거리에 있는 작은 막걸리 집이었는데 안주 메뉴가 명태전뿐이었다. 우리 집은 외식을 잘 안 하는 편이라 '명태전을 굳이 사 먹으러 왔나?' 생각했는데 주인장 할머니께서 만드는 명태전을 보고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심지어 컬처 쇼크를 받았다.


막걸리 집의 주방에는 옛날의 아궁이와 비슷한 화로 위에 큰 솥뚜껑이 거꾸로 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주인장 할머니는 달궈진 솥뚜껑 위에 기름을 몇 바퀴 두르고는 한편에 놓여있던 동그란 그릇에 반쯤 채워져 있는 반죽을 고르게 펴서 놓고 그 위에다 반으로 가른 명태를 통째로 올려놓으셨다. 그리고 그 위에 남은 반죽을 명태의 속살을 가릴 옷을 입히듯 조금씩 명태 전체에 펴 바르셨고 한참을 굽다가 큼지막한 나무 뒤집개 같은 걸로 통 명태전을 뒤집고 전의 옆쪽으로 기름을 보충하며 구우셨다. 기름을 더 넣을 때마다 지글지글 챠아- 하는 소리가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까지 내게 만들었고 그 소리들은 경쾌했다. 냄새마저 맛있어서 나의 후각과 청각이 그것을 미치도록 궁금해하는 중에 드디어 명태전이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굽는 과정을 그대로 보고 있었지만 통으로 구워서인지 비주얼이 투박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맛은 어떨까? '전'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위함인 듯 고추 등의 다진 채소가 들어간 부침가루 반죽은 최소한으로만 써서 느끼하지 않고 적당히 짭조름하고 고소한 얇은 옷의 튀김 같았다. 거기다 두툼한 명태 살을 같이 집어서 간장에 찍어 먹으니 입안이 천국이었다. 나 왜 이제야 이 맛을 안 거지? 막걸리를 드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앞에서 음료수를 놓고 안주를 먹는 10대의 내가 괜히 억울해지는 맛이었다.


통 명태전의 화룡점정은 명태의 대가리였다. 대가리에서 쏙쏙 발라먹는 살점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아, 정말이지 명태는 버릴 것이 없는 생선이구나.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종종 그곳에 가서 명태전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 한 번씩 친구들을 데려가기도 했는데, 20대 초반의 친구들이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꼈다가도 그 냄새와 맛에 반해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돌아갔다.


시간이 흐르고 당시 살던 집 근처 일대가 재개발 구역으로 정해지면서 우리 집은 이사를 했다. 가정집뿐만 아니라 상점들도 하나둘씩 빠지고 천을 따라 시장까지 이어지는 길에 꽤 많이 있던 명태전을 주로 하는 막걸리 집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기억된 맛을 추억으로 남겨야 하는 게, 그때의 모든 것이 사라져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전이라는 메뉴에는 옛 것의 그런 구슬픔이 있어서일까. 비가 오면 전이 생각난다. 한국인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 나도 언젠가부터 그 말에 공감했고 어느 날엔 절실하기도 했다. 너무 절실한 나머지 엄마에게 명태전을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순 없냐고 했더니 엄마는 마치 '식은 죽 먹기'라는 속담의 표본이 되는 것처럼 할 수 있다고 예사롭게 대답했다. 엄마는 저녁시간이 가까워질 때쯤 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처럼 뚝딱 명태전을 만들어 냈고, 나는 엄마의 명태전 상에 내 젓가락과 마트에서 얼른 사 가지고 온 막걸리만 얹었다. 역시 추억의 맛을 살리는 데에는 엄마가 해결사구나. 기가 막힌다. 노래인지 말인지 시구인지 모를 흥얼거림이 절로 나왔다.


그러고 보면 강산에의 노래도 양명문이 지은 시에 작곡가 변훈이 붙인 가곡 '명태'가 모티브가 되었다. 양명문의 시를 읽으면 좀 싸한 느낌도 든다.



에짚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쫙쫙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 양명문 <명태> 中



해학과 풍자를 담은 이 시는 당시 엄청난 혹평을 받았다고 하지만 시대라는 단점이 있었기에 그랬던 것 아닐까. 나는 제 몸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명태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는 그의 말과 글, 생각에 동의한다. 실로 명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 그 이상으로 귀한 것이니까.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바다 밑의 거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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