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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집

1934 브라질레이로

by 김커피

고백의 밤을 지나 다음날이 왔다. 고해성사라도 한 듯 후련한 마음. 이 기분에 걸맞은 시원한 커피가 간절해졌다. 나는 호텔과 멀지 않은 곳에 봐둔 킷사텐이 떠올라 구글맵을 열어 운영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목적지는 정해졌다.


새벽비가 내리고 말끔해진 길거리와 하늘을 벗 삼아 아침의 목적지로 향했다. 몇몇 고층건물과 그 사이 아담한 이발소와 작은 신사, 몇 번의 편의점을 지나 골목길 초입의 그곳을 만났다. Brasileiro. 브라질의, 브라질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 장소는 후쿠오카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집. 하얀 건물의 외관 입구에 1934년이라는 처음의 숫자가 아주 담담하게 이름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문을 열면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커피집 풍경이 펼쳐진다. 온갖 커피용품과 여러 종류의 원두가 들어간 유리병 너머로 커피를 내리는 작은 공간이 보인다. 오래된 듯 오래되지 않은 듯 단정한 나무색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1층에는 이미 커피와 디저트를 준비하는 맛있는 김이 꽃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테이블이 많지 않은 1층은 만석. 미로 같은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1층의 느낌을 두 배로 경험하게 해주는 곳이라 2층이었을까. 분명 고소한 커피 향뿐인데도 울창한 숲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나무로 된 바닥과 테이블은 삐걱댈 것 같은 세월이 보이면서도 제자리에 가만했다. 불안한 시대. 좀처럼 찾기 힘든 안정감을 여행지의 오래된 커피집에서 마주하다니.


공손한 직원이 먼저 건넨 얼음물을 한 모금 마시고 2층 구석구석을 눈으로 살폈다. 다양한 소품으로 채워진 곳. 채우려고만 하는 욕심 같지만 사실은 지키려고 하는 태도가 느껴지는 공간. 그 분위기에서 오롯한 자신과 자부를 읽었다.




클래식과 재즈가 흐르는 그곳에는 냇 킹 콜의 사진이 몇 장 걸려있었다. 냇 킹 콜의 액자 아래에 앉아있던 회사원들은 커피를 마시며 회의를 하고 있는 듯 심각해 보였는데 어느샌가 회의를 끝내고 나갔다. 그들이 떠난 자리를 보며, 그들이 마시고 난 빈 커피잔을 보며 어떤 한숨과 어떤 희망이 동시에 느껴졌다. 지금은 힘들어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그들의 숨과 믿음이. 알아듣지 못했음에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쩌면 나 자신을 투영시켰을지도 모를 그 마음. 나를 믿고 싶었다고. 커피를 마시다가 살며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스피커에서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재즈가 귀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나는 아주 오래된 커피집에서 보내는 아침 순간의 분위기를 가슴에 새겼다.



커피를 마시고 나가는 길의 1934라는 숫자는 들어올 때와 다르게 담담하기보다 당당하게 보였다. 내게도 그 힘이 전해 졌던 걸까. 입구 앞에 서있던 나도 움츠린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다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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