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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Oct 17. 2024

돌보는 마음에 관하여

지난주에 친구가 꽃을 들고 매장을 찾아왔다.

처음 보는 꽃이라며 이 꽃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을 때 친구는 거베라의 한 종류라고 설명했다. 식물에 대해서는 영 무지해서 장미나 개나리, 무궁화 같은 누구나 다 아는 정도만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아는 것이 없던 내가 거베라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 거베라의 종류까지 나아갈 수가 없어 그냥 싱겁게 아~ 하고 말았다.


내게 온 그 꽃은 빨간빛도 주황빛도 아닌 그 둘을 섞은 듯한 색을 띠고 있었다. 여러모로 감정이 힘든 주간이었는데 꽃을 보니 환기되는 것 같았다. 친구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걱정했다는 표정을 하고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이런저런 있었던 일에 대해 털어놓았는데 보통은 리스너였던 내가 그날만큼은 토커였다는 사실에 대해 친구를 보내고 나서야 깨닫고 스스로에게 놀랐다. 친구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묻지도 못한 채 친구를 보냈다. 그렇게 친구는 가고 꽃은 곁에 남았다.


요즘은 식집사 이런 말도 생겨났을 정도로 식물에 애정과 관심을 쏟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가운데 집을 뺀 식사에 가까웠다. 한자로 死 (죽을 사)를 써서 식사... 말장난 같지만 나는 진짜로 그랬다. 어릴 때부터 내가 키우는 꽃이며 화분 같은 것들은 빨리 죽어버렸다. 그러니까 이 장르에서만큼은 똥손임을 인정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친구가 건네준 이 꽃은 가능한 오래 지키고 싶었다.


그 마음 하나로 매일 아침 출근을 하면 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날의 음악을 골라서 틀고, 원두 세팅을 하고, 빵과 쿠키를 굽는 루틴에 먼저 할 일이 추가되었다. 꽃병에 물을 새로 갈아주는 것. 사실 이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다. 유난히 이 장르에서만큼은 꾸준하지를 못한 내가 매일 꾸준히 물을 갈아주는 모습을 자각하며 다시금 놀랐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한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답은 역시 친구였다.

나와 친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 그런데 친구라는 말이 스스럼없고 편안한 사람. 친구가 마음을 담아 전한 꽃이기에 친구처럼 보살피고 싶었다.


지식백과에서 거베라를 찾아보니 추위에 잘 견디는 여러해살이풀로 실내에 관상용으로 놓으면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되고, 공기 정화에도 탁월하다는 설명이 있었다. 꽃을 찾다가 친구를 떠올렸다. 이 꽃이 주는 효과는 친구가 내게 준 효과와 거의 같았다. 사실은 꽃이 나를 돌보고 있었던 걸까.


그런 친구의 마음을 더 오래도록 지키고 싶어서 꽃을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나 자신이 놀랄 정도로 토커였던 그날엔 오히려 친구가 내게 할 말이 더 많았었다는 것을 며칠 후에야 알고서 속상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그보다 더 크게 느낀 것은 고마움이다.

고마움에 내가 보답할 방법은 친구가 또 갑자기 찾아올 때 맛있는 카페라테 한잔을 만들어주고, 마음을 다해 그이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까지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커피집의 문을 열어놓는 것이 마치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기다린다는 것처럼 언제나 친구를 환대할 준비가 되어있다.



오늘 아침에도 문을 열고 꽃병의 물부터 갈아줬다. 혹여 힘 조절을 못해서 꽃이 부러질세라 아주 살포시 잡고 조심스럽게 물을 갈았다. 친구는 내게 이 꽃이 빨리 죽는다고 해서 그건 내 탓이 아니라고 했지만, 일주일이 넘은 꽃은 여전히 생기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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