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손에 쥐어진 ‘엄마’ 목걸이

by 김연경

*이번 편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며, 성별 역할에 대해 일반화 또는 비판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나잇값을 해야 하듯이, 사회생활 짬바가 생기고 직업에서 연차가 쌓일수록 책임과 역할도 늘어난다. 이런 건 짬바값(?)이라고 해야 하나?


사회생활을 10년 넘게 해 보니, 여성에게는 하나의 짬바값이 더 생긴다고 느껴진다.


바로 ‘엄마 노릇’.


방송국에 막내 작가로 들어갔을 때도, 이후 두 번의 회사를 거쳤을 때도 팀에는 늘 ‘엄마’ 역할을 하는 고연차 여성 직원이 있었다.


일하기 싫다고 징징대는 PD를 우쭈쭈 달래주던 메인 작가님, 조금만 일해도 힘들다며 드러누워버리던 개복치 과장과, 그 할리우드 액션에 동조하며 아래 사원들에게 일을 다시 배분하던 팀장님. 그리고 일밖에 모르는(?) 파트장 대신 알뜰살뜰 파트의 살림과 소통을 책임졌던 10년 차 직원까지.. 여러 얼굴들이 스쳐간다.


사실 저연차 때만 해도 이런 역할에 대해 별생각 없이 지냈다. 오히려 나 또한 그들의 엄마 역할에 의존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역할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어느샌가 그 ‘엄마’ 목걸이가 나의 손에 쥐어졌기 때문.


그 사달은 내가 마지막으로 일했던 회사에서 일어났다. 위에서 언급했던 일밖에 모르는 파트장과 팀의 감정과 살림을 책임지던 10년 차 직원이 있던 곳. 편의상 그분을 ‘엄마 직원’이라 부르겠다.


그 엄마 직원은 실제로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며, 파트장과 사원들 사이에서 팀의 궂은일을 거의 혼자 도맡았다. 그분이 특히 신경 쓴 건 ‘파워 T’ 모드인 파트장을 대신한 팀원들의 감정 케어였다. 다소 딱딱한(?) 파트장의 말을 부드럽게 풀어 이해시키고, 막내급 직원들이 징징댈 때면 어르고 달래며 팀의 분위기를 수습했다. 마치 가정의 평화를 위해 엄한 아빠와 아이들 사이를 중재하는 엄마처럼.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이 건강검진상 휴식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고, 비슷한 시기에 그녀의 아이들도 회사 어린이집에서 마음을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퇴사를 결심했고, 미련 뚝뚝 떨어지는 회사의 만류를 뒤로한 채 회사를 떠났다.


엄마 직원이 팀을 떠난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모두 걱정했다.

‘이제 누가 그분 역할을 할 것인가.’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 나이가 그 직원 다음으로 많다는 것. (한 살 차이)

나와 동기이자 동갑인 직원도 있었지만, 그는 남자였고..


나를 향하는 시선들을 향해 나는 외쳤다.


“난 너네 같은 자식 둔 적 없다!!!!”


머지않아 나도 그 회사를 떠났다.


지금 카페에서 일하면서, 매니저가 감정적으로 굴 때 여사님은 이렇게 말한다.

“내 자식도 밖에서는 저러겠거니 하고 이해해.”


문득 생각한다.

직장의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은 ‘엄마 마음’뿐인 건가?

엄마 나이지만 엄마가 아닌 사람은, 왜 엄마 역할을 연습해야 할까.


그리고 애초에

‘엄마 역할’이라는 건 도대체 뭘까.


생각이 많아진다.

사실, 아직은 ‘엄마’ 목걸이가 달갑지 않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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