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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Aug 07. 2024

엄마와 엄마의 엄마 이야기

48시간의 사랑과 정성이 깃든 곰탕

2024년을 맞이하며 우리 가족에게는 이슈가 있었다. 할머니의 사고와 입원이었다.


12월의 마지막 금요일. 점심 장사를 시작할 때쯤 할머니께 전화가 왔다. 그 시간에는 내가 바쁜 걸 알아서 보통 전화를 하지 않는 할머닌데? 느낌이 싸했고 전활 받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에서 넘어졌다고 가쁜 숨을 쉬며 말씀하셨다. 호흡도 힘들고 움직이지 못하겠다고 하셔서 나는 얼른 119로 전화를 걸어 신고 접수를 했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저희 할머니께서 혼자 계시는데 화장실에서 넘어져서 거동이 불편하다고 하셔서요. 지금 제가 바로 가보질 못하는 상황이라 도움 요청하려고 전화드렸어요."


전화를 받은 분은 주소를 확인하시더니 바로 출동하고 할머니를 모시고 이동할 때 연락을 주시겠다고 했다. 신속하고 친절한 소방관 분들 덕분에 할머니는 병원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니 할머니의 갈비뼈가 5대나 부러졌다고 했다. 연세 있으신 분들은 감기만 걸려도 보통 사람들 이상으로 고생하는데 갈비뼈 골절이라니 얼마나 아플까 생각하니 내가 다 아찔했다.


할머니는 입원을 하고 2주 정도 병원에서 지내다 퇴원을 했는데 아무래도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서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다. 원래 뭐든 잘 드시던 할머니는 2주 동안 먹었던 병원밥이 심각하게 맛없어서 입맛을 잃어버렸고 우리 집에 오셔서도 통 먹지를 못하셨다. 자꾸 물에 말아 대충 끼니 해결만 하듯이 드시는 할머니는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다고 하셨다. 그런 할머니를 위해 엄마는 곰탕 거리를 사가지고 왔다.


뼈를 한가득 대야에 담아 물을 바꿔가며 반나절 이상 핏물을 빼고 빠득빠득 깨끗이 씻은 다음에야 사골국을 끓일 준비가 끝났다. 그리고 제일 큰 냄비에다 각종 재료를 넣고 사골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내내 가스불 위에 올려둔 곰탕 냄비는 우러날수록 고기 육수의 냄새가 진하게 퍼졌다. 다음날까지 푹 끓여진 그것은 뽀얗고 깊은 국물색을 띠고 있었다.


약 먹기 위해 억지로 밥을 조금씩만 드시던 할머니는 당신의 딸이 48시간 동안 정성 들여 만든 곰탕 한 그릇을 뚝딱하셨다. 얼마나 잘 고아졌는지 그릇을 뚝배기로만 바꾸면 여느 맛있다는 곰탕집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맛이 좋았다. 과연 맛의 완성은 사랑과 정성이 아닌가. 엄마는 이틀 동안 엄마의 엄마를 위한 곰탕에 사랑과 정성을 쏟아붓고 몸살이 났다.



그 주간에 비가 내린 탓인지 몸이 더 찌뿌둥한 느낌이라 주말에는 엄마와 할머니를 모시고 목욕을 다녀왔다. 다 같이 목욕탕을 간 지가 20년은 된 것 같은데 너무 오랜만이니 오히려 처음 가는 것처럼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내가 어릴 때 엄마와 할머니는 큰 수건을 목욕탕 바닥에 깔고서 나를 눕혀놓고 씻겨주셨다. 스스로 제대로 씻을 수 있을 때까지 그랬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거동도 불편한 데다 힘을 못쓰는 할머니가 나와 그 자리를 바꾸었다. 몸이 불편해서 몇 주 동안 씻지 못했던 할머니를 위해 엄마는 큰 수건을 깔고서 할머니를 눕히고 여기저기 꼼꼼하게 씻겨주셨다. 어린 날의 나처럼 몸이 작아진 할머니는 깔아놓은 수건과 딱 맞는 듯했다. 시간은 왜 이렇게 빠른 걸까. 예전에 나를 씻겨주던 할머니는 목소리도 쩌렁쩌렁하고 힘도 넘쳤었는데.


평소 어지러워서 목욕탕에 오래 있지도 못하는데 열심히 할머니를 씻겨주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 우리 엄마도 저렇게 백발의 노인이 될 텐데, 지금보다 작아지고 힘도 없어질 텐데. 그때 나도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엄마만큼은 못하겠지? 하고 말이다.

잔소리를 하면서도 결국 엄마를 위하는 엄마의 마음. 그저 시간이 조금만 느리게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삼대모녀가 함께 목욕을 하는 모습을 보며 훈훈했던 건지 매점 사장님과 옆에서 씻고 계시던 아주머니들은 우릴 보며 말 한마디씩을 건넸다. 온탕처럼 따뜻했다. 시원하게 목욕재계를 하고 매점에서 파는 냉커피도 사이좋게 나눠 마셨다. 매점 사장님은 맛있게도 는 우릴 보며 커피 더 타줄까요? 물으셨고 집으로 돌아갈 때 탔던 택시 기사님은 몸이 불편해서 느린 할머니께 괜찮으니 천천히 조심히 시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의 배려에 더불어 따뜻해진 우리는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돌아온 집에서 뜨끈한 곰탕에 밥을 말아 후루룩 마셨다. 진국이란 이런 게 아닐까. 진한 국물에서 우러나오는 마음 씀씀이. 그건 바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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