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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Mar 06. 2023

다시 만난 세계, 냉동삼겹살.

내게 1순위 노스탤지어는 다름 아닌 냉삼이었다.

유행은 돌고 돈다. 이것은 비단 패션과 스타일에 대해서만 하는 말이 아니다.


꼬맹이 시절, 할머니 손을 잡고 시장에 따라갔다가 정육점에 가서 삼겹살을 살 때 쇳덩어리로 된 기계가 큼지막한 고깃덩이를 일정 간격으로 스극스극 소리 내며 얇게 썰어주던 장면이 생생하다. 균형 있게 썰린 고기를 비닐봉지에 가득 넣어 집에 가져오면 냉동실에 보관해 뒀다가 한 번씩 저녁 상차림에 올라오곤 했다. 그땐 그게 그냥 삼겹살이라고만 생각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지냈던 나는 그 시절에 돼지 잡는 소리를 실제로 들은 적이 있다. 동네잔치가 있었던 날로 기억하는데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미친 듯이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만으로도 코앞에서 잔인한 장면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일곱 살 인생 처음 들어 본 동물의 처절한 울음소리에 슬프고 끔찍한 기분이 들었던 나는 장롱 안에 숨어서 이불을 덮고 두 손으로 아플 정도로 양쪽 귀를 막고 울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까 전 상황과는 다르게 조용해진 것을 깨닫고 확인을 위해 쪼르르 달려가 문틈으로 밖을 쳐다보았다. 삼삼오오 동네 어른들이 모여 큰 불판 같은 데에다 고기를 굽고 계셨는데 곧이어 할머니가 문을 열고 "영아, 고기 먹자." 하며 나를 부르셨다.

나는 화가 난 듯이 눈썹을 치켜들고 "안 먹어!" 소리쳤다.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하던 손녀의 뜻밖의 반응에 할머니는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어디가 아픈지 물으셨다.

"몰라! 안 먹어!"

처음 보는 나의 단호한 태도에 할머니는 더는 묻지 않고 문을 닫으셨다. 그렇게 돼지를 울려놓고 그렇게 먹을 수 있냐고, 어른들은 다 나쁘다고 생각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서럽게 울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할머니는 내 몫의 고기를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따로 챙겨주셨다. 주방에서 나는 고기 냄새가 방 안까지 번지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돌았다. 전날의 그 난리로 기분은 저기압이었지만 결국 고기 앞에 앉은 나는 물었다.

"할머니 이거는 어제 그 고기 아니지요?"

나의 그 한 마디에 이제야 전날 내가 왜 그랬던 건지를 알아채신 할머니는

"그래. 이거는 어제 그 고기 아니고 시장에서 사 갖고 온 고기다. 마이 무라."


참 바보 같고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때의 나는 시장에서 사가지고 온 고기는 그렇게 돼지가 울면서 만들어지는 고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구운 삼겹살이 올라온 점심밥을 혼자서 아주 맛있게 먹어치웠다. 훗날 그렇게 맛있게 먹은 삼겹살이 그 고기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약간의 충격에 빠졌었다. 정말, 정말 미안하지만 그날 먹은 삼겹살은 인생 삼겹살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맛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나는 고기를, 특히 삼겹살을 좋아했다. 수험생 시절에는 할머니께서 반찬이 없다는 핑계로 아침부터 삼겹살을 자주 구워주셨고 나는 든든히 모닝 삼겹살 후 등교를 했다.

학부 시절에도 자취를 하던 원룸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는 삼겹살이라는 메뉴로 냉동삼겹살을 내줬다. 1인분에 한 5천 원씩 받고 온갖 반찬과 된장찌개까지 나와서 나와 내 친구들은 단일 메뉴로 먹기보다는 삼겹살을 주문해서 배불리 먹곤 했다.

이렇듯 내가 아는 삼겹살의 세계는 항상 냉동된 얇은 고기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느샌가부터 고깃집을 가면 생삼겹살이라는 메뉴가 먼저 보였다. 한자로 生자를 빨간 바탕에 흰색으로 글자를 크게 강조하기 시작하더니 삼겹살을 넘어 오겹살이라는 메뉴까지 등장했다. 고기 불판이 아닌 솥뚜껑에다 두툼한 삼겹살과 김치, 콩나물 같은 것들을 같이 올려 구워 먹는 그건 그것대로 맛있었다. 그래도 고깃집을 볼 때면 항상 어릴 적부터 맛보던 그 냉동삼겹살의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내게 1순위 노스탤지어는 다름 아닌 냉삼이었다.


그리고 바야흐로 냉삼의 시대가 돌아왔다. 언젠가부터 레트로에 꽂힌 사람들은 금세 먹는 것에도 그 감성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세계는 무척이나 반가웠다. 더군다나 술맛을 제대로 알고 곁들이는 삼겹살은 정말이지 훌륭했다.


나는 여전히 힘이 들 때면 '냉삼에 소주 한잔'이라는 공식을 몸소 실천한다. 수학의 정석에 나오는 공식 따위는 내 삶에 도움 되지 않지만 이 공식만큼은 내 삶에 있어 베프 자리를 내어줄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도움이 된다. 오래된 모양새가 정겨운 불판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아도 알아서 자리 잡으며 지글지글 끓는 소리를 내며 구워지는 기름진 냉동삼겹살을 굳이 기름장에 찍어 한입 먹고 그 기름진 느낌을 개운하게 내려주는 맑은 알코올의 목 넘김에 이 공식은 비로소 성립된다.


요즘 자주 생각나는 걸 보니 삶이 좀 힘들게 느껴지나 보다. 가만 생각해 보니 며칠 전에도 먹었는데.. 이쯤 되면 먹고 싶어서 부리는 괜한 엄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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