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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Mar 01. 2024

승부욕의 시작은 물떡이 아니었을까

하굣길의 문방구

나는 국민학교로 입학을 해서 초등학교로 졸업했다. 그래서인지 급하게 변한 세상의 모습에 가끔은 나도 어쩔 수 없이 ‘나 때는 말이야’의 사람이 되기도 한다. 평소엔 그런 말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자신 있게 ‘나 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가 국민학생의 신분을 가지고 지내던 시절의 이야기다. 우리 학교 교문 앞에는 크고 작은 문방구가 몇 개 늘어서 있었다. 교문을 나서면 바로 보이는 제일 큰 문방구의 등교하는 오전 시간과 하교하는 오후 시간은 조금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침엔 주로 학용품을 파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문방구의 모습 그대로였다. 전날 준비해놓지 못했던 준비물이나 샤프심, 지우개, 실내화 등을 찾는 아이들로 붐볐다. 그러나 그 정도는 붐비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오후엔 하굣길에 들른 아이들로 넘쳐났다. 그 문방구는 좀 특별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갈 때쯤의 문방구 입구는 마치 길거리 분식점처럼 변해 있었다. 입구 바로 앞에는 수레 같은 게 서 있고 그 위에 자리한 쇠 통에 흔히 아는 분식집의 어묵 꼬치가 개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꽂혀 있었다. 장독처럼 생긴 작은 사기그릇에 간장도 듬뿍 담겨 있었다.


어묵 통에 담긴 수많은 꼬치 중 몇 개는 떡꼬치도 있었다. 개수가 적어 경쟁률이 치열했던 물떡! 경상도에서나 볼 수 있는 그 물떡은 말이야 추억의 맛이란 말이야!


경쟁률이 엄청났지만 나는 항상 그 경쟁에서 이기고 말았고, 물떡을 먹고야 말았다. 내 승부욕의 시작은 물떡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매번 해냈다.


몇백 원의 용돈을 주로 하굣길 군것질로 쓰던 나였기에 물떡을 먹는 시간이 너무 소중했고, 소중하기에 아껴 먹었다. 간장을 찍고 빨아먹듯 약간만 베어 먹고, 또 간장을 찍어 작게 한입 베어 먹었다. 물떡을 간장에 찍어 먹는 건지 간장을 물떡에 찍어 먹는 건지 모를 만큼 조금씩 여러 차례 나눠 먹고, 약수터에 있는 바가지처럼 작고 빨간 바가지에다 어묵 국물을 퍼서 여러 번 마셨다. 그렇게 꼬치 두 개를 먹고 나면 그날 남은 재산을 탕진했지만 대신 배가 불렀다.


집에 가기 전에 문방구를 들리던 학생들에게는 나름의 계급이 있었다.

나처럼 물어묵이나 물떡꼬치를 사 먹는 아이들, 그마저도 사 먹지 못하고 꼬치 사 먹는 친구 옆에서 국물만 얻어먹고 가거나 문방구를 쳐다보지도 않고 가버리는 아이들, 그리고 하굣길의 부르주아(?) 계급. 입구 왼편으로 목욕탕에서나 볼 수 있던 낮은 의자가 여러 개 준비된 곳에 쭈그리고 앉아 짜장이 범벅된 맛 컵라면을 사 먹는 아이들. 당장이라도 튀어나와 “띵호와!” 할 것 같은 주방장 그림이 그려진 그 라면은 300원에 먹을 수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너도나도 입가에 소스를 묻혀가며 열심히 먹는 그 친구들을 보며 나도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한 번은 큰맘 먹고 이틀 동안 물떡을 포기하고 용돈을 모아 컵라면을 먹는 데에 쓴 적도 있었다. 불편하게 쭈그려 앉아서 먹는 건데도 어찌나 맛있던지... 아 소소하게 행복했던 옛날이여.



옛날을 외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그때만 해도 종지에 간장을 덜어서 따로 먹는 게 아니라 모두가 그릇 채로 함께 간장을 이용했고, 어묵 국물을 뜨는 국자가 따로 있던 게 아니라 입에 댔던 바가지 그대로 떠서 사용했다. 그래도 불쾌하거나 불편하다는 생각 없이 마냥 좋았다. 그렇게 마냥 좋을 수 있을 정도로 하굣길의 학생들은 시간이 남아돌았다. 학원에 다니던 아이들은 전교생 중에서도 극소수였고, 다들 군것질 후 놀이터에서 놀거나 집으로 돌아가 뒹굴뒹굴하며 만화 시간을 기다렸다. 지금을 생각하면 위생적으로도 그렇고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 가기 바쁜 아이들의 교육 현황을 보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요즘의 시대는 우리 부모님 세대는 따라가기 힘들 만큼 빠르게 발전했고, 변한 것들도 많다. 제일 많이 변한 것이 바로 이런 장면들 아닐까. 과거에는 소소하고 일상적인 장면이었지만 현재에는 보기가 드물고 절대 소소하지 않은 장면.


이렇듯 소소한 행복을 즐겼던 옛날의 내가 있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또 다른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지금의 내가 있길 바란다. 그렇게 모두가 아쉬운 마음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을 찾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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