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진부한 말로 하늘의 별을 따다 줄 수 있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나의 친구이자 언니이자 내가 쓰는 글의 어떤 지표가 되어주는 사람. H.
그녀와 나의 첫 만남은 북토크에서였다. 팬데믹 시대가 오기도 전이었다.
북토크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됐던 사람도 아니고 북토크 장소였던 책방의 주인장도 아니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녀는 바로 북토크의 주인공, 작가였다.
나는 그녀의 첫 책을 읽고 난 뒤부터 팬이 되었다. 어떤 작가가 좋다는 마음이, 이 사람은 어디서 무얼 하는 사람일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던 건 거의 처음이었다. 얼른 다음 책이 나오길, 내가 그 사람의 글을 계속해서 읽을 수 있길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하하. 첫 책에 배 부르랴.
북토크 장소는 서울이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창원에 살고 있는 나였지만 당시 나의 휴무날과 북토크 날짜가 맞아떨어져서 고민도 없이 얼른 신청해 버렸다. 그렇게 나는 오로지 작가를 향한 마음과 북토크 일정만을 위해서 꿀 같은 하루 휴무날에 왕복 8시간 거리의 서울 당일치기를 하게 됐다.
북토크를 시작하기 전부터 나는 그녀를 가만히 보며 감격하고 있었다. 나의 연예인. 첫사랑을 앞에 둔 소녀처럼 마음이 통째로 떨렸다. 좋았던 만큼이나 떨렸던 나머지 북토크가 끝나고 인사를 나눌 때 뿌엥하고 울어버렸다. 가슴이 너무 벅차오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터져 나올 수도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H는 자신의 첫 눈물 독자가 인상 깊었는지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포스트잇, 내 이름을 챙겨갔다. 그리고 얼마 후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녀는 북토크 때 나눴던 이야기로 가늠하여 SNS로 나를 찾았다. 수많은 팬 중에 나를 기억하고, 굳이 찾았다. 이 구역의 성덕은 나야 나 나야 나. 크게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이후 H와 나는 작가와 팬으로 소통을 하며 지내다 친구가 되었다. 남에게는 말 못 할 이야기도 서로에게는 터놓고 할 수 있는 소중한 벗이 되었다.
처음 알고 나서부터 몇 년간 내가 H에게 받은 관심과 사랑은 어느 건강식품 광고에서 말하는 것처럼 표현할 방법이 없다. 마음에도 크기가 있다면 H가 내게 보여준 마음은 슈퍼 엑스트라 라지일 것이다. 난 항상 그렇게나 큰 사랑을 받기만 하는 것 같아서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작년 여름이었다.
복날이 다가오던 어느 날, 마침 H의 생일을 앞두고 있기도 해서 고기를 먹지 않는 H를 위해 몸보신용 음식을 하나 보내주고 싶었다. 늘 바쁜 사람이지만 작년에는 특히 바빠 컨디션이 걱정됐기에 대체할 만한 음식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갑자기 떠오른 메뉴가 있었다. 그래! 홍어다!
H는 홍어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 덕에 나도 홍어를 사랑하게 됐다.
사랑은 사랑인데 다만 여름철에 보내려니 신경 쓰여서 온라인 주문이 되는 홍어집에서 택배 배송을 받은 사람들의 리뷰를 정독했다. 열심히 읽다 보니 어디가 괜찮은 집인지 추려졌고 나는 그중에서도 신선도가 특히 좋다는 한 곳에서 흑산도 홍어를 주문했다.
전라도에서 출발한 홍어는 무사히 서울로 도착했다.
택배를 받은 H는 일이 끝나고 밤이 돼서야 귀가하여 11시에 저녁으로 홍어를 먹었는데 숙성이 잘 돼서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먹는 동안 너무 행복했다고. 먹어보지 않은 홍어를 리뷰만으로 골라서 보낸 건데 만족하는 H의 반응을 보니 덩달아 맛이 좋았다. 입 안에서 삭힌 홍어의 맛이 느껴지는 듯했다.
사랑은 주는 것만으로도 기쁜 거구나. 여실히 깨닫고 난 후로 나는 H에게 많이 받았다고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고마워하고 그만큼 나도 더 잘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 H에게 메시지가 왔다.
내가 보낸 생일 선물을 내게 다시 보내는 게 좀 이상하긴 한데 홍어가 너무 맛있어서 나에게도 맛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누를 길이 없어 똑같은 홍어를 주문했다고. 혼자 먹기 아까우니 내가 꼭 먹어봐야 한다며.
이미 그 흑산도 홍어를 한 입에 넣고 씹고 있는 것처럼 목구멍에 뭔가가 싸하게 올라왔다. 홍어를 홍어로 갚는 마음. 그건 우정이고 사랑이었다.
다음날, 전라도에서 출발한 홍어는 무사히 창원으로 도착했다.
택배를 받은 나는 퇴근하고 집에 가서 흑산도 홍어를 저녁으로 먹었다. 씻은 묵은지에 쌈까지 싸 먹고 막걸리도 한잔했다. H의 말대로 숙성이 잘 된 홍어였다. 왜 나에게 맛 보여주고 싶었는지 잘 알 것 같은 맛이었다. 맛있는 홍어를 먹으면 '이건 H도 먹어봐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절로 드는 내 마음과 같았다.
이게 꼭 일 년 전의 일이다.
올해 H는 몸에서 이상 신호가 왔다. 늘 걱정하던 부분이었는데 아픈 H를 보니 대신 아프고 싶었다. 그 정도로 속상한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를 위해 기도를 한다.
진심 어린 나의 마음이 기운이 되어 H에게 전해지길. 회복 잘하고 우리 만날 가을날에 홍어로 몸보신하고 마음보신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