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다 들렀어요!

통영 꿀빵 이야기.

by 김커피

서울에서 8년 가까이 일했던 카페에서 평일에 거의 매일 오시는 단골손님이 계셨다. 주변에서 근무하시는 분인지 매일 8시가 조금 넘으면 매장으로 들어오셔서는 따뜻한 카페라테를 주문하시고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9시가 다가오면 조용히 나가곤 하셨다.

내가 일하던 곳이 완벽하게 오피스 상권이었기 때문에 매일 보는 그 손님이 신기했다. 출근 시간대에 밖을 보면 사람들이 지각만 하지 않을 정도로 타이트하게 맞춰서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는데 그 손님은 항상 이른 시간에 남들보다 여유롭게 오셔서 잠시라도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눈에 보여서였다.


카페 일을 하면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보면 유독 시선이 갔다. 책 읽는 사람을 생각보다 많이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오는 멋짐도 있었지만, 내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그런 분은 꼭 한 번을 더 쳐다보게 됐다. 그 단골손님이 오시는 시간은 한참 아침 손님을 받는 시간이었기에 계속 신경 쓸 수는 없었지만 틈이 나면 힐끗 보곤 했다. 그때까지 내가 그 손님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그게 다였다. 카페라테를 주문하고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다 나가신다는 것. 정말 조용한 여성 분이라 매일 보는데도 기본적인 인사 이외에는 말을 걸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 손님께 용기 내어 말을 걸게 된 계기가 생겼다.


홍대의 한 공연장을 갔던 날이다. 나는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열성적인 팬이었는데, 그날 공연을 신나게 보고 같이 갔던 동생과 함께 공연이 종료된 무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을 때였다. 서로를 찍어주고 셀카로 같이 찍는데 카메라 화면의 우리 뒤쪽으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놀라서 뒤를 돌아봤는데 내 눈에 그 사람은 매일 카페라테를 마시는 단골손님이었다. 공연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흥분감이 좀처럼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그분이 저렇게 생기셨던가..' 하는 애매모호한 생각이 들었고 결국 그 자리에서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 월요일이 왔고 출근해서 오픈 준비를 끝낸 나는 그 손님만 기다렸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그날따라 아침에 커피를 드시러 오질 않으시는 거였다. 너무 궁금한 나머지 괜히 애가 탔다. 애타는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점심시간에 그분이 오셨지만 바쁜 시간이라 밀려드는 주문을 쳐내느라 인사도 못하고 지나갔다.

타이밍이 안 맞던 월요일도 지나 화요일이 왔다. 매일 오던 시간에 그 손님이 들어오셨다. 커피를 얼른 만들어서 내드릴 때 드디어 말을 걸었다.

"혹시 주말에 홍대에 계시지 않으셨어요?"

내가 갑자기 물으니 그 손님은 당황하시며 "왜요??"라고 물으셨다. 몸짓과 눈빛과 왜냐고 묻는 대사의 분위기까지 전부 그날 본 사람이 나의 단골손님이 맞다는 확신을 안겨줬다.

"공연장에 계셨죠? 공연 끝나고 손님을 봤거든요."

소름 돋는다는 듯 양팔로 몸을 감싸고 놀란 단골손님과 나는 길게 이야기 나누진 못하고 픽업대에 마주 보고 서서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때부터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그날 공연장 셀카 속에 담긴 나와 동생, 그 뒤로 보였던 단골손님과 그분의 친구 이렇게 넷은 공연장 메이트가 된 것처럼 함께 공연을 보러 다녔다.


공연 날이 아니라도 자주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떡볶이도 먹고, 다른 문화생활까지 함께 할 정도로 가까워져 좋아하는 것을 공감하는 것 이상으로 애틋하게 지냈다. 재미있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내가 돌연 퇴사를 하고 서울생활을 정리하게 되었다. 단골손님은 이미 내게 언니였는데 내가 떠난다고 하니 많이 서운해하셨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마지막 식사를 함께 하고 서로에게 뜨거운 안녕을 고하고 물리적 거리만 둔 채 이별하게 됐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언니들과 동생은 결혼을 해서 아이도 낳고, 나는 본가에 자리 잡고 다른 직장에서 열심히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하루는 단골손님이었던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남해 쪽으로 휴가를 올 것 같은데 혹시나 근무하는 매장이 지나가는 길에 있으면 들리겠다고 했다. 나는 매장 주소를 알려주긴 했지만 내가 있는 창원이 내려갈 때도 올라갈 때도 지나가는 곳은 확실히 아니었기 때문에 못 올 거라고 예상했다.


"지나가다 들렀어요!"


내 예상과는 달리 언니와 언니의 가족들은 남해와 통영에서 휴가를 보낸 뒤 나를 보러 굳이! 일부러! 창원까지 오셨다. 분명히 지나가는 길이 아닌데 지나는 길에 들렀다는 너스레가 반가웠다. 몇 년 만에 언니와 형부를, 병원에서 갓난아기 때 보고 못 본 조카를 보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체감이 됐고 그만큼 뭉클했다. 직원들과 나눠 먹으라고 통영의 유명한 꿀빵까지 사 가지고 내 손에 쥐여주던 언니의 정에 감동했고, 감사했다.

내가 근무 중이라 많은 시간을 보지 못하고 그냥 보내는 것이 아쉬웠다. 오랜만에 커피라도 만들어 챙겨 드리며 언니와 가족을 배웅하면서 미안해했더니, 내 얼굴을 보러 온 건데 얼굴 봤으니 괜찮다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나 정말 이만하면 잘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 이상한 마음을 겨우 다잡고 다시 일을 하다가 휴식시간이 되었다. 배가 고프지 않아 꿀빵으로 끼니를 때웠는데 그때의 꿀빵은 이름 그대로 꿀빵이었다. 언니의 그리움과 애정이 고스란히 담긴 꿀맛이었다.


사회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굳이, 일부러 누군가에게 애쓰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이다. 먹고살기 바쁜 세상이라는 합당한 변명 아래, 밥 한번 먹자는 말조차 하기 어려워졌다. 그게 빈말이 아니라도 서로 시간을 맞춰 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상의 굴레 속에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렇게 혼자가 되고, 혼자가 편한 날이 많은 요즘의 사람들이기에.

그래도 그 와중에 만나는 사람은 꼭 만나게 된다는 것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며 깨달은 사실 중의 하나다. 내가 내린 커피를 매일 마시던 단골손님이 공연 메이트가 되고, 언니가 되었던 우연은 이제 필연이 된 것처럼 말이다.



배가 고프지 않아 꿀빵으로 끼니를 때웠는데 그때의 꿀빵은 이름 그대로 꿀빵이었다. 언니의 그리움과 애정이 고스란히 담긴 꿀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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