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땐 친구 만드는 게 참 쉬웠다.
같은 동네에 살면, 나이가 같으면, 같은 학교에 다니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으니까. (물론 절대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 친구보다 동료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들. 사회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낯선 이를 마주하면 온몸의 회로에 불을 켜고 상대를 수색한다.
‘이 새끼가 내 뒤통수를 칠 상인가..?’
사회생활에 이골이 난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애초에 사람을 믿지 않는 듯하다. ‘언제 봤다고 그 사람을 믿냐’며 아예 ‘나쁜 사람’으로 낙인을 찍어놓고 일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까지 안 믿는데 같이 일을 할 수 있다고? 그것도 웃는 얼굴과 친절한 말투로? 사회생활이란 대체 뭘까.
그래서일까. 타고나길 사람을 좋아하는 (망할) 성향인 데다가, 마음에 없는 입에 발린 말을 하느니 혀 깨물고 죽는 게 더 나은 나는 회사 생활이 평탄치 못했다.
사회생활 초반에는 한 팀이 되는 동료들은 무조건 ‘내 사람’으로 등극했다. 내가 맡은 일은 당연히 열심히 했고, 그들이 힘들 것까지 고려해 가며 더 열심히 일했다. ‘연경 님하고 일하면 편해.’라는 말이 듣기 좋았고, 이미 간이랑 쓸개까지 내줘놓고는 ‘어디, 뭐 더 필요한 거 없고?’ 묻고 있었다.
그렇다고 회사 평판이 좋았냐? 하면 No.. 정작 배 까고 드러누워도 모자랄 상사 앞에서는 모나게 굴고, 개겼다. 왜냐면 그들은 우리 ‘동료’들을 힘들게 하는 우리의 주적(!)이니까..! (돌아보니 부장, 파트장, 팀장.. 안 싸운 상사가 없네. 다 드루와.. 드루와..!!)
그래도 나의 이런 사회생활 방식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나는 회사 생활을 잘할 욕심이 없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히 좋은 동료들을 만나서 그들 또한 나의 노력을 알아주고 이에 맞는 배려를 해주었기에 함께 으쌰으쌰 일할 수 있었다. 그들과는 동료에서 친구가 되어 퇴사한 지 5년이 넘은 지금도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런 나의 ‘간, 쓸개 다 빼주기 권법’이 통하지 않는 조직을 만났을 때 나는 꽤 심한 방황을 했다. 추가로 탑재한 ‘호의와 배려’ 옵션이 ‘기본값’으로 설정되었고, 그 오버된 기본값을 기준으로 나에게 일이 쏟아졌다. 게다가 내 노고를 알아봐 주던 조직에서만 일하다가 스스로 어필해야만 하는 조직은 처음이었기에 나는 그렇게 소리 없이 갈려나갔다.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나는 기업 영상의 구성작가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통상 1주일에 1-2개의 원고를 쓴다면 그 회사에서는 2주에 7-8개의 원고를 써대고 있었다. 심지어 회사에서는 이 회의, 저 회의에 불려 다니고, 동료들과 커뮤니케이션도 하다 보면 원고 쓸 시간이 없었고 제대로 된 작업은 집에 가서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매일매일 파쇄기에 빨려 들어가는 심정으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던 어느 날, 나는 결국 작가를 한 명 더 뽑아달라며 파트장과 면담을 했다. 파트장은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일이 그렇게 많았어? 집에서 작업할 거면 퇴근할 때 말을 했어야 알지.”
그래요.. 맞는 말이죠.. 예..
그래서 작가를 한 명 더 뽑았긴 했다. 그랬는데..
자충수라는 게 바로 이런 걸까.
기업 영상만 해온 그녀는 소위 ‘회사 생활에 빠삭’한 작가였고, 어떻게 하면 조직에서 살아남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업무 분배를 할 때 팀단위가 아니라 파트장과 그 작가 둘 사이에서 먼저 정해졌다.
그 작가는 늘 말했다.
“제가 할게요.”
“해볼게요.”
하지만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기한 내에 각이 안 나왔다.
“안 돼요.”
“작업 기간 더 주셔야 해요.”
결국 그녀가 미처 손대지 못한 일들만 내 책상 위로 떨어졌다.
그녀의 업무 스타일에 대해서는 나 말고도 촬영팀이나 편집팀에서도 불만이 많았다. 촬영, 편집 담당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 작가와 파트장 둘이서 모든 것을 결정해 버렸기 때문.
결국 퇴사를 결정한 나를 계기로, 팀원들은 그녀를 제외한 팀 회식 자리를 따로 마련했다.
파트장은 말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일이 있을 때 호의적으로 나서는 사람한테 일을 줄 수밖에 없어.”
나는 말했다.
“그래서 결국 그 일을 누가 했는데요?”
파트장은 그제야 ‘아..!’ 하며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런 조직에서 나는 결국 다진 고기마냥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졌고, 이를 추스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이후 작은 조직에서도 일해보고, 알바도 해보며 나만의 실험을 했다. 처음부터 마음을 닫아보기도 하고, 눈에 보이는 일을 외면하면서 꾀를 부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느껴지는 건 이거였다.
사람 본성은 어디 안 가더라.
잘해주고 싶어 죽겠는데 애써 차갑게 구는 것도, 후딱 해치울 수 있는 별거 아닌 일인데 모른 척하는 것도 영 맘이 편치 않았다. 또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가 될 뿐이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봤다.
일단, 나대로 잘해준다!
그리고, 지켜본다. 그 동료의 반응을.
내 결에, 혹은 격에 맞는 사람이라면 내 호의와 배려를 알아보고 감사할 줄 알고, 더 나아가 조금이라도 보답해주려고 한다.
반면에 내 결에 안 맞거나 내 호의가 감당이 안 되는 사람이라면,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점점 나를 무시하고 선을 마구 넘어대더라.
그렇게 나는 나를 지킬 울타리를 만드는 법을 배웠고, 마음을 덜 다치는 방법도 조금은 알게 됐다.
그러니 그대,
일단 나의 동료가 돼라!