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던가, 내가 살고 있던 지역에 햄버거 집이 하나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햄버거 집은 지금까지도 인기가 많은 패스트푸드점 M사였다.
그때까지 나는 햄버거라는 것에 대해서는 학교 친구들을 통해 듣거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걸 잠시 잠시 본 게 다였는데, 들을수록 궁금했고 볼수록 먹고 싶어졌다.
“그 햄버거가 얼만데?”
“잘 모르겠는데 엄청나게 비싸다고 하더라!”
햄버거라는 것의 가격은 친구들도 잘 모르는 듯했다. 슈퍼에서 과자 봉투만 돌려봐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알기 쉬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는 인터넷의 존재도 몰랐던 아주 옛날이었으니까. 직접 겪어보는 게 아니면 알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왠지 모를 배짱이 생겼다. 햄버거라는 거 내가 먹어봐야겠다!
그렇게 다짐을 한 뒤로부터 매일 몇 백 원씩 받던 용돈을 모았다. 방과 후에 친구들과 모여서 주전부리를 하는 시간도 피하며 보름쯤을 힘들게 버텼다. 조그만 동전지갑을 보름 만에 들어보니 제법 묵직해져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동전을 세어봤더니 몇 천 원이 되었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오늘이다! 하고 외쳤다.
이 정도면 햄버거를 먹을 수 있겠지!
나는 가방을 내려놓기 바쁘게 동전지갑만 들고 집을 뛰쳐나갔다. 집에서 햄버거 집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쯤에 있었다. 달리기는 매번 꼴등을 하는 내가 한 번을 쉬지 않고 뛰어서 10분 만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입구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막상 들어가려니 햄버거 집이 나 혼자 들어가기엔 말할 수 없이 크게만 느껴졌다. 알아보지도 못하는 영어로 되어있는 간판 아래 서있는 내가 너무 작게 느껴졌지만, 햄버거에 대한 열의가 강한 나머지 문을 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내 키보다 높은 카운터에 점원이 몇 분 서서 우렁차게 인사를 했다. 나는 그 당찬 인사에도 압도당하고 말았다. 거의 울상을 하고 메뉴판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눈치 빠른 점원 언니 한 분이 주문을 도와주셨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저 그 언니께 감사한 마음으로 “네”만 반복하다가 주문을 당했고(?) 계산을 했다. 까치발을 하고 카운터에 붙어 서서 동전지갑에 모아둔 동전을 털어서 내려놓는 나를 귀엽게 본 점원 분들은 다들 친절히 대해주셨다. 햄버거 세트가 놓인 쟁반을 내게 쥐여 주시고 맛있게 먹으라고 인사해 주시는데 세상에... 그때의 그 기분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테이블에 쟁반을 놓고 가만히 보았다.
세트라고 하는 구성으로 주문했는데 난생처음 보는 햄버거, 처음 보는 감자튀김, 처음 보는 얼음 콜라였다. 나는 엄숙한 자세로 일단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톡 쏘면서 들어와서는 달달하게 남는데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으로 따뜻한 감자튀김을 하나 물었다. 명절 때 먹는 그런 튀김과는 차원이 다른, 자꾸만 손이 가는 신기한 튀김이었다. 또 손이 가려는 찰나 앗차 싶어 햄버거 봉투를 벗겨서 한 입 베어 물었다. 작은 입으로 크게 베어 물고 씹었더니 처음엔 맛이 잘 느껴지지 않다가 이내 온갖 ‘먹어보지 못했던’ 맛이 느껴졌다.
느끼하다는 게 이런 건가. 아... 느끼하다!
항상 할머니가 해주시는 반찬 예를 들어 깻잎 무침, 고들빼기김치, 파김치, 멸치 볶음, 어묵 볶음 등의 담백하고 짠맛에 길들여져 느끼한 맛과는 친하지 않았다. 치즈와 마요네즈의 존재조차 알지 못할 때였는데 햄버거는 ‘나와 친하지 않은 맛’의 완전체였다.
세트의 조연이었던 감자튀김과 콜라는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었지만 주연이었던 햄버거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 먹은 쟁반을 어디에 두는지를 아무리 둘러봐도 안 보이는 게 아닌가. 아마도 있었는데 당황한 내 눈에는 안 보였던 것 같다. 나는 테이블 주변만 살피던 시선을 카운터 쪽으로 돌렸다. 점원 분들은 바빠 보였고, 그 틈을 타 쟁반을 채로 들고 슬그머니 화장실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늘 내게 말씀하셨다. 음식은 가려서도 안 되고, 남기는 것도 아니라고. 나는 햄버거를 가리기도 하고, 남기기도 했다. 큰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고 앞서 내게 보여주신 친절함에 무례함으로 답하는 것 같아 죄송하기도 했다.
그래서 화장실 행을 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스울 정도로 황당한 대처긴 한데 햄버거를 남겼다는 죄목이 있어 그 햄버거를 처리해야만 했다.
세면대에 쟁반을 둔 채로 남은 햄버거를 들고 휴지에 싸서 화장실 쓰레기통에 조심스럽게 버렸다. 혹시라도 휴지에 싸여있는 햄버거가 보일까 봐 쓰레기통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마지막 확인을 하고 돌아서는데 화장실에 들어오는 점원 언니와 딱 마주쳤다.
아뿔싸. 나는 꼭 얼음 땡 놀이를 하다가 땡을 안 해줘서 못 움직이는 아이처럼 가만히 서서 점원 언니를 보고 있었다. 큰일 났다 싶었는데 역시 점원 언니는 눈치가 빨랐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눈웃음으로 인사하며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며 세면대에 둔 쟁반을 들고 부리나케 뛰어나가 카운터에다 올려놓으며 모기가 친구 하자고 할 것 같은 목소리로 “안녕히 계세요.” 하고 나왔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경험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내가 햄버거 먹으려고 매일 새우 과자와 문어 과자도 참고 용돈을 모았는데! 과자보다 훨씬 멋진 맛일 줄 알았는데! 역시 무엇이든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야! 햄버거 사태로 초등학교 저학년의 나이에 인생의 진리를 깨달아버렸던 것이다.
그날 밤 자려고 이불을 덮고 누웠는데 못 먹어서 억울했던 햄버거에 대한 마음과는 달리 친절했던 점원 분들이 떠올랐다. 불을 꺼서 어두워진 허공에다 그분들의 얼굴을 그려보며 잠이 들었다. 훗날 나도 그런 서비스업의 종사자가 될 거라는 것을 그땐 몰랐겠지. 지금까지도 티 없이 맑게 웃던 그분들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때 그분들처럼 주문 자체가 어려운 아이들이나 어르신들이 고객으로 오면 최선을 다해 도와드린다. 그런 날이면 괜히 풍족한 마음이 드는데, 그때 그분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겠다는 생각이 들면 새삼 코끝이 찡해져 온다.
역시 무엇이든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