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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Feb 23. 2024

다정할 땐 짜장면

우리 짜장면 먹을래요?

TV 프로그램 같은 데서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옛날에는 짜장면, 치킨, 갈비 이런 건 특별한 날에나 먹었는데 말이죠.” 지금의 어린 친구들이 들으면 절대 이해 못 할 말이지만 그 말은 진짜다. 우리는 그때 생일처럼 1년에 한 번 있는 날이거나 입학식이나 졸업식, 이사하는 날처럼 어쩌다 한 번 있는 날에나 짜장면을 치킨을 혹은 갈비를 먹었다. 얼마나 귀한 순간이었을까.



유년기에는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많다. 몇몇 인상 깊은 추억 중에서도 하나 떠오르는 게 있는데, 짜장면을 먹으러 동네 중국집에 갔던 날이다. 그날은 앞서 말한 것처럼 그런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아주 보통의 날이었지만 내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사건을 내가 만들었던 날이다. 욕심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에 물욕이라니... 지금 생각해 보면 굴욕이다.


그때 즈음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팬시점이 하나 생겼다. 생애 처음으로 보는 가게를 구경하는 게 재미있어서 한동안 친구들과 놀지 않고 혼자 그곳을 가곤 했었다. 학교에서 쓸 수 있을 만한 문구부터 각종 인형과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나 잡아봐라’ 하면서 반짝이고 있는 곳이었다. 나는 ‘얼마면 돼?’하며 대범하게 가격표를 확인하고 놀란 마음을 들킬까 봐 두 손을 양 가슴에 올린 채 터벅터벅 나오기를 반복했었다.


곰돌이 그림이 실감 나게 그려진 하늘색 주머니. 내 눈앞에 그게 계속 아른거렸다. 손에 쥐고 다닐만한 크기의 그 작고 예쁜 주머니가 너무 갖고 싶었다. 집에 들어가 방바닥에 누워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어도 그 주머니가 자꾸 떠올랐다. 그렇게 방바닥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다가 뭔가를 발견했다. 검은색 장지갑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지갑을 열어 보았는데 만 원짜리 세 장이 들어 있었다. 그때 나는 시험에 들게 된 것이다. ‘여기서 한 장이 없어져도 모르겠지.’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고 늘 소심했던 내가 대범하게 만 원짜리 한 장을 들고 다시 팬시점으로 향해 달려갔다.


숨을 헐떡이며 들어간 나는 정작 골라야 했던 숨도 안 고르고 그 주머니만을 골랐다. 예쁜 것을 집어 드는 순간, 행복 지수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얼른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계산대에 계신 아저씨께 만 원짜리를 건네자 오천 원 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몇 장, 동전 몇 개를 거슬러 주셨다. 이렇게 예쁜 걸 샀는데 돈도 이만큼이나 다시 생겼네? 그렇다. 나는 예쁜 것 앞에 이성을 잃었다. 그리고 지갑의 주인은 만 원을 잃었다. 같은 시간 집에서 난리가 난 것을 나는 알 리도 없었고, 알 생각도 없었다.


주머니를 싸고 있던 비닐을 뜯어 휴지통에 버리고 그 주머니 안에다 남은 돈을 대충 구겨 넣고(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행동 같다) 즐거운 뜀박질을 하며 집으로 갔다. 대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지갑을 들고 서 있는 삼촌이 보였고 그때부턴 내 심장이 뜀박질하기 시작했다.


삼촌은 나를 보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여기에 있던 만 원짜리 하나 못 봤나?”


나는 주머니를 보호하듯이 뒤쪽으로 숨기고 대답했다.

“못 봤다.”


그렇게 말하는 나를 빤히 보다가 알겠다며 옆 방으로 가는 삼촌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조용히 내쉬었다. 방으로 들어가 구석에다 그 주머니를 숨기고 손발을 씻으러 갔다. 씻고 나온 나를 기다리던 삼촌은 그 주머니를 들고 또,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름으로 열심히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갑자기 서글퍼졌다. 주머니를 잃을까 봐. 나는 그때까지도 내 잘못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삼촌은 주머니 안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내려놓고 내가 한 나쁜 짓에 관해 설명했다. 항상 친구처럼 편했던 삼촌이 처음으로 무섭게 느껴졌고, 주머니 속의 돈처럼 내 영혼이 탈탈 털리는 것 같았다. 그제야 내가 남의 물건과 돈에 손을 대고, 거짓말까지 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알게 되면 나는 정말 큰 일이다.


집 안의 최고 어른이셨던 할아버지는 묵묵하고 과묵하신 분이었다. 삼촌께 혼날 때도 문밖에서 묵묵하고 과묵하게 듣고만 계셨다. 문틈으로 할아버지가 보이자 느닷없이 눈물이 났다. 너무 잘 알아들은 나는 잘못했다 말하고 상황이 종료되는 듯했으나 할아버지는 옷을 챙겨 입으시고 나에게 따라 나오라고 말씀하시고는 또 묵묵하게 앞장서 걸으셨다. 내가 큰 잘못을 해서 벌을 받나 보다 생각이 들었고, 꽤 침착하게 할아버지를 따라갔다.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따라 걷다가 옆으로 미는 샷시 문이 있는 가게 앞에 멈춰 섰다. 무슨 무슨 반점. 내가 알기로 그곳은 짜장면 집이었다. 그때의 나는 중국집이라는 표현도 몰랐으니까.


정중앙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은 할아버지는 짜장면 두 그릇을 주문하셨다. 짜장면을 기다리는 시간은 짧았지만, 그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고 기분도 편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그렇게 조용한 시간이 흐르고 그 침묵을 깬 것은 짜장면 두 그릇이 놓이는 소리였다. 할아버지는 내 짜장면을 먼저 정성스럽게 비벼 주시고 건네며 말씀하셨다.


“고개 들고, 맛있게 먹어라.”


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처음으로 물건을 탐했고 그 이유로 남의 돈을 탐냈으며, 그렇게 탐났던 물건을 지키기 위해 거짓까지 한 나를 꾸짖기보다 다독여 주신 우리 할아버지. 그리고 다정했던 짜장면의 맛을. 절대 잊지 못한다.



짜증 날 땐 짜장면.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이런 말을 많이 썼다. 그 말처럼 정말 짜증 날 땐 짜장면이 당기기도 하고, 그렇게 당겨서 먹으면 그날따라 맛있기도 한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아니다. 짜증 날 때 해소를 위해 짜장면을 먹기보다는, 한없이 다정하고 싶을 때 짜장면을 먹는다. 그때 우리 할아버지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정을 전하고 싶은 친구가 생기면 한 번씩 물어본다.

"우리 짜장면 먹을래요?"

내게 이런 질문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그건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과 같다는 고백을 이제야, 조심스럽게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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