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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Sep 04. 2024

냉동실의 마지막 보루

나의 소울푸드

한 번씩 그런 생각을 한다.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15년 동안 갇혀서 군만두만 먹었던 것처럼 나도 군만두만 질리게 먹을 수 있을까? 아무리 라면이 맛있고 치킨이 맛있어도 매일 그것만 먹기엔 힘들지만 군만두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겠다. 군만두를 사랑하는 내 입장에선 말이다.


사랑이라는 표현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군만두는 나의 소울푸드다.

누군가의 소울푸드에 관한 글을 읽거나 방송을 통해 들은 적은 많지만 정작 나의 소울푸드에 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하니 어떤 한 메뉴로 단정 짓는다는 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지금까지도 굳이 거기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어느 순간 깨달은 사실이 있다. 정말 힘이 들 때면, 몸과 마음이 동시에 고단할 때면 입맛도 없고 먹는 것조차 귀찮아지는데 그런 날에는 꼭 만두를 구워 먹는 내가 있다는 것.


힘들 때 보통의 사람들은 큰맘 먹고 거금을 들여 원기 회복을 위한 메뉴를 찾아 든든하게 먹는데 나란 사람은 귀찮아도 배는 고프니까 살기 위해 군만두를 선택한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냉동실에 있는 만두를 꺼내 봉지를 탈탈 몇 번만 털면 대략 10알에서 12알 정도가 팬에 오른다. 중불로 몇 분 약불로 몇 분만 구우면 되는 군만두는 달리 할 것도 없이 굽기만 하면 된다는 간편함이 선택의 이유다. 그렇게 대충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군만두는 입맛이 없다던 내가 만두의 피가 구워지듯 튀겨지면서 나오는 부스러기 하나 남김없이 주워 먹게 만든다. 10알로는 부족했나? 하며 입맛 없다는 내 판단이 민망하게 매번 말이다.


만두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아무 만두나 좋아하진 않는다. 어쩌면 이게 당연할 걸지도 모르겠으나 만두 입은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까다롭다. 그렇다고 내 입이 비싸고 좋은 것만 따지는 것도 아니고. 만두의 피나 소가 입 안에서 조화롭게 노는 적정 비율이 있다. 만두 맛집이라고 유명한 많은 집 중에 시식을 해보고 실망한 집이 꽤 많이 있기 때문에 만두만큼은 내 입만을 믿는 편이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갖가지 냉동만두 중에서도 두세 가지 정도만 먹고 있는데, 피가 얇아서 부담스럽지 않고 냉동만두지만 소에서도 고기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것들만 먹는다. 작은 내 입에도 한 번에 들어갈 크기까지 들어맞는다면 그것이 바로 내 영혼의 만두 단짝이 되시겠다.


그렇게 까다롭게 만두를 골라 먹으면서도 만두 본연의 맛을 느끼기 위해 그냥 먹을 법도 한데 굳이 더한 맛을 내기 위한 마지막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남들 같으면 간장 소스를 만들겠지만 내게는 간장보다 마요네즈다. 개인적으로 마요네즈는 궁극의 소스라고 생각하기에 어울릴 법한 모든 메뉴에는 함께 먹어봤지만 군만두만큼 잘 어울리는 것을 아직은 찾지 못했다. 전 국민이 참지 않는다는 참치마요도 내겐 군만두마요 이하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근래 나는 마트에서 행사 제품으로 사다둔 냉동만두 세 봉지를 혼자 다 먹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밥 한 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몸과 마음을 다 써가며 장사를 하고 나면 집에 돌아가서까지 밥 생각이 나지 않아 만두를 구워 먹은 날이 비일비재했다. 알맞게도 딱 10알만이 남은 만두 봉지를 들고 가만히 생각해 보다가 만두 그것도 무려 구운 만두가 내 소울푸드라는 결론을 짓기에 이르렀다. 의도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는 점에서 내 영혼을 감싸주는 10알의 행복은 백퍼센트라고 생각했다. 백 퍼센트의 메뉴에다가 맥주 한 잔이면 온갖 부정으로 종일 더럽혀진 내 마음이 정화되 이내 긍정이 자리 잡으며 식욕과 의욕을 얻는다. 가끔 그 의지가 지나치게 불타오르면 입맛이 돌아 밥 한 공기를 얼른 떠서 먹기도 한다. ''만두는 부르는 대로 '굿'만두가 되어겠다.


수요일 오후  시가 다가오는 지금도 나는 제대로 먹은 게 없다. 평소라면 도시락을 먹었겠지만 오늘은 도시락이 없는 날이라 배가 고파 배달 앱을 열었다가 딱히 먹고 싶은 건 없어서 닫기를 반복했다. 요즘 계속 이런 날의 반복인 걸 보니 아무래도 오늘은 퇴근 후에 마트에 들러 만두를 몇 봉지 사가야겠다. 매일 찾않지 모든 날 모든 순간 곁에는 두고 싶은 것, 둬야만 하는 것. 냉동실의 마지막 보루.


폴킴의 노래 가사처럼 고단했던 나의 하루에 유일한 휴식처. 나는 너 하나로 충분하다. 굿잡, 굿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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