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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Feb 09. 2024

연탄불 함부로 현혹되지 마라

나는 망했고, 달고나는 사망했다.

나의 유년기는 다세대가 함께 모여 사는 큰 집에서 보냈다. 호랑이 눈썹 때문인지 항상 얼굴에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집주인 할아버지가 계시고, 연탄불에서 설탕이 녹아드는 달고나 냄새가 끊임없이 나던 구멍가게 옆 오르막길을 몇 걸음만 걸으면 나오는 대문이 큰 집.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던 집은 직사각으로 넓은 안방과 정사각의 작은 방이 있었고, 내 작은 몸이 겨우 굴러다닐 정도로 좁은 대청마루가 있었다. 어른으로 치면 한 사람만이 설 수 있을 공간의 부엌에서 연탄을 때기도 했다. 그 연탄불에 현혹되지 말았어야 했을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해 본다.


앞서 이 큰 집의 대문까지 오는 길에 등장한 구멍가게는 동네 아이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아이들의 걸음으로는 학교에서 거리가 꽤 멀었던 곳이라, 동네에서 유일하게 모일 수 있는 적당한 장소였다. 구멍가게라도 우리가 먹을 주전부리들이 넘쳐났으니까.

협소한 공간이지만 각종 과자와 아이스크림이 상시 준비된 가게의 내부는 지금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만큼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곳에서 정이 넘치는 초코 맛 파이와, 새우 과자를 사 먹은 날이 많았다. 하지만 그보다는 가게 앞에 둔 조그만 연탄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심혈을 기울여 만드는 달고나를 더 좋아했다. 달고나는 달기만 한 게 아니라 역시 성취감이 있었다고나 할까!

당시의 나는 하루에 100원이나 200원 정도를 받아 용돈으로 썼는데 200원이면 새우 과자 한 봉지를 사 먹고 100원이면 초코 맛 파이 하나에 달고나 한 번, 혹은 달고나 두 번, 이런 식으로 나름의 균형을 맞춰 사용했다.


사건 당일은 100원을 받을 차례인데 200원을 받은 운수 좋은 날이었다. 동전 두 개에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전속력을 다해 뛰어서 구멍가게로 갔다. 먹는 행위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하고 싶어서 고민도 없이 새우 과자를 사 먹은 날이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코너를 도는 순간! 그날따라 달고나 냄새가 어느 때보다 진하고 강력하게 내 코를 찌르는 것이었다. 뜨거운 연탄불에 녹아드는 기분 좋은 달곰한 냄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부엌으로 갔다. 마침 집에는 나 혼자인 것 같았고,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한쪽에 걸려있는 큰 국자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 국자를 보자마자 홀린 듯이 부엌 여기저기를 뒤졌다. 한 번도 내 의지로 뭔가를 찾아본 적이 없던 장소였지만, 생각보다 빨리 목표물인 설탕과 소다를 찾았다.


일단 설탕은 밥그릇에 가득 붓고 소다는 작은 비닐이 뜯긴 대로 그냥 옆에 둔 채, 연탄불 위에 국자를 올렸다. 국자가 조금 달궈지고 나서 설탕을 붓고 녹이며 젓가락으로 열심히 휘저었다. 그러다 한순간에 젓가락이 뜨거워지는 바람에 당황해서 젓가락을 놓쳤다.

그렇다. 쇠젓가락의 열전도에 대해 전혀 몰랐던 일곱 살 정도의 나였다.


그렇게 놓친 젓가락뿐만 아니라 뜨거움에 반응한 나의 호들갑은 금세 부엌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밥그릇 가득 담겨있던 설탕은 온 바닥에 흩뿌려졌고, 입구가 열린 채로 있던 소다 봉투도 널브러졌으며, 국자 속 설탕물은 연탄불 위에 쏟아져 내렸다. 일곱 살 인생 망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귀신같은 타이밍에 할아버지가 등장하셨다.

아아 나는 역시 망했고, 달고나는 사망했다.



그날 나는 큰 교훈을 얻었다. 세상에 완전 범죄란 없으며, 몰래 한 행동으로 행복을 찾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욕심내면 욕심을 내기 전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무엇보다 일곱 살은 하루하루 감질나는 동전 두 개의 행복이 어울리는 나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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