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퀵과 꾀돌이가 보여준 50원의 마법!
나는 흰 우유를 잘 못 먹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흰 우유를 흰 우유 자체로 못 먹는다. 어릴 때부터 냄새에 민감해서 내 후각을 기준으로 비릿하거나 특이한 향이 나는 모든 음식들을 멀리했는데 흰 우유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도 우유 급식을 굳이 신청한 이유는 어른들은 모르는 일탈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일탈은 주머니 속 50원으로 가능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은 문방구만 6~7개쯤 되었다. 아이들은 자기 스타일대로 저마다 단골 문방구를 터서 오전, 오후로 방문하며 주로 군것질을 했는데 등굣길에 내가 자주 사가던 것은 일탈의 주인공! 네스퀵과 꾀돌이였다. 꾀돌이는 지금도 볼 수 있는 포장지 거의 그대로였지만 네스퀵은 스틱형이 아닌 정사각형의 봉지였다. 정겹기만 한 토끼 캐릭터가 커다란 초코우유 컵 앞에서 '이거 좀 먹어봐' 유혹하는 듯 그려져 있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지금의 라면수프 봉지보다 더 크고 가루가 많이 들어있어 두툼했다.
하루는 네스퀵, 하루는 꾀돌이. 매일 아침 번갈아가며 사가지고 주머니에 넣은 채로 2교시까지 버티면 먹고 싶다는 마음의 온기가 전해지기라도 한 듯이 이 초코가루와 동글동글한 과자를 감싸고 있는 봉투가 약간 따뜻해져 있었다. 기다리던 2교시 종료 알림 종이 울리고 당번이 우유 상자를 가져오면 냅다 우유를 집어와서 우유팩 입을 열고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흘릴세라 조심스럽게 부었다. 그리고 열었던 우유팩 입을 닫아 손으로 꼭 쥔 다음 쉐킷!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처럼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으~을~ 추진 못 해도 우유팩을 신나게 흔들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200ml의 흰 우유는 단 돈 50원으로 탈바꿈하고 나의 일탈을 도왔다.
이게 바로 우유 한잔의 여유인가.
네스퀵은 마시기 싫은 흰 우유를 마시고 싶은 달콤한 바다로 만들어주었다. 우유 한 팩에 넣어 먹기엔 다소 양이 많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50원도 아껴보려고 반씩 나누어 마셔보기도 했다. 그럼 어쩐지 '이것은 초코우유인가 아닌가'하는 맛의 우유가 만들어졌기에 가끔만 그랬지만 용돈이 떨어졌을 땐 어쩔 수 없이 계속 그렇게 먹기도 했다. 그래도 그게 하얀 맛보단 훨씬 나았다.
꾀돌이는 두 가지 색의 작고 동그란 과자 알갱이가 모여들어있던 건데 사실 지금 맛보면 아무것도 아닌 단 맛 덩어리일 뿐인데 그 시절 우유에 넣어 먹을 땐 마치 콘푸라이트를 말아먹은 것처럼 괜히 값어치 있는 무언가를 먹은 기분이 들었다. 당시 광고를 보고 먹고 싶어서 사 달라고 하기엔 콘푸라이트는 비싼 건더기였으니까.
우유에 말아서 바로 먹을 땐 바삭하지만 우유맛이 그대로 나고 몇 분이 지나면 눅눅해지는 대신 우유 맛이 달라지는 점이 콘푸라이트와 닮았으니 입에 들어가면 그게 그거 아닌가 생각도 했다. 역시 초딩의 논리란!
50원의 돈과 10분의 시간으로 이루어진 나의 완벽한 일탈. 이건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내가 대학을 가기 전까지 나를 데리고 계셨던 할머니도, 엄마마저도 모르는 사실이다. 아마 어른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돈을 내고 우유 급식 신청을 못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어른들이 몰라야 하는 것도 있다.
바리스타로 일을 하면서 어린 초등학생들이 아무렇지 않게 카드를 꺼내며 몇 천 원짜리 초콜릿라테를 주문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럴 땐 '이 친구들도 그때의 나처럼 초코우유가 먹고 싶구나, 초딩 입맛 다 똑같지.' 하면서 한편으론 내게는 오래되지 않은 일 같은데 시대가 참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50원으로 행복했던 내가 5000원으로 행복한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글을 쓰며 새삼 느낀다. 추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 내 어릴 적 기억 속 추억은 이렇듯 소소한 걸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