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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Jul 24. 2024

포장'된'마차 말고 포장마차

잊고 싶지 않은 것은 잃고 싶지도 않아

나는 늘 이런 생각을 했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포장마차는 대체 어딜 가면 볼 수 있는 거야?


대학생이 되어 상경했을 때부터 사회인이 되어서까지 서울 시내 어딜 돌아다녀봐도 TV속에서나 보던 포장마차는 찾아볼 수 없었다. 드라마를 볼 땐 서울에 가면 길거리에 널린 게 포장마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살던 건대입구역 출구 근처에서 보였던 포장마차는 약간 포장'된'마차 같았다. 아무리 국수를 팔고 곰장어를 팔아도 앉아있는 풍경 자체에 찐 바이브를 풍기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포장마차만의 그런 바이브는 나의 로망이었다. 지친 현대인이 혼자서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그런 곳.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을 때 포장마차의 천막을 걷고 들어가기만 해도 일상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곳. 이게 정말 드라마에서만 가능한 거야? 그렇게 드문드문 생각만 하다가 나의 서울 생활은 끝이 났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내 10대의 모든 기억은 마산에 머물러 있다. 스물한 살, 휴학을 하고 학비를 벌기 위해 일하던 때까지만 해도 주 무대는 마산이었다. 내가 복학을 하고 다시 서울로 떠나 학업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하는 사이 정겹기만 했던 마산 우리 동네에는 찬 바람이 불었다. 재개발 지역으로 정해지고 오래된 빌라와 주택으로 가득한 우리 동네를 밀어버린다는 소식에 모두가 헛헛해했으며 주어진 시간 동안 오래도록 동네를 지키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났다. 일요일마다 갔던 목욕탕도, 동생 친구네가 운영하던 시장입구의 슈퍼마켓도. 전부가 사라졌다.


그러나 성급하게 사람들을 몰아내고 철거된 그 동네는 오래도록 황폐한 상태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때 창원으로 떠나왔다. 결혼을 하고 창원에 신혼집을 차린 동생은 조카가 태어나고 얼마 후 마산의 신축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그 집을 처음 갔을 때 기분이 묘했다. 동생네가 24층이었는데 조그만 주방 창을 통해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운동장이 훤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 너머로 많이 달라진 듯 하지만 비슷한 모습의 나의 살던 고향. 일곱 살 터울의 초등학생 동생과 함께 자주 사 먹었던 닭꼬치 가게, 내가 다니던 성당, 첫사랑이 살던 집. 그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아련히 남아 있었다.


무슨 문제인지 철거 후 진행되는 것 하나 없이 메마른 공터와 아슬하게 가벽을 두고 있는 시장을 따라 걸어보았다. 길에다 펼쳐놓고 채소며 과일 같은 것을 파는 할머니들이 아닌 상점들은 문 닫은 지 오래된 모습이었다. 노점상이 없어지는 늦은 저녁이면 괴담 스폿이라도 될 것 같은 광경에 적잖이 놀랐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동네 시장의 중심에 있던 하천이 보이는 곳 코너를 돌았더니 추억이 깃든 또 하나의 장소가 나타났다.


초등학교 동창들과 스무 살이 되자마자 술을 적셨던 곳.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접시에 닭똥집을 볶아 어슷 썰은 청양고추와 마늘을 올려주며 어디 하나 비싸고 싼 데 없이 균일하게 단 돈 삼천 원을 받던 포장마차들. 다리 가로 줄지어 있던 포장마차는 세 군데만 불을 밝히고 있었다. 가까이 이런 곳을 두고 왜 잊고 지냈을까! 후회와 설렘이 동시에 떠밀려오던 그때 결심했다. 현금을 준비해서 다시 여길 오겠다고.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과 함께 포장마차를 찾았다.

주방이 보이는 곳에 나란히 앉아 묵은 때로 나이를 짐작할 수 있을법한 화이트보드 메뉴판을 보며 신중하게 메뉴를 골랐다. 소주와 맥주는 낚시용품을 파는 가게에서 본 듯한 커다란 아이스박스 안에서 나왔는데 병을 쥔 손끝으로 느껴지는 온도가 끝내줬다. 혓바닥이 놀랄 만큼 시원한 술과 함께 먹는 안주 또한 예술이었다. 연탄불에 구워주는 돼지고기와 새콤 매콤 아삭 맛과 식감의 조화가 아름다운 오징어무침까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거다! 싶은 맛이었다. 그런 맛에 연발하여 감탄하며 먹고 마시다 보면 참 이상하게도 평범한 것들이 당겨서 계란프라이와 라면을 시키게 된다. 신데렐라에게 현실을 벗어나게 해 준 호박마차가 있다면 우리에겐 현대의 일상을 잠시 떠날 수 있게 해 줄 해어진 분위기의 포장마차가 있다. 동생은 워킹맘으로서의 고단함을, 나는 자영업자로서의 부담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 찾았다가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마법. 선순환 그 자체.


하지만 이 포장마차도 곧 사라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름까지만 운영하고 철거될 예정이라고 했는데 차후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남은 곳이라도 철거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세상에 이런 간절한 마음으로만 되는 게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어제 퇴근길에 포장마차의 안부가 궁금했다. 가보지 않는 이상은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또 별별 생각 다하며 마음만 쓴다. 집으로 가는 길에 반복해서 듣던 노래는 동물원의 <혜화동>. 노래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잊고 싶지 않은 것은 잃고 싶지도 않으니 지켜지면 좋겠다는 마음은 내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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